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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내일의 신체

이선영

내일의 신체

  

이선영(미술평론가)

  

깊은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몸의 파편들과 건물 잔해가 병치된 고등어의 작업 [내일의 신체; 살갗의 사건]은 사건, 특히 육체/정신을 지나간 사건이 남긴 황폐한 풍경이다. 사진과 설치로 나타난 건축 폐자재들은 인천 지역에서 종종 보게 되는 폐가에서 수거한 것으로, 원래의 널브러진 형태를 벗어나 토템처럼 세워지는 중이다. 건축 중인 모습과 무너진 모습은 잘 구별이 안 되곤 하지만, 새 재료가 아니라 낡은 것이기에 무너졌던 것이 세워지는 중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얼기설기 덧대어 중심을 잡아 세워놓은 모습이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지상에서 우뚝 선 그것은 인간을 연상시킨다. 해체/구성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 인간의 몸은 폐자재처럼 삶의 흔적을 각인한다. ‘인간이 안전하고 편안함을 느꼈던 최초의 거처인 어머니 자궁의 대용품’(프로이트)인 집은 인간, 특히 여자-인간을 상징했기에 이 여성 작가의 작품은 자전적으로 읽힌다. 벽에 걸린 이미지는 일련의 서사적 구조를 가진다. 목 아래가 잘려진 남성의 얼굴은 수직적이긴 하지만 거세된 것처럼 불구의 모습이다. 다음에 수평으로 펼쳐지는 바다풍경은 생명의 근원이자 종착인 광대한 현실계를 암시한다. 



살갗의 사건 2016-2018, 설치전경. 인천아트플랫폼



그다음의 여성/남성의 성기 이미지는 그 광대한 현실계에서 일어났을 모든 결합과 분리이다. 마지막에 사진으로 표현된 폐가 내부는 관객의 눈앞에 설치된 건축 자재들이 있던 원래 자리를 지시한다.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지만, 빠른 시간 동안 미술계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 그녀가 그림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자기 몸을 심각하게 위협했던 식이장애의 치유였다. 캐롤 M. 코니한이 [음식과 몸의 인류학]에서 밝히고 있듯이, 육체의 가장 내밀한 체험인 섹스 역시 ‘먹는’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자전적 경험이 농축되어 있는 고등어의 작품 스타일은 단순히 자기연민이나 나르시시즘에서 비롯된 자기폭로나 자기노출증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치유다. 작년 말에 있었던 개인전 [불안의 순정]전과 관련해 보면 치유적 측면은 더 분명해진다. 그 전시는 ‘지난 2년간 경험한 실패한 사랑에 대한’(고등어) 내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정적일만큼 솔직한 털어놓기는 카타르시스를 자아낸다. 자아와 타자가 결합되는 체험인 사랑은 자신의 경계선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환희와 불안을 동시에 야기한다. 그 강렬한 경험이 끝장났다면 남은 것은 사랑했던 이가 한껏 부풀려 놓았던 빈자리다. 








그러나 사랑의 실패를 통해 작가가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다른 몸의 가능성을 생각해 본다는 점이 특이하다. 전시 개념어의 하나로 제시된 ‘내일의 신체’는 나도 너도 아닌 나와 네가 결합된 제 3의 신체를 말한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을 상습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서 ‘언제나 대상화 되었던 여성의 몸을 주체화시키는 과정’(고등어)에 있다. 널브러진 것들을 세우려는 몸짓은 이러한 주체화 과정의 하나다. 정신분석학은 사회의 언어와 법 등을 내면화시킨 의식을 구조화된 것으로 보고 무의식을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면서도, 의식/무의식의 경계가 분명치 않다고 본다. 경계의 해체는 조증과 울증을 비롯한 병리적 증후를 낳는다. 수년간 고등어의 중요한 주제였던 남녀의 사랑 역시 욕망이나 광기와 같이 경계가 위반되는 내밀한 체험이다. 심지어는 숭고한 종교마저도 이러한 경계소멸이라는 신비한 체험에 기댄다. 자기만의 경계에 갇혀있는 것은 항상성을 유지하고 안전을 보장받지만, 인간은 그러한 경계에 만족하지 않는 동물이다. ‘미와 매력은 원래 성적 대상의 속성’이고, ‘최초의 성적 대상을 다른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승화’(프로이트)라고 한다면, 고등어의 작업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깊은 흔적을 남겼던 경험을 예술로 승화하고 있는 셈이다. 


출전; 인천아트플랫폼 오픈스튜디오 전문가 비지팅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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