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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홍영인/ 집단퍼포먼스와 황색깃발, 시간의 복원

최태만

이 작가를 추천한다(23)

작년 런던의 사치갤러리에서 개최한 ‘코리언아이(Korean Eye)’의 성공에 따라 올해에도 ‘환상적 일상(Fantastic Ordinary)’이란 주제로 기획한 전시가 개막과 동시에 주목을 받았으며, 싱가포르를 거쳐 G20정상회의가 열리는 11월에 서울에서도 열린다고 한다.

홍영인은 이 전시에 <2006년 여름 우본 라차타니(Ubon Ratchathani)에서 내가 만난 여인> 등을 출품했다. 직물에 아크릴릭과 자수로 제작한 이 작품은 태국의 우본 라차타니를 여행하면서봤던 불상에서 모티브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옵티컬한 배경으로부터 돌출하는 형상은 붓다의 모습이지만 불상에 전형적인 상호(相好)인 육계(肉)나 나발(螺髮) 대신가발처럼짙은검은색의머리와옷에화려한남방풍의무늬를더한것이특징이다. 같은 맥락에서 제작한 <인천, 리버풀, 바르셀로나, 리버풀에서 내가 만난 아름다운 남자>를 보면 그 중 한 인물이 인천의 자유공원에 세워진 맥아더 동상을 모티브로 제작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작가는 여행 중 발견한 인상적인 기념동상을 촬영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런 작업을 제작하였던 것이다. 세계의 여러 도시는 저마다 도시의 역사와 정체성을 선전하기 위한 기념 조형물들을 가지고 있다. 이 동상들이 작가에게 남성중심주의의 권위를 상징, 강화하는 것으로 비쳤기 때문에 그는 여성의 노동으로 치부된 노동집약적자수의 방법을 이용해 의미를 전복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복잡한 도상이 중첩된 이 작품들은 탈역사화된 이미지의 공화국이 자연 극적 상황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상관없이 각자의 역할극을 펼치는 팬터마임이거나 이야기의 단면이 분절된 채 뒤엉긴 콜라주처럼 보인다.

실제로 홍영인이 발표한 작품에서 연출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2004년 삼청동의 파출소와 우체국을 천으로 싼 ‘가짜’벽으로 건물의 증축을 시도한 <하늘공연장>으로부터 서울시내에서 무작위로 수집한 화분을 작업실로 가져와 그 이미지를 자수로 기록한 <나는 영원히 그리고 하루 더 죄를 짓겠습니다>, 그리고 제1회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에서 발표한 <부풀어 오르는 저수조>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작업은 실재에 바탕을 두고 있으나 허구적이고 연출적인 방법을 통해 실재를 다시 각인하거나 아니면 실재를 지우고 그 위에 가상을 덧씌우는 것이었다. 현실에 실재하는 장소를 연극적 무대로 바꾸는 그의 작업은 장소의 맥락을 다시 작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은 2009년에 했던 집단퍼포먼스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행위예술은 약 500명의 지역주민들이 사북에서 고한에 이르는 길을 따라 행진하는 것이었다. 행렬 중 특별한 그룹에게 석탄박물관에서 빌려온 광업노동자의 작업복을 입도록 했고 나머지는 황색의 모자나 허리띠를 착용하거나, 피켓, 풍선 등 황색으로 된 물품을 소지하도록했다. 작가에 따르면 황색은 ‘불확실한 정체성’을 상징한다고 한다. 어쨌든 사물놀이를 앞세우고 황색깃발을 든 광업노동자들의 뒤를 이어 지역주민들이 황색의 물결을 이루며 도시의 역사가 아로새겨진 여러 장소를 찾아가는 이 작품은 집단시위이 자축제이며 또한 몇년전까지 주요 산업이었으나 지금은 사양길로 접어든 광업도시의 역사를 회고하는 ‘기억의 복원’으로 연출된 것이다.



강원랜드에서 볼 수 있듯이 지역경제활성화의 명분아래 과거의 역사를 지워버리려는 정책에 따라 도시가 변형되고 있음에 착안한 이 작품은 잘 조직된 시위가 과연 예술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제기한다. 시위로서의 예술 또는 예술로서의 시위는 1920년 러시아혁명3주년을 기념하여 나탄알트만(Nathan Altman)이 군대와 군중을 동원해 겨울궁전을 습격하는 장면을 재연한 집단퍼포먼스를 통해 실행된 바 있다. 러시아구성주의와 연관된 무대장치와 입방체까지 동원된 이 퍼포먼스는 홍영인에 의해 연출된 퍼포먼스와 겹쳐지며 ‘잘 조직된 시위’가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홍영인의 집단퍼포먼스는 깃발이나 피켓에 그 어떤 구호도 들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요구조건의 관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점차 지워지고 있는 기억의 복원을 통해 장소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한 지역주민들의 생각을 모으는 것이자 그들이 살고 있는 공간을 새롭게 정의하기 위한 것이다. 모호함을 상징하는 황색은 이들의 연대를 위한 끈이자 새롭게 작성되기를 기다리는 역사서이지 않을까. 비록 일회적인 퍼포먼스로 끝났지만 이 작업은 광부들의 땅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황색깃발은 이 땅에서 살다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달래는 만장이자 앞으로도 이 땅에서 살아야 할 사람들의 역사를 기록해야 할 여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홍영인(1972- )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동 대학원 졸업, 런던 골드스미스컬리지파인아트 디플로마·석사 졸업, 박사과정(현), 다수의 개인전·단체전 및 레지던시 프로그램 참여. 다수의 전시기획. 2003 석남미술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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