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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현정 / 틈 사이로 난 길

이선영

틈 사이로 난 길

 

이선영(미술평론가)

  

음현정의 작품에는 요즘 말로 ‘루저’의 태도가 깔려 있다. 작가는 이끼같이 사소해 보이는 생물체와 틈 같은 취약한 공간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끼 자체가 음지의 표면이나 틈새에서 서식한다. 자연의 경우 어느 하나도 없으면 안되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빼어난 것의 상징인 예술 작품의 중심에는 특별함이 담겨야 한다고 믿어진다. 식물의 경우 지하와 지상과 천상을 잇는 세계수 같은 상징적 존재도 있고, 화려한 꽃과 열매도 있다. 식물은 재료로서도 매력적이다. 탄탄하면서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나무의 재질감은 매력적인 공예품과 작품을 낳았고, 화학 물감이 나오기 전에 자연적 안료의 역할도 했다. 지상에 생명을 가능하게 했던 생명 중의 생명인 식물은 지금도 크기나 생태적 역할 면에서 기념비적 존재의 상징이다. 하지만 음현정은 쓸모나 상징이라는 점에서 확고하게 자리잡은 존재의 틈바구니에 서식하는 미미한 식물에 눈이 간다. 식물분류학에서도 이끼는 낮은 위치에 있다. 




Don't Try1 45.5x53 Acrylic on Canvas 2016




Don't Try2 45.5x53 Acrylic on Canvas 2016



자연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는 저자 아니타 알부스는 [마술의 그림들]에서 18세기에 식물분류학을 처음 정립한 린네를 인용한다. 그에 의하면 린네가 가장 사랑했던 성서 문구는 ‘모든 육신은 풀과 같다’였으며, 오비디우스의 [변형담]은 린네가 즐겨 읽었던 책이었다. 자연은 이 식물학자에게 ‘삶의 변화를 반영해주는 거울’이었다. 린네의 견해에 따르면 식물군은 위계적인 배열체계를 지닌다.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것은 이끼이고 농부의 위치에 있는 것은 풀이며 약초는 귀족에 해당된다. 식물 중 가장 강력한 대상인 나무에서 린네는 군주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번 전시의 작품에서도 등장하는 단어인 ‘틈’은 린네가 ‘가장 낮은 지위에 있다’고 평가한 이끼라는 이미지에 상응하는 공간적 개념이다. 작가는 틈과 이끼의 관계에 대해, ‘그 불편한 장소에서도 이끼의 나아가려는 의지와 본능’을 말한다. 전시된 작품에도 있지만, 이끼는 생사를 불문한 다른 식물의 일부에서도 자란다. 


이끼를 20년 넘게 그려왔던 터라 워낙 잘 그린다. 하지만 선택된 소재를 단순히 재현하거나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끼처럼 잘 보이지 않는 존재를 하얀 화면에 충만하게 드러내면서 그 형태나 생태에 관련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음현정은 언어적 장치를 통해 이끼가 작품에 들어온 이유를 부연한다. 언어는 ‘미미한’ 존재에 개념적 힘을 부여한다. 이끼는 말할 것도 없고, 인간의 길을 위해 아름드리 나무들도 하루아침에 베어내는 자연의 도구화와 장식화가 빈번한 현대사회를 거스르는 셈이다. 로베르 뒤마는 [나무의 철학]에서 인간중심주의가 초래한 자연의 무력화로 식물의 예를 든다. 그에 의하면 최초에 힘과 성장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vegeter’는 급속하게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 한때는 자연 속에 모든 기호가 함축되어 있었다. 즉 자연 그자체가 내적인 힘에 의해 솟아나는 하나의 의미를 상징했던 것이다. 하지만 인간중심주의가 도래한 후 모든 자연은 그 본래의 가치를 상실했다. 




초록의 땅 162x97 Acrylic on Canvas 2002



어떤 풍경 162x100 Acrylic on Canvas 2019 



어떤 풍경 73x53 Acrylic on Canvas  2019



음현정의 작업에서 식물과 언어적 기표의 결합은 자연의 원초적 힘에 대한 복권을 지향한다. 수많은 선이 모여 만들어지는 이끼는 글쓰기에 대한 적절한 비유가 된다. 이미지와 개념은 식물처럼 자란다. 음현정의 경우 ‘나무보다는 뿌리줄기의 모델’(질 들뢰즈의 구별)로 자란다. 자라면서 다른 것과 만나면 서로가 변형된다. 이끼로 화한 개념은 건조한 관념이 아니라 촉촉한 사유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다. 경직되지 않고 융통성 있다. 이끼는 구축하기보다는 따라간다. 따라가지만 똑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 2021년 개인전 [집, 짓는 이야기] 전에서의 출품작들처럼, 집 같은 구축적 존재도 접히고 펼쳐지는 종이상자처럼 표현한 바 있다. 접고 펼치기는 구축보다 훨씬 다양한 존재태를 상정한다. 수년째 시간 날 때마다 하고 있는 김 드로잉 또한, 엄격한 사각형 내부를 가득 채우는 수많은 붓질 자국들은 반듯한 외곽선을 무색하게 한다. 


A4 크기의 종이에 100장 넘게 한 김 드로잉은 김을 그렸다기 보다는 어부가 김을 만들 듯이 작업했다. 먹을 묻힌 붓자국은 바로 김을 이루는 섬유질이 되었다. 검은 김도 있고 푸릇한 파래김도 있다. 전체의 생산계획에 의해 한번 그어진 선과 수없는 층으로 이루어진 궤적은 차이가 있다. 일괄적으로 직사각형들이 인쇄된 종이를 채운 김 형태의 드로잉은 기계적 반복이 아닌, 차이를 만드는 반복을 실행한다. 주어진 직사각형들을 채우는 김 드로잉의 반복과 차이는 이끼를 그릴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덩어리와 덩어리 사이의 틈을 길 삼아 특정한 목적지 없이 나아간다. 개념과 버무려진 이끼의 이미지는 중심을 벗어난 주변적 존재, 타자와 소수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다. 최근 작품에 서울 산동네 풍경을 기억하면서 집을 그린 작업은 처음부터 미술을 하기에는 유복하지 않았던 시절을 떠올린다. 지금은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하는 작업실에서 평생의 업으로 삼은 일에 몰두하고 있지만, 작가는 예술하는 삶 자체가 이끼의 거처인 음지와 틈새와 비슷하다고 본다. 




틈(부분)



틈(부분)



틈(부분)



틈(부분)



이끼의 낮은 자세는 평면적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보게 할 것이다. 2000년 여름 청와대 뒷산 작업실에서 보게 된 풀과 이끼는 작업에 지속적으로 등장하여, 이번 전시까지 20년째 자라나고 있다. 작업 또한 이끼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증식해왔다. 증식의 방향성은 정해지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한 작품처럼 유목적이다. 작가는 ‘그들은 매번 자신에게 적절한 생태의 방향으로 촉수를 뻗고 방향을 틀어 노마드(nomad)적 지향을 바탕으로 자연의 주인공에게 기꺼이 초록 융단을 깔아주며 조연의 역할을 자처한다.’고 말한다. 음현정은 미미한 존재에서 경이로움을 발견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유목적 주체]에서 경이란 끌리되 감히 정복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거리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경이의 대상을 전유하고자 하는 차별화와 배제를 작동시키는 포섭이 아니라, 각 존재에게 고유한 차이를 철저하게 존중하게끔 하는 새로운 연합의 가능성을 부여한다. 경이의 감정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타자를 우리 욕망의 대상으로 환원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 


로지 브라이도티는 성적 차별을 비롯해 차이가 차별이 되는 것에 대해 반대하면서 ‘유목적 주체’를 주장했지만, 그것은 확고한 정체성이 아니라 되기(생성)를 시도하는 음현정의 작업에도 해당된다. 음지와 습지 등, 눈에 띄지 않은 비좁은 공간에서 생장하고 뻗어나가는 이끼는 삶과 예술에 대한 은유로 다가온다. 이끼는 열악한 조건에서 넓게 퍼지는 생을 살아간다. 중심이 아니라 주변이며 주체이기보다 깔아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끼를 단순히 소재로 삼기보다는 이끼의 몸과 마음으로 그린다. 음현정의 작품에서 이끼는 단독적이기 보다는 무엇과의 관계 속에서 나타난다. 그 무엇은 언어같이 추상적인 것도 포함된다. 작품 [초록의 땅](2002)에서 다른 열매의 표면을 대지로 삼아 서식하는 이끼는 유기체를 특징짓는 자족성이 아니라 공존이다. 이끼는 땅에 떨어진 다른 열매를 ‘초록의 땅’으로 여길 만큼 작은 존재다. 작품 [어떤 풍경](2019)에서 바싹 마른 수세미 열매에서 서식하는 이끼는 사막같은 극한의 조건에서도 살아가는 생명을 떠올린다. 




 틈 130x162 Acrylic on Canvas 2020



틈 28x50x7 Acrylic on Wood 2019 



틈(부분)



굴곡진 표면에 자연스럽게 자리한 이끼는 형해로 남은 존재를 또 다른 순환의 주기에 진입시킨다. 한 번의 생은 자연으로, 그다음 생은 예술로 말이다. 하지만 예술이나 예술가 또한 궁극적으로 자연이 된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교차적인 순환이다. 선사시대를 지난 이후 자연은 자연만으로 반복된 것은 아니었다. 예술 또한 예술에서만 자기 기원을 찾는 모더니즘의 미학적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고 있다. 작가는 ‘a는 a가 아니라’고 하면서, 동일성의 논리를 거부한다. 예술도 자연도 인생도 자세히 살펴보면 순수한 동일성보다는 이질적 타자성이 편재한다. 후자가 중요한 것은 변화가 가능한 지점이라는 것이다. 동일성의 논리는 이러한 변화에서 쇠퇴와 죽음을 볼 따름이다. 이끼와 다른 것들과의 만남은 충격적인 조합부터 포근하게 감싸 안은 초록 융단까지 다양하다. 작가는 이끼의 ‘포슬포슬하고’ ‘몽글몽글’한 느낌이 사랑스럽다고 말한다. 촘촘하게 칠해진 이끼는 대여섯 가지의 차이가 있는 녹색의 계열로 이루어져 있다. 


세필로 촘촘하고 느릿하게 완성되는 작품들에 대해 작가는 ‘시간의 조각보’같다고 본다. ‘가능한 방향으로 촉수를 뻗어가는 것처럼, 작업에서도 가능한 방향과 범위로 허락된 시간 위에 이끼를 중첩시켜’ 가게 된 결과이다. 주부이자 작가에게 시간은 통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조각 시간을 활용한 지속적 작업에서 몰입은 차후의 과정이 아니라 붓을 든 순간부터 서서히 이루어진다. 이끼가 돋아날 수 없는 마른 수세미같은 대상을 보면, 마른행주 짜내듯이 시간을 내고 작업하면서, 불모지 같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모습이다. 이끼는 낮은 자세로 임하는 삶과 예술을 낳았다. 일치되기 힘든 삶과 예술을 수렴시키는 과정은 수행적이다. 이끼 작품과 별도로 계속 먹으로 하고 있는 김 드로잉은 특히 불안할 때 작가로 하여금 집중하게 했다. 조명에 따라 드러나는 수많은 붓질은 집적된 시간들을 암시한다. 작업 뿐 아니라, 작가가 좋아하는 밭일도 반복적 수행에서 오는 치유적 효과가 있다. 그렇기에 화두도 중요하다. 




 무제 30.5x30.5x30.5 Acrylic on Wood 2022




무제




무제(부분)



작품에 나타나는 문자나 문장은 더, 틈, ‘시를 짓느라 얼굴이 많이 상하셨습니다’(시인 두보), ‘don’t try’(소설가 찰스 부코스키) 등은 작가가 살며 작업하면서 딱 꽂혔던 문장들이다. 가령 화업을 시작한 이래 생활인과 화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온 작가의 삶을 생각할 때 ‘너무 애쓰지 말아라’는 조언은 단지 순응과 포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무리수를 두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예술은 삶에서 자연스럽게 움터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다. 분절화되어 있는 글자의 속성을 무색하게 하는 보슬보슬한 이끼는 삶의 격언으로 다가온 문구를 감싼다. 시리즈로 제작된 [Don't Try](2016)는 뒤로 갈수록 덥수룩해져서 뼈대가 되는 글자를 잘 알아보기 힘들다. 뼈대로 이루어진 구조(개념)은 발생, 생성, 성장한다. 의미는 형태가 되고, 형태는 형상이 된다. 이러한 문구는 열심히 하되 강박증을 내려놓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한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격언도 있지만, 음현정은 쓸데없이 구르지 않는다. 


치유, 정화, 해방 등등이 작가가 이끼같은 작업을 할 때 받는 선물이다. 선물은 작업에 몰입하면서 나를 잊는 순간에 받을 수 있다. 작품 [틈](2020에서 자연에는 없는 직선들 사이로 흘러내리는 녹즙같이 생긴 것은 이끼다. 건축적 구조를 이루는 직선들 틈 사이 사이마다 초록 이끼들이 자라난다. 전체의 일부인 양 전모를 알 수 없는 구조와 그 사이의 관계가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하얀 캔버스 위에 그어진 기하학적인 선은 ‘틈’이라는 단어의 일부다. 작품 [틈](2020)에서 점과 점을 잇는 선과 달리 이끼들의 느린 질주는 그냥 선이다. 종횡무진으로 뻗어나가는 선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성은 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순간순간 맞딱뜨리게 되는 바닥에 얕은 뿌리를 내리면서 중력에 순응한다. 중력에 거슬러 붕 떠 있는 듯한 단어는 곧 가시화된 중력인 이끼에 의해 불확실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틈이란 단어를 각목으로 입체화하기도 했다. 




間 181.5x72.5 Acrylic on Canvas 2021



間(부분)



間(부분)



여기에서도 어김없이 이끼는 서식한다. 틈이라는 단어와 이끼는 서로를 의지하면서 형태와 의미를 연결짓는다. 개념 속에서 단어는 두께가 없지만 입체로 조형화된 단어는 두께가 있으며, 이 그늘진 곳에서 이끼는 더욱 푸르게 빛난다. 최근 작품 [무제](2022)에서 화면 역할을 하는 주사위처럼 생긴 하얀 정육면체를 덮은 이끼는 액체적이다. 이 전시나 음현정의 작품 맥락에서 이끼로 추정될 뿐이다. 작품 속 세필로 그려진 하나의 단위들은 반드시 식물성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20년 전 우연하게 본 음현정의 3회 개인전에서는 뒤통수 머리털이 풀처럼 보이는 다소간 기괴한 작품들이 있었다. 녹색과 대조되는 붉은색 계열의 대상은 이질감을 더했다. 이후 이끼의 배경이 되어준 다른 유기물로서는 호박, 감꼭지, 배춧잎, 수세미, 귤껍질 등이 있다. 작가는 이것들에 ‘살금살금 퍼져나가는 이끼를 그려 넣으며 존재들의 낯선 결합과 만남을 설정’해본다. 


이러한 만남이나 조합은 ‘닫히고 결정된 것이 아닌 여러 가능성의 갈래를 상상해보며 제안해보는 이야기’이다. 그려진 이끼는 다른 것과 만나 서로를 변형시키지만, 무엇보다도 작업의 수행자 자체를 변형시킨다. 음현정의 이끼 그리기는 이끼의 재현이 아니라 이끼 되기의 기획에 포함된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되기는 진화 적어도 혈통이나 계통에 의한 진화는 아니라고 본다. 들뢰즈에 의하면 되기는 ‘항상 계통과는 다른 질서에 속해있다. 되기는 결연과 관련된다. 진화가 참된 생성들을 포함한다면, 공생이라는 광활한 영역에서다. 운동은 계통적 생산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이질적인 개체군들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통을 통해서 일어난다. 되기는 리좀이지 결코 분류용 수형도나 계통수가 아니다. 되기는 결코 모방하기도 동일화하기도 아니다. 되기는 본질적으로 유동적이며 결코 평형을 이루지 않는 하나의 블록을 만든다...’(천개의 고원 중에서) 




무제 32x32 Acrylic on Canvas 2020



무제(측면)



무제 32x32 Acrylic on Canvas 2020 



무제(부분)



모서리를 부드럽게 굴린 큐브는 다른 평면 및 구조보다 더 밀도 있게 표면을 덮고 있다. 정육면체는 틈이 없기에 보자기처럼 덮으면서 나아가는 것이다. 여러 방향에서 볼 수 있으며, 각도에 따라 이끼와 입체 공백과의 관계는 다르게 보인다. 입방체는 정사각형 캔버스의 또 다른 변형 같다. 음현정의 작업에서 캔버스 가장자리는 이끼의 생태적, 예술적 상징에서 중요해서 특별히 강조할만하다. 정방형 입방체에서는 가장자리 자체가 사라진다. 파괴적 제스쳐 없이도 작가는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해체시키는 것이다. 한편 입체든 평면이든 사각형 구조는 그자체가 코드화의 상징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사는 세상 또한 좀 더 촘촘하게 코드화되면서 틈이 없어지고 있다. 변화를 야기시킬 틈은 이제 주사위 던지기 같은 운(Alea, 로제 카이유와)에서 가능하다. 필연의 뒷면인 우연은 축복 또는 재앙일 터이다. 정사각형 규격의 작품 [무제](2020)에서 캔버스 또한 두께를 가진 사각형으로 간주 된다. 


이미지는 이 지지대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지닌다. 정사각형 캔버스에 그려진 이끼는 정면에서 잘 보이지 않는 옆구리에서 더 활발하게 증식한다. 작가는 캔버스의 중앙은 비워 놓는다. 같은 규격의 캔버스라서 설치적 운용도 가능한 [무제] 시리즈에서 이끼가 하얀 표면을 잠식하는 정도는 각기 다르다. 비슷한 공간을 다르게 누비고 있는 형태들은 시간성이 내재한다. 요컨대 이끼들은 자라는 중이거나 사라지는 중일 것이다. 시간은 서사의 시간을 말한다. 작품 [間](2021)에서 어떠한 형태와도 무관한 선이 질주한다. 큰 화면이라서 그런지 속도감이 있다. 무엇을 가로지르는지, 무엇에 대한 틈인지 모호한 이 작품은 본질과 실체보다는 사이와 관계에 방점을 찍어온 작업의 연장선 상에 있으며, 다른 작품에 비해 추상적이다. 틈들은 연결되어 어느덧 길이 된다. 어디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는 그 길은 지속된다는 하나의 과정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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