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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제조각페스타 2018 / 공간적 서사

이선영

공간적 서사

  

이선영(미술평론가)

  

조각, 세상을 이야기하다

  

‘조각, 세상을 이야기하다’라는 주제는 예술이 세상을 말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지만, 고전적인 장르 분류법에 의하면 공간예술인 조각이 시간을 다루는 방식을 보여준다. 조각이라는 입체적 형태는 현재로 고정되어 있지만, 그것은 무의미로 귀결될 수도 있는 우연적 현재가 아니다. 그것은 근대 조각의 거장 로댕이 보여주었듯이, 방금 지나간 과거와 앞으로 올 미래를 자신에게로 당기는 복합적인 형태로, 시간을 공간 속에 압축하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이야기는 시간을 타고 전개된다. 대표적인 시간 예술은 문학과 음악이며, 현대에 와서는 영상이 가장 강력하다. 2층의 전시작품에는 영상이 없지만, 작품들에는 현대적 스펙터클 속에 살아가는 작가의 경험이 녹아있다. 그 작품들은 조각적인 견고함을 유지한 채 현대적 유동성을 표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대표적인 방식은 구성요소의 한정과 그것의 반복이다. 그리고 반복은 차이를 만들어 낼 것이다. 무엇을 기본 구성요소로 정했는가는 작가마다 다르며, 그에 따라 그 작가만의 어휘집이 만들어진다. 




이시, Pick me




백재현



최소한의 구성요소로 최대한 말할 수 있을 때 그 작품은 단순함과 다양함을 겸비하게 된다. 그것은 복잡하지만 내용은 없는 그 반대의 방식과 다르다. 조각이 세상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 같은 시각예술인 영상을 참조할 수 있다. 데이비드 노먼 로도윅이 [질 들뢰즈의 시간기계]에서 말하듯이. 영상에서의 시간 이미지는 한 시간대의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의 공간으로 지나가는 무제한적인 서사이다. 조각 역시 영화처럼 ‘시공간적 분절의 논리’(노먼 로도윅)를 통해 서사를 시각화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조각이 세상을 이야기하는 방식은 잠재적인 문학, 음악, 영상이라고 할 수 있다. 국내외의 작가 150여명이 참여한 올해의 서울 국제조각페스타에서 2층에서 전시하는 작가 35명의 작품들에서 세상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인간, 자연, 우주 등을 현상과 상상, 추상과 구성, 반복과 해체 등의 다양한 어법으로 이야기 한다. 물론 이러한 분류법은 다분히 편의적이어서 서로 중첩될 수 있다. 


A.A 멘딜로우는 [시간과 소설]에서 ‘소설가의 노력’을 ‘시간의 지속감, 경과감, 퇴적감을 주는 것’(헨리 제임스)이며, ‘구성은 시간이다’(거트루드 스타인)라는 문인들의 말을 인용한다. 훌륭한 작가라면 누구나 지속적 긴장, 속도, 연속성 등이 자신의 기법에 있어서의 중심 문제라는 것이다. [시간과 소설]에 의하면 예술에 있어서 시간적 요소는 작가의 주제의 선택과 처리, 서술 내용의 요소를 작자가 언어화하고 배열하는 방식, 삶의 진행과 의미에 대한 그의 감각을 표현하기 위한 언어 구사법이다. 조각예술에서도 시간 효과에 관계되는 많은 실험이 이루어졌다. 미술사적으로 볼 때 키네틱 아트가 대표적이다. 그것은 보다 역동적인 현대를 표현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조각으로서의 자기동일성을 확인하는 장이기도 하는 서울 국제조각페스타는 공간 예술 고유의 장점을 살리고자 한다. 이 전시의 작품들은 문학이나 영화같은 전형적인 시간예술을 참조하지만, 그 장르의 한계라고도 할 수 있는 작가가 정한 연속적 시간성에서 해방되고자 한다. 그리하여 조각의 관객은 마음대로 시선을 옮겨가면서 각자의 서사를 만들 수 있게 된다.

  


1. 사람 사는 이야기-최승애, 이완숙, 김은정, 남형돈, 이명훈, 김기민, 이시 

  

최승애의 작품에서 사람은 사랑에 의지해서 산다. 하트모양으로 나타난 사랑의 상징은 거대한 바위와 같다. 그 위에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여자,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반려동물 이미지에 작가는 [도란도란], [토닥토닥]같은 의성어 제목을 붙였다. 

이완숙의 작품 [소녀]와 [모자 쓴 여인] 등은 상반신만 있는데, 놓이는 장소에 따라 지면으로부터 솟아 나온듯한 느낌을 준다. 대지와 밀착된 통통한 인물상에는 어떠한 결핍감도 없다. 풍성한 여인상은 색이 칠해진 합성수지라는 재료를 통해 현대적으로 재탄생했다.     

청바지 천으로 판을 만들어 수놓은 김은정의 평면작품에 새겨진 이미지들인 사과, 빈 그릇, 음료수병 등의 이미지는 삶의 고단함을 야기하는 상징들이다. 몸의 연장인 의상은 실과 바늘로 관통된다. 입체작품에서 의상은 몸이 빠져나간 빈 통으로 나타난다. 

남형돈의 작품에서 유기체는 자신의 경계를 풀어헤친다. 개는 방귀를 뀌고, 여성의 가슴에서는 젖이 분출되며, 남성의 아랫도리는 불쑥 튀어나온다. 유기체의 자연적 욕구는 작품을 통해 욕망의 상징이 된다. 관객을 비추는 금속 표면은 당신도 그렇지 않느냐고 묻는다.


남형돈, Burst balloon-풍선이 터지다.


이명훈은 자신을 닮은 캐릭터를 통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표현한다. 손수레, 난로, 화분, 집, 반려동물 등은 주인공과의 관계를 통해 상황을 설명하는 장치다. 입은 활짝 웃고 있지만 눈은 의기소침하게 쳐진 이중적 표정은 인생에서 흔하게 접하는 역설적 상황을 상징한다.

김기민은 소라껍질 안에 칩거하는 인물을 보여준다. 직접 짊어지고 있는 패각은 집처럼 자신을 보호하지만, 동시에 이고 가야할 짐 같은 모습이다. 작가는 소라게(Hermit crab)처럼 임시 거처를 전전하는, 낭만일수도 있고 처절한 생존일수도 있는 유목적 삶을 은유한다.   

이시의 작품에 등장하는 소년들은 모두 커다란 여행 가방을 아래에 깔고 있다. 가방의 크기와 모양은 모두 다르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아이들은 여행의 초반기에 있다. 남자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설치형식은 한 공간 속에 시간적 추이를 담은 여행담이다.

 

 

2. 현실과 나 사이- 박성하, 오제훈, 김주영, 이미숙, 심은석, 임승섭, 백재현, 김성욱, 손종준

  

박성하가 자주 만드는 돌로 된 봉제인형 이미지는 그것을 가진 소유주와 세상 사이의 완충제 역할을 한다. 봉제인형을 비롯한 세상의 모든 장난감은 거친 현실과 나 사이에 있는 잠재적 영역을 형성하고 그 안에서 현실과는 다른 대안의 이야기를 꾸밀 수 있게 한다. 

우레탄 도장으로 마감한 오제훈의 ‘뜨개 로봇’은 부드러움과 딱딱함, 온기와 차가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종이 위에 색연필로 그린, 털실 뭉치 위의 로봇 이미지는 뭉쳐진 실과 짜여 진 형태의 인과관계를 드러낸다. 이렇게 짜여진 텍스트는 의미화 된다.


오제훈_뜨개로봇-아이코_37x15x63(h)cm_레진,감속기어모터,우레탄도장_2018


김주영은 골판지로 만든 캐릭터로 놀이의 세계를 만든다. 두꺼운 종이로 구축된 형태처럼 놀이의 세계 또한 구축적이다. 놀이의 세계는 마냥 자유롭지 않다. 놀이는 특정한 시공간과 특정 규칙이 따른다. 이 대안의 세계에서의 놀이는 세상과의 관계에 대한 비유이다. 

마치 민화가 3차원으로 튀어나온 듯한 이미숙의 작품은 자연과 대비되면서도 조화되었던 민속적 화려함을 가지고 있다.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하는 꼭두, 호랑이, 까치, 소, 여우 등은 상징적인 색과 문양을 입고 있으며, 우화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반인반수의 형태가 모노톤의 색으로 완결되어 있는 심은석의 작품들은 환상적이다. 요정이나 괴물에 대한 상상력은 자연의 부분들로부터 온다. 그러나 통으로 칠해진 분홍이나 노랑, 민트색은 자연에서 발견하기 힘들다. 그는 파격적인 조합을 통해 그 사이에서 이야기한다.  

임승섭은 가부좌로 앉은 소녀를 둘러싼 토끼들을 통해 소녀 머리에서 일어나는 상상을 여러 자세의 토끼들을 통해 생동감있게 보여준다. 움직임의 환영은 소녀의 환상, 그리고 이 모두를 만든 작가의 상상과 중첩된다. 이러한 상상에서 사람보다 큰 토끼도 있을 수 있다.

백재현은 아마존의 여전사들이라고 해도 될 만한 여성군상들을 보여준다. 속치마 형태의 그물갑옷과 투구를 쓰고 낫과 식칼, 쇠구슬도 든, 통상적인 여성성을 벗어나는 군상들은 기괴하다. 만화적 상상력이 현실화된 그의 작품은 여성의 권력이 커지는 시대를 반영한다.

김성욱의 작품에서 어두운 돌덩어리는 얼굴을 상징한다. [마주한 얼굴]. [적층된 얼굴] 등의 제목은 얼굴의 배치로 이야기 한다. 얼굴 하나하나에는 금이 가 있다. 그것이 이 무기질적인 재료에 표정을 만든다. 구멍새가 생김새인 얼굴에서 틈은 덩어리보다 더 결정적이다. 

그 자체로도 멋있지만, 몸에다 부착할 수도 있는 손종준의 작품은 몸과 보철의 결합이라는 이제는 더욱 가까이 다가온 미래를 구현한다. ‘단면들의 체계’(들뢰즈)라고 할 수 있는 기계든 결합양태에 따라 다른 것을 만든다. 손종준의 경우에는 말한다.  

  


3. 문명과 자연, 그리고 우주-권치규, 임종찬, 윤덕수, 류훈, 박근우, 백진기, 정택성, 김재각

  

권치규는 자연에서 발견되는 겹과 층을 시각화한다. 은색과 녹색으로 구별된 나무 이미지들은 앞과 뒤라는 공간적 관계를 시간적 관계로 변환한다. 푸른 나무들은 은색 나목이 될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시간을 포함한 공간이 이야기 한다. 

임종찬의 작품에서 자연과 문명은 나무와 벽돌 담장으로 대별된다. 양자는 공존해야 하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수직적 관계로 설정된다. 자연 이후의 문명이 아니라, 문명 이후의 자연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그의 작품은 묵시록적이다.  

윤덕수의 작품에서 피망이나 토마토 같은 자연물은 매우 거대하다. 좌대를 겸하는 포장재는 거대함을 강조한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해온 이래 왜곡은 보편적이었다. 그의 작품에서 자연은 인간의 필요에 맞게 티끌 한 점 없는 매끈한 형태의 잘 포장된 상품으로 드러난다. 

류훈은 세계수같은 형태를 통해서 우주(세상)의 시작과 경과에 대해 말한다. 둥근 테두리 안의 세계수가 있는 작품 [story 1]과 바퀴 축에서 자란 나무 [story 2]는 여기와 저기를 연결하는 나무가 대우주와 소우주를 통합시키는 상징임을 깨닫게 한다.

박근우의 작품은 제목에도 잘 드러나듯 [re new-]라는 접두어가 들어가는 태초의 꽃, 태초의 빛, 태초의 시작 같은 우주 탄생의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거대서사는 보다 장구한 시간성을 전제한다. 검은돌을 뚫고 나오는 빛(또는 불덩어리)은 갱신에 대한 극적 이미지이다. 

백진기는 원과 정사각형 등을 기본도형으로 다양한 대리석 위에 우주적 사건을 기록한다. 그의 작품은 중심으로부터 파장이 사방팔방으로 번져나가는 확산감이 있다. [빛이 있으라 FLAT LUX]같은 고풍스러운 제목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형이상학적 관념을 표현한다.



백진기,Fiat Lux(빛이 있으라) 80cm x 80cm Turkish marble 2017


정택성의 작품은 흑백으로 이루어진 건축적 구조가 녹아내리는 듯한 형태이다. 거기에는 흑과 백이라는 최초의 구별이 느슨해지고 섞이는 시점이 표현되어 있다. 대폭발 이후 확장하는 우주 또한 엔트로피(무질서도)의 증가를 보여준다.

김재각은 와이어 네팅과 용접을 이용한 금속조각으로 섬유조직을 드러내며 나풀거리는 스카프같은 작품을 보여준다. 2차원을 접어서 만든 3차원 같은 방식이다. [multiple illusion-]으로 시작되곤 하는 제목처럼, 그의 작품은 자연의 외관과 운동을 동시에 표현한다. 

  


4. 조각의 언어; 추상과 구체, 그리고 생성-이태수, 이용철, 노준진, 이용태, 한창규

  

H 빔을 조립해서 추상적 형태가 되는 이태수의 작품은 인간의 언어가 주체 이전의 상징적 우주임을 알려준다. 언어는 지시대상으로부터 자율화되어 스스로를 지시한다. 그의 작품 속 마주한 해골들은 이러한 구조의 세계에서 인간의 자리는 빈약함을 암시한다. 

이용철은 구성주의처럼 기하학을 통해 말한다. 그의 작품에서 구는 시작을 상징하는 듯하다. 구는 이런저런 형태로 오려지며, 무엇인가 붙기도 하고 틀에 안착되기도 한다. [그후-]라는 접두어가 많이 들어가는 그의 작품은 추상적 형태로 시간의 경과, 즉 이야기이다. 

노준진의 작품은 한 몸에 두 가지 언어가 공존한다. 하나는 불투명하고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투명하다. 표면을 쪼아 만든 머리 부분과 아래로부터 비추는 빛이 관통하는 몸통으로 대별되는 작품에서 머리가 조각이라면 몸통은 구성이다. 구성은 실재보다는 관계이다.   

이용태의 작품에서 말이나 사슴같은 동물의 몸체는 단어로 되어있다. 입자화 된 패턴으로 ‘사랑’, ‘오직’ 같은 추상적 관념도 표현한다. 먼저 사물이 있고 그것을 지시하고 분류하는 말이 있지만, 어느덧 말이 몸통이 된다. 그는 현대의 특징인 자기지시적 서사를 표현한다. 

금속을 꼬아 만든 듯한 한창규의 작품은 성인 여성이 올라타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하다. 공중에 재빠르게 그은 선같은 작품은 형태이자 움직임이다. 엽맥의 움직임이 바로 개화를 표현했던 이전 작품처럼 그의 선은 무엇인가를 재현하면서도 미지의 것을 생성한다.

  


한창규,꿈속의말no.2,165x800x150cm,2016.



5. 차이와 반복; 서광옥, 이본규, 오정선, 김희용, 신예진, 어문선

  

서광옥은 큐브나 조각보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구성한다. 작가는 삼각형이나 사각형같은 단위 구조를 설정하고 그것을 바느질로 이어 붙인다. 최소한의 구성요소와 방법론으로 다양한 형태가 만들어진다. 재료에 따라 빛과 그림자 또한 이 무한한 게임의 장에 동참한다.  

이본규는 니켈도금한 쇠구슬을 연결하여 다양한 인연을 만든다. 제목 뒤에 붙은 숫자가 늘어날수록 인연을 맺는 대상의 숫자는 늘어난다. 이 둥근 형태들을 뒤덮는 것은 또 다른 둥근 입자들이다. 그의 작품은 인연이라는 것이 수많은 우연적 필연의 연속임을 드러낸다.

유리용기들을 공중에 메달은 오정선의 작품에서 컵 모양은 종, 또는 전등갓이 되고, 컵에 들어있었을 법한 푸른 액체는 아래로 진해지는 색으로 중력을 느끼게 한다. 액체는 기체가, 색은 향기가 되어 퍼질 것이다. 나열된 형태들은 이러한 잠재적 과정에 깔린 시간성이다.  

김희용은 검은 돌에 가느다란 선을 새긴다. 굴곡진 곡면에 반응하며 새겨진 선들은 마치 지문과도 같다. 선이 새겨진 덩어리들을 층층이 쌓이기도 한다. [새기다-氣]로 붙여진 제목들은 새김행위가 기를 부여하는, 또는 대상에 내재한 기를 외화하는 과정임을 알려준다.    

신예진의 [replanning nature] 시리즈는 반투명한 재료로 수많은 나비를 만들어 아크릴 봉에 붙인다. 비슷한 형태와 색채의 많은 대상이 한 가지에 함께 붙어있어 움직임에 대한 환영이 생긴다. 이렇게 시간을 공간화 함으로서 자연 뿐 아니라 자연의 과정을 재구성한다. 

명품의 외관을 가진 어문선의 작품은 위조 기술이 바로 예술일수도 있음을 알려준다. 대리석으로 가죽 가방의 질감을 그대로 구현한 것들의 제목도 [가(假)방 no 숫자]로 지어서 자신의 작품이 차이와 반복의 회로망에 존재하는 시뮬라크르임을 숨기지 않는다. 


 

어문선, 가(假)방 No.2    가변크기,   대리석, 오브제 2016



출전; 서울국제조각페스타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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