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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의 ‘손으로 보는’ 감각이 빚은 그림

심현섭



박환의 ‘손으로 보는’ 감각이 빚은 그림



박환은 시각장애인 화가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눈으로 만지는' 감각은 이에 대한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눈으로 만진다는 말에는 시각과 촉각이 결합해있다. 들뢰즈가 '햅틱(haptic)'이라고 부른 이 감각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감각기관의 성질과 다르다. 일종의 제3의 감각으로, 촉각과 시각이 분리되지 않고 접촉한다. 이와 같은 제3의 감각이 인간과 대상 즉 작가와 대상, 감상자와 그림사이에 작용했을 때 어! 하는 일탈이 일어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생경한 화면은 이러한 일탈의 연속이 낳은 결과물이다. 

눈으로 만지는 감각이 가능하다면 '손으로 보는' 감각 또한 가능하지 않을까. 이 가능성을 박환 작가의 그림은 말해준다. 시각을 잃은 박환은 손으로 보면서 그림을 그린다. 보는 눈을 가진 화가의 ‘눈으로 만지는’ 감각이 은유적이라면, ‘손으로 보는’ 박환의 감각은 은유를 요구하지 않는 직설이다. 박환은 손으로 거리를 재고 텍스쳐를 만지면서 형태를 가늠한다. 이는 손으로 보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사람이 도달하려고 애쓰는 감각의 혼성이 어쩔 수 없이 관념적이라면 불의의 사고로 눈을 잃은 박환이 살로 캔버스 위에 구현하는 감각의 혼성은 생생한 실체다.

박환의 그림에는 마음과 육체의 기억을 매개로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시간의 흐름이 압축해있다. 그는 시력을 잃지 않았을 때 보았던 세상을 기억하여 그린다. 박환이 손으로 그리는 순간은 ‘지금’이지만, 손으로 보는 것은 마음에 잔존해있는 기억으로서 ‘과거’다. 박환이 선천적 시각장애인이 아니라, 화가로서 활동하던 중 사고로 시각을 잃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기억에는 마음뿐 아니라 육체가 보존하고 있는 사물에 대한 몸의 기억이 함께 작동한다. 이로서 박환의 그림에는 기억을 매개로 마음에 자리하던 의지가 몸으로 전이, 공존하는 일탈이 일어난다. 

이러한 일탈 속에 박환의 몸과 마음에 공존하는, 기억으로 말미암은 교차 시간성은 캔버스에 달라붙어 두터운 마티에르를 형성한다. 캔버스 평면을 밀고 나온 마티에르는 촉각을 지향한다. 박환의 '손으로 보는' 감각이 빚은 촉각지향성은 좀처럼 보기 힘든 독특한 화면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그 배경에 숨은, 은유를 요구하지 않는 직설적인 햅틱의 가능성을 발견하는 일은 보는 이의 몫이자 즐거움이다. 

(제1회 에이블라인드(대표 양드림) 시각장애 예술가 전시, 공간 와디즈, 2022. 4.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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