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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 없는 문화와 문화 없는 권력

이선영

권력 없는 문화와 문화 없는 권력

  

이선영(미술평론가)

  

2016년 미술계를 돌아보며


모든 해가 나름의 기억될만한 사건으로 가득하겠지만 2016년의 경우는 유별난 것 같다. 특히 올해 후반기에 터진 미술계의 성추행 사건, 그리고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에 관련해 드러난 문화예술계의 파행 등은 올 한해 비(秘)선 권력의 문제를 머릿속에 맴돌게 했다. 사실은 짝수 해에 몰려 열렸던 비엔날레를 비롯한 대형 기획전 같은 것도 (문화)권력의 문제다. 물론 권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후기 구조주의를 비롯한 현대사상이 담론과 권력의 관계가 밀접하다고 주장한 이래, 권력을 ‘억압한다’고만 생각하는 기존 입장에서 벗어나 ‘생산한다’는 긍정적인 입장으로 본다면, 권력-담론의 복합체는 여러 비엔날레의 주제들과 그에 따른 작품들이 나온 배경을 말해줄 것이다. 비엔날레를 비롯한 대형 기획전들이 미술계 내에서 공론화되고 나름의 검증을 받는다면, 성추행 사건이나 국정농단 사건은 들키기 전까지는 막후의 실세에 의해 제멋대로 벌어지다가 많은 피해를 남기고 법의 심판을 받는다는 차이가 있다. 


SNS를 통해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던 미술계 성추행 사건에 관련된 담론은 개인의 사생활이 실시간으로 공개되는 마당에, 권력과 성의 관계가 더 이상 내밀한 차원에 머무를 수 없음을 알려주었다. 결국 갑/을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성추행 사건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조직화되면서 사회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세대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부조리한 관행 중의 하나다. 그것은 2016년에도 강조되었던 청년세대와 그들의 어두운 면을 드러냈다. 최고 권력자와 관련된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 사태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깊이 개입되어 있어 그 공적 기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미술인들에게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 사건 때문에 많은 것이 묻혀 질 정도였다. 2016년 전시의 큰 흐름은 각종 비엔날레들 외에 단색화 열풍에 주변화 되었던 형상미술 전시회들이 알게 모르게 많이 열린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크고 작은 전시들 와중에 위작이나 대작, 최고가 경신 작품 같은, 결국은 권력의 또 다른 측면인 돈과 연관된 사건들이 이슈화 되었다. 

  

1. 각종 비엔날레의 해


2016년 9월에는 서울과 광주, 부산 등 각 지역에서 오픈 날짜를 하루씩 차이를 두고 봇물 터지듯이 열렸다. 그 외에도  금강 자연 비엔날레와 창원 조각 비엔날레를 비롯해, 국제적 차원의 규모를 가지는 미술행사들이 다수 열렸다. 그 즈음의 미술잡지들 역시 일제히 관련기사를 다루면서 서로를 비교했다. 물론 두 달 안팎의 비엔날레 시즌이 끝나면 그에 대한 담론들은 싹 사라진다. 미술계 한해를 회고하는 이 짧은 글에서 각 비엔날레가 제기했던 주제와 작품들을 하나씩 분석해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몇 가지 기억으로 남은 어떤 단상일 수밖에 없음을 미리 밝혀둔다. 올해 열린 각기 다른 주제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전시에 나온 작품들과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에 대한 의문은 공통된다. 전시된 작품의 면면이나 초대된 작가의 위상이 초라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모종의 선정과정을 거쳐서 위촉된 예술 감독은 자신의 영향력이 닿는 힘껏 관련 작품/작가들을 섭외하고 초대한다. 


그러나 정작 작품들이 한 공간에 모였을 때 각자의 소리만 외쳐질 뿐, 주최 측이 제시한 전시 주제와 어울리는 어떤 느낌을 만들어내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다. 그중 몇 개라도 인상적인 작품이 있다면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관람한 의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이 전혀 불가능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려고 그렇게 많은 다른 작품들이 함께 있어야 하는 것인가. 저 나라에서 하니 우리나라도 한다를 넘어서, 저쪽 지방에서 열리니 여기도 하는 식으로 각 지방자치제가 서둘러 만들어 놓은 대형 미술축제는 엇비슷한 규모와 패턴으로 열려왔다. 일종의 대규모 시각적 소비라고 해야 할, 이 소모적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까. 작가들이 작품을 만들어놓고 전시부제를 정하는데 나름의 고통을 겪듯이, 예술 감독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서울의 SEMA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의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라 대표적이다. 마치 어떤 새로운 상품이 출시될 때 도대체 그것이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상표명을 통해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아내는 전략 같다. 


유행하는 분홍 립스틱 하나를 살래도 ‘로지 레이디앳플레이 임패션드 릴렌틀리슬리레드 XXX호’ 정도의 상표명은 알고 있어야 하듯이 말이다. 물론 거의 외계어로 들리는 ‘네리리 키르르 하라라’는 현대미술에 보다 적극적인 배움의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다는 의미가 있다. 광주비엔날레의 ‘제8기후대-예술은 무엇을 하는가’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다. 현대 예술이 원래 완성된 것이 아니고, 과정 중에 있는 언어라는 것을 백번 감안한다 해도 말이다. 광주 비엔날레의 예술 감독은 이 제목이 ‘주제나 개념이라기보다는 일단의 매개변수를 지칭한다’고 했지만, ‘매개’라는 말도 그렇고 ‘변수’라는 말도 그렇고, 말 그대로 제대로 된 ‘매개’가 없으면 ‘변수’는 너무 많아져 거의 무의미에 가까워진다. 부산비엔날레가 제시한 ‘혼혈하는 지구 다중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는 애초부터 통일된 의미의 불가능성이라는 포석을 깔았다. 그러나 왜 ‘1990년대 이전 한중일 아방가르드를 짚어본 프로젝트’라는 또 다른 전시가 본 전시와 한데 엮이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2. 선전하는 단색화에 대한 자의식적인 전시들, 그리고 위작, 대작 사건


국내외적으로 단색화의 위상이 높아지자 그와 성격을 달리하면서 한국의 화단의 일축을 형성하는 형상미술계의 반대급부적인 전시도 많이 열렸다. 민중미술 계열에 속하는 작가는 물론 다소간 비판적인 성격을 가지는 구상미술에 이르기까지, 할 만 한 작가들은 거의 했을 정도다. 단색화를 포함한 추상미술 전시는 연 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관에서 열린 서세옥 기증작품 특별전을 시작으로, 김형대 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김태호 전(대구 리안갤러리) 등이 열렸고,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에서는 미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꼼꼼한 앙케이트를 기초로 한 한국 추상미술의 역사 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이 전시의 부대행사로 단색화 열풍에 이론적 역할을 했던 평론가 윤진섭이 ‘단색화의 태동과 전개’라는 내용을 발표했다. 필자도 지난 4월경 ‘최근 단색화가 주목받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한국 추상미술의 위상과 흐름에 대한 전체적인 의견’을 묻는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의 조사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모노크롬의 대표 작가 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박서보 화백이 최근 개인전에서 자신의 작품에서는 색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듯이, 최근 국내외에서 각광받고 있는 한국의 단색화는 주제나 형태 등, 근대 미학의 관점에서는 부차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여타의 요소들을 배제하고 색에 집중한다. 즉 최대한의 효과를 위한 최소한으로의 환원이다. 아울러 그 색에 더욱 다양한 뉘앙스를 살려낼 질감 또한 중요하다. 색감이나 질감으로 환원된 모더니즘은 장식 또는 형식주의적 경향을 띈다. 그러나 한국적 추상미술이라 일컬어지는 모노크롬은 독특한 질감에 얹혀 진 색감으로, 다른 어떤 장르도 아닌 회화에서 가능한 장점을 살림으로서, 그것이 태어난 시대보다 요즘같이 혼돈에 가까운 다양성의 시대에 더욱 돋보일 수 있었다’ 추상미술의 인기는 연말까지 계속되어 11월 27일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는 노란색 점으로 가득 덮인 김환기의 작품이 63억2626만원에 낙찰되면서 한국 미술품 사상 최고가로 거래되는 기록을 남겼다. 그 뿐 아니라 상위 5위까지가 모두 김환기의 추상화였다.


경매 낙찰가가 작품의 가치를 가늠하는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지표인 것은 사실이다. 단색화와 비교될 수 있는 올해의 형상미술 전시들이 준 회고전 성격을 가진 것이 많았던 것은 마치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세간의 평가에 대한 자의식적인 태도가 아니었을까. 어떤 장이든 경쟁은 있는 것이고, 어떤 분야보다도 차이를 중시하는 예술에서의 경쟁은 더욱 생산적인 일 것이다. 2015년 말에 시작하여 올해 초까지 열린 ‘나르지 못하는 새: 안창홍 1972-2015’ 전(아라리오 갤러리), ‘박불똥 1985-2016’ 전(갤러리 175), 오치균 전 ‘뉴욕 1987-2016’(금호미술관) 등이 준 회고전적인 성격을 지닌 전시들이다. 교수에서 전업 작가로 돌아선 후 왕성한 활동을 펼쳐오던 서용선은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진행한 드로잉작업 1만여 점 중 700여점 선별한’ 전시인 ‘확장하는 선, 서용선 드로잉’ 전 (아르코미술관) 외에도 야성적인 나무 조각들을 선보인 ‘색과 공’ 전(김종영 미술관), 인왕산을 소재로 한 전시(누크 갤러리) 등 올 한해에 크고 작은 전시 3개를 소화하는 저력을 보였다. 


그 밖에 인디 프레스에서 열린 최진욱 전, 아트스페이스 풀에서 열린 김정헌 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민정기 전, 학고재에서 열린 신학철 전 등 도 단색화 열풍에 대한 대항적 성격을 가진 형상미술의 흐름이다. 또한 형상미술 계열은 아니지만, 단색화로 대표되는 추상미술의 흐름과는 다른 맥락에서 비판적인 모더니스트의 입장을 견지해온 김용익은 일민미술관 전시에 이어 국제 갤러리에서의 전시까지, 그의 작품을 총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초고가의 가격이라든가 위작, 대작의 문제는 대중들이 난해한 현대미술의 담론에 끼어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사건의 중요성에 비해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곤 한다. 가수 겸 화가인 조영남의 대작(代作)사건이나 이우환, 천경자의 작품의 진위논란이 대표적이다. 이들과 관련된 논란은 작품의 주체 문제를 제기했다. 즉 작가가 진짜라고 하면 진짜인가, 또 작품의 어디까지를 작가가 주도한 것으로 봐야하는가의 문제 말이다.     

   

3. 청년세대의 곤욕


기존의 것을 재현하거나 재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생성 또는 생산하는 예술은 그 자체가 젊음의 특징이다. 그래서 예술은 즉각 청년과 동일시되곤 한다. 물리적인 나이를 중심으로 한 청년이기 보다는 영원히 생성되고 자라는 청년은 예술의 핵심에 있다. 그래서인지 저널을 비롯해서 미술계 제도들은 그들을 충분히 배려해준다. 월간 미술 9월호의 특집 ‘2016 청년세대 미술생태학’은 청년들의 실상을 여러 각도에서 다루었으며. 아트인컬처 8월호 특집에서도 신진작가들을 대거 소개했다. ‘최근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젊은 큐레이터 및 평론가’들이 추천한 81명의 젊은 작가들이 사전식으로 편집되어 있다. 평가와 기록의 성격을 띄는 이러한 기획들은 그 세대들을 어떤 목록에 올리지만, 수년째 ‘젊은 작가’, ‘신진 작가’ 등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이들의 면면을 볼 때 ‘젊은’, 그리고 ‘신진’ 그다음에는 어떤 단계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요컨대 청년을 이렇게 집단으로 호명하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올해에도  유명한 무명 전(국제갤러리)부터 아시아 청년36 전(전북도립미술관)까지 청년을 코드로 한 전시는 빠지지 않고 열렸다. 또한 각종 수상제도는 청년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기회를 준다. 제 3회 종근당 예술지상 전(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는 기업의 후원으로 미술의 기본인 회화 장르에 포커스를 맞춘 젊은 작가 발굴과 지원에 힘쓰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신진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2001년 처음 시작된’  아트 스펙트럼 2016 전(삼성미술관 리움), 제16회 에르메스 재단 미술상의 주인공인 정금형, ‘올해의 작가상 2016’(국립현대미술관)의 최종 수상자 믹스라이스 등이 청년 및 청년 정신의 작가로 새로이 자리 매김 되었다. 또한 홍대 앞에서 오랫동안 대안적인 영상문화를 소통시키는데 애써온 아이공이 주최한 제16회 서울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의 주제 ‘가상의 정치’에도 다수의 젊은 미디어 작가들이 참여했다.


그러나 문학계에 이어 미술계에도 이어진 성희롱 사건은 젊은 미술인이 감내해왔던 또 다른 고충의 이면으로 부각되었다. 그 사건은 한 여성 미술인이 10월 21일 SNS에 최초로 고백한 이래,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그녀의 용기 있는 고백은 추가의 고백들을 이끌어 냈고, 성범죄 용의자가 근무하는 건물 앞에서의 집단행동으로까지 나타났다. 아트 인 컬처 12월호에는 ‘핫 이슈’로 문화계 성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는 ‘여성 전시 기획자들의 모임’이 ‘폭력의 악순환을 끊자!’며 한 목소리를 냈다. 다른 문화계와 마찬가지로 미술대학을 비롯하여 미술계의 구성원도 여성이 압도적인데, 그 숫자에 비해 그들의 위치는 대부분 ‘을’이었던 상황이 이런 불미스러운 사태를 불러왔다. 그러나 결국 ‘을’이 다수인 한, 힘을 합치면 갑과의 역학관계는 바뀔 수 있다. 필자가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예술계 내 성폭력 성명서’가 돌면서 많은 미술인들의 참여를 이끌고 음지에 있던 이야기를 공론화하고 있다.    

    

어수선한 병신년(丙申年)이 정의의 힘으로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2016년에 온 국민을 패닉 상태에 빠트렸던 시국상황에서 미술 또한 제외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고 권력자가 가담한 국정농단의 주요 무대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미술은 스포츠나 대중문화와 달리, 배후의 권력자들이 쉽게 농단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현대미술은 그 누구라도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아성을 쌓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체부 산하의 기관 몇몇 군데에서의 전횡을 뺀다면, 미술은 통째로 소외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권력자들의 농단 때문에 예술에 사용되어야할 예산의 상당수가 증발했을 것이고, 덕분에 예술인들은 더 추운 새해를 맞아야 할지 모른다.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의 현장예술 외에, 미술 대학이라는 제도적 공간에서도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11월 23일 대학미술협의회(회장 이상봉)는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요구하는 성명서에서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허울 속에서 오히려 황폐해진 예술교육의 터전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시민사회 운동의 참여나 성명 발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작품이라고 하겠다. 작품은 작가를 가장 그들답게 하며, 강도와 밀도를 유지한 채 사회를 향해 발언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미술계를 돌아보는 이 짧은 글은 2016년에 우리를 강타한 사건들과 관련하여 의미 있는 두 개의 전시로 마무리 짓고자 한다. 그 전시들은 웹싸이트와 대학 박물관이라는 다소간 이례적인 곳에서 열렸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미디어 작가 뮌(최문선+김민선)이 올 초에 웹아트로 발표한 ‘아트 솔라리스artsolaris.org’이다. 그것은 미술계의 권력지형을 별자리처럼 만든 작품이다. 공공기금이 투입된 전시에 대한 정보 수백 건과 그에 연관되는 미술인 수백명의 정보로 구성된 이 작품은 미술계의 권력이 태양처럼 빛나는 몇몇 존재에 집중되고 있음을 실증적으로 드러내면서 예술에 있어 공공성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또 하나는 성균관 대학교 박물관의 기획전 ‘얼굴, 맞서다’ 전이다. 10월 5일 조용히 개막된 전시였지만, 지금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치적 사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주제에 대한 대중적 호응으로, 원래 전시 기간인 올해 말을 넘기고 내년 3월까지 연장전시에 들어갔다. 진정한 리더의 부재라는 현시대의 상황을 통감한 작가들의 모색이 담겨있는 그 전시는 질곡의 현재에 ‘맞서’, 김구, 신채호, 여운형 등 그리운 ‘얼굴’들을 호명하고 있다. 



이미지 캡션

  

1. 아니카 이, [퐁트넬],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격년으로 주는 휴고 보스상을 수상하였다. 광주비엔날레 출품작.

2. 오를랑, [베이징오페라 가면  n°10], 오를랑, 증강현실, 베이징 오페라 ,120x120cm, 2014, 부산비엔날레 출품작.

3. 함양아, [더 빌리지], 여름캠프 '기억저장소' 설치 전경,  sema 비엔날레 미디어 시티 서울의 출품작. 

4. 서용선 전시 포스터, 아르코 미술관 1,2층에 700여점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5. ‘올해의 작가상 2016’ 수상작가로 선정된 믹스라이스(조지은+양철모)의 작품, [아주 평평한 공터], 2016 전시전경, 국립현대미술관. 

6. 제 16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정금형 개인전 전시전경, 아뜰리에 에르메스

7. 제 3회 종근당 예술지상전의 수장자 중 하나인 김효숙의 작품

8. 제 16회 서울국제 뉴미디어 페스티벌의 주제 ‘가상의 정치’ 전 포스터.

9. 뮌(최문선+김민선), 올해 초 웹아트 발표한 ‘아트 솔라리스artsolaris.org’

10. 얼굴, 맞서다 전(2016년 10월 5일—2017년 3월, 성균관대학교 박물관) 포스터.

  

출전; 아트로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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