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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평│이연균展 /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

김성호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프롤로그 
작가 이연균이 십 년 만에 개인전을 개최한다. 9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작업했던 작품들을 선별하여 100호 내외의 평면 작품 20여 점과 함께 설치 퍼포먼스를 기록한 영상을 선보인다. 그는 ‘마른 솔잎’을 캔버스나 패널, 종이 위에 부착하는 방식으로 추상화된 화면을 구축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 성찰한다. 
이번 전시는 작품명인 ‘Vanish’처럼 ‘세상에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을 노래한다. 덧없이 사라지는 모든 것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작가는 이러한 생성, 소멸이 곧 자연의 법칙임을 체득하면서 ‘자연이 함유하는 우주적 질서와 법칙’을 경외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한편 그의 작품이 지향하는 자연에 대한 무한 경외는 결국 인간의 자연에 대한 구속, 훼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소환한다. 작가 이연균의 이러한 조형적 성찰은 구체적으로 그의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가? 


이연균, Vanish, 2018, Dry pine needles on canvas, 162.2×130.3cm




II. 자연과 인간 사이의 성찰    
작가 이연균은 경주 인근에서 채취한 마른 솔잎(솔가리비, Dry pine needle)을 캔버스나 패널 위에 붙이는 방식으로 물감 대신 자연물 오브제가 창출하는 ‘회화 아닌 회화’에 천착한다. 접착과 옻칠 등 여러 조형의 과정을 거치는 과정을 통해서 주제인 'Vanish'처럼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해서 성찰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연이자 곧 자연의 법칙이다. ‘자연(自然)’은 “사람의 힘이 더해지지 아니하고 세상에 스스로 존재하거나 우주에 저절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나 상태”를 지칭한다. 즉 우주의 자연은 저절로 생성한 존재이자 저절로 변화 소멸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자연의 다른 개체들로 생존을 이어간다. 그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생각해 보자. 자연은 태초의 신화 세계 혹은 문화인류학적 시발점에서부터 인간을 포함하는 모든 존재의 근원적 모태였다. 자연은 인간, 동물, 식물, 광물을 아우르는 거시적 세계이자, 모든 미시적 존재들의 합집합이었다. 주지하듯이, 인간은 문명을 창출한 이래 스스로의 미시적 존재 범주를 탈주하고 세계의 주체로 우뚝 서게 되면서 인간의 ‘어머니’였던 자연을 구속하고 대상화시키기에 이른다. 그러한 까닭으로 오늘날 자연은 인간에 의해 대립적 관계로 자리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이제 어머니의 품을 떠난 어린이의 입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자연’은 이제 ‘자연 아님’의 ‘부자연’의 존재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작가 이연균은 인간의 ‘종속적 대상’으로 간주되어 왔던 자연을 ‘주체’로 다시 세운다. 화면 위에 마른 솔잎들을 채우고 그 솔잎들을 해체하거나 훼손하면서 물감 대신 회화의 도구로 전면에 내세우면서 자연의 의미를 성찰한다. 자연을 훼손하고 그 위에 인공을 덧칠하는 그의 작업은 역설적으로 동시대에 멸종의 위기에 이르고 만 ‘자연의(of nature), 자연에 의한(by nature)’ ‘자연 주체의 세계’를 다시 소환시키고자 한다. 즉 인간의 자연에 대한 구속적 행위를 재연하면서 자연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다. 
주지하듯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분이었던 자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문명과 문화라는 이름으로 자연의 품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을 구속과 종속의 대상으로 만들어 왔다. 게다가 자연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인간 자신과 대립적인 존재로 만들어 왔다. 자연은 그저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위기의식과 더불어 자연이라는 거시적 주제 아래 그의 회화 아닌 회화는 전개된다. 이연균의 전시는 따라서 ‘자연의 속성을 오염시키고 인공의 것으로 뒤덮은 오늘의 상황’을 전제하는 것이자, 그것을 통해서 자연의 위대한 순환의 질서를 성찰하는 것이다. 


이연균, Vanish, 2016, Dry pine needles on Korean paper, 90.0×120.0cm 



III.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는 ‘회화 아닌 회화’     
필자는 앞에서 이연균의 전시를 ‘자연에 대한 훼손과 도구화’를 표방하는 조형 언어를 통해서 자연의 순환적 질서를 드러내는 자연 미학에 천착하는 것으로 설명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는 마른 솔잎을 접착제로 화면에 부착하고 안료 등을 덧씌워 ‘자연물로 만든 회화’를 선보인다. 마른 솔잎은 살아 있는 자연물의 주검이다. 그것은 죽음/삶, 소멸/생성 사이의 합체가 현현(顯現)시키는 존재론적 미학 뿐 아니라 사물의 존재론부터 인간 존재론을 유추케 하는 암시적 메타포(implicit metaphor)가 된다. 마른 솔잎이라는 자연물은 캔버스나 패널 위에서 예술로 새롭게 태어난다. 가히 그것은 '사물의 죽음으로부터 인간의 삶을'을 이끌어내는 활유법(活喩法)'에 다름 아니다. 
특히 마른 솔잎 위에 덧씌운 안료와 미디엄은 마른 솔잎의 주검을 '투명에 가까운 반투명'으로 덧씌워 이전보다 짙은 다른 존재, 즉 사물로부터 예술의 존재로 장소 전이하도록 돕는다. 그것은 마른 솔잎이라는 주검을 염을 하듯이 감싸 안는 '창작의 염(殮)'을 실천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죽은 자연을 보존하고 예술로 소생시키는 이연균의 작품 〈Vanish〉 연작은 '자연의 죽음 이후의 탄생이라고 하는 존재론적 미학'을 시각적으로 실천한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연균의 작업에서 마른 솔잎이라는 자연물의 죽음은 소멸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죽음이 또 하나의 생성을 낳기 때문이다. 그것은 순환의 질서를 가시화하는 자연 법칙이다. 이처럼 이연균의 작업은 마른 솔잎의 주검이 자연 본연의 질서를 순응하여 따라가는 ‘회화 아닌 회화’ 즉 자연물로 만든 회화’를 잉태케 한다.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는 그의 회화는 어떠한 조형적 질서를 추구하는가? 그는 마른 솔잎을 격자무늬 속에 가지런히 배치하여 획일화된 조형 속에 자연을 거하게 하거나 파쇄한 솔잎 가루를 바탕에 깔아둔 채 그 위에 솔잎 뭉치를 드문드문 놓아 두어 물감이 이루는 바탕과 물질의 대비를 재연하기도 한다. 또는 기본적 도형 안에 자연물을 위치시킴으로써 유기적인 자연의 형상을 자연의 본원적 질서로 평가받는 추상적 원형 속에서 탐구하기도 한다. 그것은 어찌 보면 짧은 붓터치로 화면을 만들고 그 위에 가첨하는 조형 공간 탐구의 진지한 하나의 방식처럼 간주되기도 한다. 
분절과 연속, 병립과 대립 그리고 응축과 확산의 조형 언어가 횡단하는 그의 평면 작업은 오늘도 여전히 자연의 생성소멸의 법칙을 따른다. ‘물감이 아닌 물감’으로 만들어진 ‘회화 아닌 회화’를 지향하면서 말이다.



이연균, Vanish, 2018, Dry pine needles on canvas, 97.0×162.2cm 



IV. 에필로그
이연균의 작업은 마른 솔잎 작업을 통해서 사라지는 것들을 탐구한다. ‘여기, 지금’에서 죽음과 주검이라는 부재를 탐구하는 그것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를 드러낸다. 또한 그것은 자연의 주검으로부터 예술의 생성으로 자리 이동하는 무엇이다. 보라! 녹색을 잃은 솔잎이 갈색의 새로운 예술로 태어난 변이의 과정을 말이다. 주지할 것은 그의 작업이 인간의 자연에 대한 구속, 훼손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비판적 성찰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

단평: 이연균의 회화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구속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작업이다. 또한 그것은 자연의 주검을 예술의 생성으로 되살리는 작업이자, 우주의 순환이라는 자연 질서와 법칙을 가시화하는 ‘회화 아닌 회화’ 즉 ‘자연물이 예술 존재로 변이하는 회화’로 평가할 만하다. 

출전/
김성호,  「사라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외」,  전시평, 『한수원과 함께하는 지역예술인 지원사업』, 경주문화재단, 자료집, 2019
(이연균展, 2019. 11. 13~11. 18, 인사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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