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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경계, 그 너머의 확장된 풍경을 찾아서

윤진섭

표현의 경계, 그 너머의 확장된 풍경을 찾아서 

                                                           윤진섭(미술평론가) 

 정윤주는 인물 초상화를 즐겨 그린다. 작품을 하는데 있어서 설치를 비롯하여 판화, 드로잉 등 다양한 방법을 구사하고 있지만, 그 무엇보다 그가 추구하는 예술의 본령은 인물화다. 그것도 매우 거친 표현주의 화풍을 고집한다. 캔버스 위로 물감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과격한 필치가 특색이다. 성별이나 연령에 관계없이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을 접하고 대상에게서 받은 인상을 캔버스에 투사해서 얻어지는 정윤주의 인물화는 따라서 특정인을 그린 것이라는 뚜렷한 표징(表徵)이 없다. 모델을 쓰거나 때로는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 속에서 재구성하여 그린 그의 인물화는 따라서 우리 주변의 친근한 이웃을 연상시키거나, 잡지나 영화에서 본 서양인들의 모습을 상기시킨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정연주의 인물화는 대상 특정적이라기보다는 상상의 재구성에 더 가깝다. 즉, 그림의 대상이 되는 특정한 인물화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정서에 더 호소하는 그런 그림인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정윤주가 자신의 회화를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정념이나 고뇌, 혹은 분출하는 욕구 등과 같은 감정의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있어서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재현의 원리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의 내면에서 일렁이는 감정을 대상에 투사하는 감정이입이 그의 작업을 관류하는 제1의 원리가 되고 있다. 인물을 다룬 정윤주의 근작들이 부분적으로 인체의 왜곡을 통해 대상의 윤곽선보다는 색채에 더 치중하고 있는 것은 이를 뒷받침해주는 사례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작가의 감정을 대상에 이입하는 방법은 그의 회화적 경향이 표현주의에 경도돼 있음을 증명해 준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인물의 눈과 시선이다. 사실 정윤주의 인물화에 있어서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이 눈에 있다.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인물의 눈은 그의 인물화를 매우 생동감이 있게 만드는 요인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에게 심미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앞에 있는 사람의 눈을 보며 인품을 가늠하듯이, 정연주의 그림 속에 존재하는 인물의 눈은 각기 독특한 아우라를 지니고 있어서 우리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반짝이듯 생기를 지닌 눈이 정면을 바라보거나 특정한 곳을 쳐다보는 시선을 던질 때 그림을 통해서 우리는 다양한 삶의 흔적과 표정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어쩌면 회화만이 지닌 특권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물화를 위해 정윤주가 부단히 인물 드로잉과 판화를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드로잉과 판화는 본격적인 회화를 위한 밑그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장르로 간주하고 있음도 또한 기억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들은 다같이 작가가 인간의 문제를 작업의 화두로 삼는 가운데 선택한 수단에 불과하다. 
 정윤주가 최근 몇 년간의 다양한 실험을 거쳐 설치에 주목한 것은 표현수단의 확장은 물론 보다 인간적인 문제에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이번 창작촌 입주를 위해 익산에 왔을 때, 붉은 흙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붉은 땅> 연작은 바로 익산에 도착했을 때 받은 흙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설치 형식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흙으로 빚은, 땅속으로부터 솟아오른 수십여 개의 아메바를 연상시키는 물체들을 제시한다든지, 전북 일대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성분과 색의 흙을 수집하여 진열대에 진열하는 등의 설치작품들은 인간의 거소(居所)이자, 돌아가야 할 본향(本鄕)으로서의 대지에 대한 경외심을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윤주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 작품화하는 재능을 지니고 있다. 중국집에서 버린 한 무더기의 의자를 가져다 설치작품을 만든다든지, 천장으로부터 드리워진 흰색의 액자 안에 관객의 상반신이 보이게 해서 살아있는 초상화를 시도하는 등 개념적인 작업도 시도하고 있다. 인물화가 주력하는 분야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영역의 탐색을 통해 미술을 실험하는 것이 최근 정윤주가 보여주는 행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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