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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김정자展 / 공간 접기 - 나만의 꽃과 풍경을 찾아 나선 내면의 마음

김성호

공간 접기 - 나만의 꽃과 풍경을 찾아 나선 내면의 마음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화가 김정자는 접힌 세상 속의 풍경과 정물을 탐구한다. 그 풍경이란 대개 탁 트인 짙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드넓은 풀밭이거나 푸른 강을 안고 있는 강가 혹은 호수의 풍광을 담은 것이다. 또한 정물은 대개 화면 가득히 채우고 있는 꽃 한 송이의 아름다운 자태를 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접힌 세상’이라니? 그것은 그녀가 탐구하고 있는 풍경과 꽃송이를 담고 있는 공간을 마치 ‘접힌 종이’처럼 만드는 일루전 효과에 기인한다. 작가는 이러한 조형 방법론을 ‘공간 접기’로 호명한다. 그녀가 이처럼 풍경과 정물을 ‘접힌 공간’과 같은 환영 속에 소환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I. 꽃과 풍경 - 오랜 미적 소재의 재해석 
꽃이나 풍경은 오늘을 사는 화가에게 있어 진부한 소재이다. 르네상스 이래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그토록 많은 화가들이 꽃과 풍경을 탐구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오랫동안 모색해 왔기 때문이다. 꽃과 풍경을 소재로 한 재현적 회화에 있어서, 더 이상 새로운 조형적 탐구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진다. 그래서일까? 20세기부터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찾아 나선 많은 화가들은 꽃과 풍경에서 새로운 조형 방식을 실험하는 것을 포기하고 20세기 중반부터 추상과 설치의 언어로 재현 회화의 식상함을 탈주하고자 했다. 20세기 중반까지 재현 회화를 통해 꽃과 풍경을 붙들고 있었던 것은 초현실주의였고 그 이후부터는 포스트 팝을 잇는 하이퍼리얼리즘이 고작 꽃과 풍경에 관한 재현 회화에서 있어서 새로운 해석을 할 수 있는 바탕처럼 간주되기도 했다. 국내에선 1970년대 동양의 수묵과 결합한 서체 회화나 극사실 회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주의적 풍경을 담아내는 형상 회화가 간신히 명맥을 잇고 있었다고 회고해 볼 수 있겠다. 최근에는 소재만 자연일 뿐 재현적 회화가 아닌 미디어아트나 오브제로 꽃과 풍경을 주제화하는 경향도 엿볼 수 있다.  
21세기의 많은 화가들이 꽃과 풍경에서 재현적 회화를 고수하는 한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창출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푸념하면서 하나둘 떠나가 버린 자리에서 화가 김정자는 자신의 조형 언어 찾기를 부단히 모색한다. 오랜 미적 소재인 꽃과 풍경을 재해석하면서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것이다. 


김정자, Inner mind 18-010, 2018, oil on canvas, (73×43.5)


II. 공간 접기 -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 
화가 김정자가 작명한 ‘공간 접기’는, 그녀에게 있어서 캔버스 위에 펼쳐지는 꽃과 풍경을 새롭게 자리하게 만드는 ‘회화의 장(場)’이 된다. 화면을 수직과 수평으로 분할하면서 ‘공간 접기’의 효과를 탐색하는 김정자의 회화 안에 자리한 꽃과 풍경은 마치 ‘사진을 접은 듯한 회화의 바탕’ 위에 자신의 모습을 살포시 얹는다. 따라서 접힌 화면 속에 자리한 꽃과 풍경은 더 이상의 현실의 꽃과 풍경이 아닌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편평한 평면을 실제로 ‘접힌 사진’처럼 보이게 만드는 3차원의 투시적 시점과 더불어 그 위에 자리한 꽃과 풍경이라는 2차원평면 이미지는 살포시 접점을 가지면서 하나의 장 안에서 만난다. 때로 낮은 상자처럼 입체를 만든 바탕 위에 얹힌 꽃과 풍경은 어떠한가? 분명 현실계에서 불가능한 이러한 기이한 이미지의 만남은 초현실주의의 데페이즈망(dépaysement) 기법을 원용함으로써 가능해진 것이다. ‘추방하는 것’이란 뜻을 지닌 데페이즈망이란, 일상적인 관계에서 사물을 추방하여 낯선 곳에 위치시킴으로써 사물끼리의 ‘기이한 만남’을 성사시키는 조형 방식을 지칭한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그녀의 작업은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과 일정 부분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초현실주의 회화가 주로 사물과 사물의 만남을 꾀하는 방식으로 현실적 이미지로부터 탈주한다면 그녀의 회화는 배경과 사물 사이의 만남을 주선하면서 사물이 놓이는 배경을 새롭게 변주하는 방식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김정자의 꽃과 풍경은 ‘익숙함’을 기저에 둔 상태에서 ‘살짝 비틀어진 낯선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선다. 그것은 ‘회화에서의 공간 접기’라는 매우 선명한 방식의 조형 언어로부터 야기된 것이다.  


김정자, Inner mind 16-004, 2016, oil on canvas, (73×61)





III. 내면의 마음 - 나만의 꽃    
김정자의 최근작들은 〈Inner mind 18-012〉의 경우처럼 ‘내면의 마음’이라는 뜻의 영문에 개별 작품마다 년도와 일련 숫자를 부기하는 방식으로 제목을 표기한다. 꽃이나 풍경을 소재로 한 그녀의 모든 작품에 ‘내면의 마음’을 붙인 까닭은 무엇일까? 화려한 외양의 꽃에서 ‘아름다운 내면’을 찾고자 한 것일까? 
일반적으로, 꽃은 남성보다 여성과 친족 관계인 것처럼 각인된다. 꽃이 지니는 생식적 기능뿐 아니라 조형성의 차원에서도 남성보다 여성을 주로 은유하는 까닭이다. 보라! 암술과 수술 그리고 그것을 품고 있는 꽃잎이나 꽃받침과 같은 '화피(花被)'가 서로 만나는 요철(凹凸)의 조형성, 프랙탈(fractal) 구조처럼 반복 생산되는 미묘한 꽃잎들의 대칭적 형태와 유선형의 폼(form) 등은 곧잘 꽃을 모태(母胎)의 여성으로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줄기와 꽃받침이 한 덩어리로 만들어내는 통일감, 가느다란 줄기 위에 풍성한 꽃이 얹힌 비례가 만들어내는 긴장감 그리고 저마다 다른 화려하고 선명한 색은 ‘부귀, 미, 하모니, 사랑, 재생’ 등 이미지로 풀어내는 여러 상징들을 이끌어 낸다. 
주로 꽃을 소재와 제재로 삼고 있는 김정자의 회화에서 이러한 여러 상징은, 휠러(P. Wheeler)의 관점으로 관습적 상징(Conventional Symbol)으로 대별된다. 또 다른 차원에서 ‘꽃’의 정수(精髓)이자 대표적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은 원형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다 꽃은 자연의 원형 상징이다. 그것은 자연을 대표하는 여러 식물 중 대표적인 무엇이다. 
앞서의 질문으로 돌아오자. 화가 김정자가 이러한 화려한 외양과 상징이 가득한 꽃을 ‘내면의 마음’으로 비유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꽃이 지니는 은은하거나 짙은 ‘꽃 특유의 향기’ 때문인가? 필자가 보기에, 이러한 ‘내면의 마음’이라는 작품명은 화가 김정자가 자신만의 꽃을 찾기 위한 방식으로 설정한 조형 태도로부터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화가 김정자만의 꽃이 과연 있는가? 꽃이란 만인의 꽃이 아니던가? 꽃을 일상적으로 대면하는 화가의 입장에서 꽃의 외양보다 꽃의 내면을 탐구하려는 노력은 어찌 보면 합당한 일처럼 보인다. 고흐가 자신의 내면을 투사하는 해바라기를 그리면서 자신만의 꽃을 표현해 냈듯이, 김정자 또한 자신의 내면을 화제의 대상인 ‘꽃(들)’에 투사하면서 자신만의 꽃을 탐구한다. ‘내면의 마음’으로 찾는 ‘나만의 꽃’! 바로 그것이 작가 김정자가 오늘도 캔버스 앞에서 붓을 드는 ‘동인(動因)이 된다. ●


김정자, Inner mind 16-003, 2016, oil on canvas, (53.0×45.5)


단평 : 화가 김정자는 풍경과 꽃이라는 오랜 미적 소재를 초현실주의적 데페이즈망과 ‘공간 접기’라는 독특한 조형 언어를 통해서 ‘내면의 마음’을 다해 ‘나만의 꽃’을 찾아 나선다. 

출전/
김성호,  「공간 접기 - 나만의 꽃과 풍경을 찾아 나선 내면의 마음」,  전시평, 『한수원과 함께하는 지역예술인 지원사업』, 경주문화재단, 자료집, 2019
(김정자展, 2019. 6. 5~6. 11,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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