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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술 다시보기

전준엽

서양 현대조각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오귀스트 로댕(1840∼1917)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2월26일까지 예술의전당). 명성에 걸맞게 미술 전시회치곤 다소 비싼 관람료에도 불구하고 성황을 이루고 있다. 로댕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생각하는 사람' 이다. 이 작품은 로댕 필생의 역작이라고 평가되는 '지옥의 문' 중 일부이다. '지옥의 문' 은 높이 7.57m, 넓이 4m 나되는 부조 형식의 청동문인데 무려 186명이나 되는 인물이 지옥의 형벌에 몸부림치는 끔찍한 장면을 형상화한 것이다. '지옥의 문' 은 단테의 '신곡' 에서 주제를 따왔다. 로댕은 단테의 비판적 현세관과 자신이 살고 있던 파리 당시의 세기말적 풍조를 대비시켜 작품화한 것이다.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많은 작품 중 가장 중심적인 존재인 '생각하는 사람'은 인간의 숙명에 대해 끝없는 명상에 잠겨있는 모습이다. 로댕이 가장 아꼈다고 알려진 이 작품은 '지옥의 문' 을 구상할 당시부터 등장하여 오랜 세월 그의 분신처럼 자라왔다. 뫼동에 있는 자신의 무덤에 놓일 작품으로 '생각하는 사람' 을 선택한 점으로 보아, 이 작품은 '고독한 초인을 천재적 착상으로 자기 형상화시킨 것' 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작품은 원래 '지옥의 문' 에서 높이 68㎝의 상으로 제작돼 '시인' 이란 제목이 붙여졌다. 1888년 독립된 작품으로 크게 제작됐다(높이 186㎝).

필자가 이 작품을 실물로 처음 본 것은 1997년 겨울 파리의 로댕미술관에서였다. 그 전까지 사진이나 복제품으로만 대할 수 있었던 '생각하는 사람' 의 원작을 만났을 때의 감동이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있다. '생각하는 사람' 은 우리 모두에게 가장 예술적인 작품의 상징처럼 인식돼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도 같은 주제로 '생각하는 사람' 을 능가하는 예술작품이 있다. 로댕의 작품보다 1,200여년 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표현력에서도 한차원 높은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금동 미륵반가사유상'. 이 작품은 제목에서도 나타나듯이 '생각' 이라는 추상 개념을 사실적으로 훌륭하게 구현한 것이다. 희망의 세계를 상징하는 미래의 부처(미륵)를 명상의 이미지로 바꾸어 놓은 솜씨는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조형미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금동 미륵반가사유상' 은 국보 78호와 국보 83호가 있는데, 필자의 생각으로는 미소년의 청순한 생동미가 잘 나타난 83호 쪽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빼어난 사실감과 곡선의 세련미로 생각의 깊이감을 한층 고조시킨 이 걸작은 당시 일본에까지 영향을 주어 교토 광륭사의 '미륵보살반가상' 을 탄생시킨다. 일본 국보로 지정된 광륭사 반가상은 '미륵반가사유상' 을 그대로 모방한 작품이지만 조형의 완성도나 생동감, 긴장미에서 조금 못미치는 작품으로 보인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광륭사 반가상을 보고 '나는 일생동안 이만큼 진정으로 인간 실존의 평화스러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작품을 본 적이 없다' 고 말했다고 하는데, 그가 우리의 '미륵반가사유상' 을 보았다면 무슨 말을 했을까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 머리 속에 '미륵반가사유상' 은 예술 작품보다 '유물', '불상' 정도로 개념이 잡혀 있다. 심지어 인터넷 용어 검색의 종류에도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은 청동조각 예술작품으로, '미륵반가사유상' 은 불상, 유물 등으로 분류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의 예술품을 예술작품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만드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통념은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매스컴의 주도로 연일 관람객 대박을 터뜨리고 있는 로댕전이 열리고 있는 예술의전당의 후미진 곳에서는 지금 조선시대 임금 등의 글씨전인 '어필전' (2월10일까지 서예관)이 열리고 있다. 초라한 시설이 송구스러울 정도로 귀중한 이 전시회에는 현대 추상화를 압도하는 양녕대군의 초서와 완벽한 구성미가 압권인 대원군의 난초, 선조ㆍ정조ㆍ안평의 글씨가 우리의 예술적 자존심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우리는 그것을 짓밟고 로댕만을 예술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경향신문〉2003. 1. 25 오피니언 / 향기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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