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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미술에 대해 말하기

유재빈

내 직업은 미술에 대해 말하고 쓰는 것이다. 일주일에 평균 10시간 정도 강의하니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일하는 시간의 1/4은 미술에 대해 말하고 있다.글을 쓰는 시간은 그 정도로 길지 않지만 더 집중된 힘을 필요로 한다. 강의는 대부분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에 대해 얘기하지만, 글 쓰는 것은 꼭 새로운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명받지 않은 작품에 관해 쓸 뿐 아니라, 새 증거를 찾고, 새로운 시각으로 쓴다. 내가 작지만 뭔가 새것을 쓰고 있을 때 나는 계속 강단에서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내 직업의 더 중요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말하고 쓴 것을 듣고 읽는 것이다. 나는 나 스스로 말하고 쓸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 그렇게 하라고 가르친다. 강의 중에 자발적으로 질문하고 의견을 내는 학생은 거의 없다. 나도 그런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들을 탓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 그들에게 시험과 과제를 내준다. 그러면 학생들은 시험 답안지에 빼곡히 뭔가를 써내고, 자신에게 주어진 발표시간 동안 열심히 말한다. 학기가 끝나면 긴 레포트를 써내고, 여러 학기를 지내고 나면 그보다 긴 학위논문을 낸다. 내가 연구실에서 보내는 시간의 아주 많은 부분은 그 답안지와 레포트와 논문들을 읽는 데 쓴다.



김홍도, 그림감상,《 단원 풍속도첩》, 33.8×27.2cm, 국립중앙박물관


이렇게 얘기하니 내가 정말 미술에 대해 말하고 쓰는 전문가같다. 내가 미술사학자인 것은 맞지만, 미술에 대해 말하고 쓰는 데에 전문가는 없다. 세간에 나온 미술책 중에는 미술사 박사보다 아닌 사람이 쓴 것이 더 많고, 미디어에 미술을 소개하는 사람들 역시 학자보다 아닌 사람이 더 많지만, 나는 그것에 불만이 없다. 나는 미술에 대해 말하는 것에 어떤 자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반대로 누구나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불만을 가지는 것은 오히려 전문가만이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는 반대로 미술에 대해 미디어에서 말하는 기회를 가진 사람을 모두 전문가로 탈바꿈시킨다. 실제로 전문가든 아니든 미디어는 권위적인 목소리를 요구한다. “이것은 진품입니다.”와 같은 평가, “이것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유물입니다.”와 같은 판단을 요구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TV 속 ‘일반인’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TV 밖 우리들은 채널을 돌려버린다.



‘전선택: 대구 원로작가 회고전’(1.29-5.19) 전시전경
제공:대구미술관


자신의 눈과 논리로 미술을 말하다 왜 미술에 대해서는 야구나 축구처럼 맥주를 마시며 열 올리며 얘기할 수 없는가. 축구해설가만이 해설하지 않는다. 누구라도 게임의 규칙을 알고, 선수의 이력을 알고, 그 팀과 리그의 경기를 봐왔다면 한마디쯤 할 것이다. 한 마디 뿐이랴, 조용히 앉아서 감상만 하는 축구 경기를 상상할 수 있는가. 우리는 단순히 선수를 격려하고 응원할 뿐 아니라, 코치하고, 전략을 짜고, 해설가와 논쟁을 벌인다. 그 뒤에는 축구해설가가 아니어도 축구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축구 팬들의 믿음이 있다.

내가 학교에서 하는 일은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입으로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전문가연하지 않고, 수많은 인용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자신의 논리로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 게임의 규칙을 가르치고, 선수의 이력을 가르치고, 팀과 리그의 역사에 대해 가르친다. 그림의 문법과 화가의 일생과 여러 시대에 걸쳐 그려진 그림들을 알고 나면 그림이 축구 경기처럼 보일 것이다. 한마디 안 하고는 못 배길 것이다. 내가 하루 대부분을 미술에 대해 말하고 쓸 힘도 거기에 있다.

- 유재빈(1977- )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 졸업, 동 대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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