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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준영 / 고삐 풀린 자연력

이선영

고삐 풀린 자연력

 

이선영(미술평론가)

  


아트스페이스 휴에서 열리는 안준영의 [수상한 움직임] 전에서 수상함을 추동하는 물질은 물이다. 인간 문명이 큰 역할을 했을 물은 기후 위기로 극지방의 얼음이나 영구동토층이 녹아내리면서,  재난의 기호로 자주 오르내린다. 지구촌 곳곳 가뭄과 홍수가 빈발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에 재난은 서로 긴밀하게 얽힌 연결고리를 따라 이어지곤 한다. 문명의 영향력이 더욱 커짐에 따라, 재난은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닌 편재하는 위험이 되었다. 특히 전시 부제와 같은 제목의 작품 [수상한 움직임]은 붉은 잉크로 그려져서인지 더욱 불길한 느낌이다. 안준영의 작품은 환상적이지만 실제일 수도 있다. 그의 묘사 방식이 편집증적으로 섬세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수시로 무너진다. 영상으로지만, 그의 작품같은 붉은 바다를 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가까이 있는 어떤 나라의 돌고래 떼 학살이 벌어지는 붉은 바다가 그것이다. 안준영의 최근 작품에 동물이 많이 등장하기에 이러한 연상도 과하지 않을 듯싶다. 




안준영_수상한 움직임_종이위에 잉크, 애니메이션 설치_80.0 x 54.5cm 4pc 42.0 x 30.0 cm 1pc_2022, 

아트스페이스 휴 설치전경



안준영_수상한 움직임(부분)_종이위에 잉크, 애니메이션 설치_80.0 x 54.5cm 4pc 42.0 x 30.0 cm 1pc_2022



희생양이라는 대표적 표현이 있듯이, 동물은 인간사회의 허물을 정화하는 희생물이 되어 왔다. 깊은 상처나 죽음의 결과인 붉은 피 때문인지, 붉은색은 위험을 상징했다. 하지만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는 만큼 높은 평가도 받아왔다. 색채학자 에바 헬러는 [색의 유혹]에서 빨강을 색 중의 색으로 평가한다. 그에 의하면 인류는 동굴 생활을 하며 암벽에 그림을 그리던 시절에도 산화철을 함유해서 녹이 슬면 빨갛게 변하는 흙을 사용했다. 에바 헬러는 태초에 빨강이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열정이 창조로도 파괴로도 귀결될 수 있듯, 좋은 것일수록 균형이 중요하다. 화면 밖으로 넘실댈 것 같은 붉은 물은 양가적 감정을 자아낸다. 작가는 그동안의 작품의 주조를 이루던 검은색을 벗어나 다양한 색을 사용하고 싶었고 검은색만큼의 밀도 있는 색이 빨강이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앞으로 다른 색을 더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은 그가 작업에 임함에 있어서 밀도를 중시하고 있음을 말한다. 


연필이나 펜의 선들이 물감만큼의 시각적 강도를 가지려면 얼마나 많은 겹이 필요하겠나. 물감이 사용된 화면이 펜작업과 같이 설치된 경우 그 밀도의 차이는 더욱 극적이다. 살아있는 지구에 얇게 얹혀 표류하고 있는 인간사회는 모든 것이 든든한 반석 위에 구축되어 있는 듯 자신하지만 틈은 많다. 틈은 여기도 저기도 아닌 전이의 지대에 편재한다. 최근작의 토포스인 ‘수역(水域, Morass)’이 그 영역이다. 수역이란 습지나 늪같이 땅도 물도 아닌 중간지대에서 명확히 분류되지 않은 존재들이 서식한다. 대개 A3 사이즈의 종이에 그려진 이미지들에 설치의 방식을 통해 전이의 지대를 생성해 나간다. 그 종이를 자주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짧은 호흡으로 그리기 쉽기 때문이다. 그는 그림이 수사학이라고 본다. 동일한 펜으로 같은 어조로 쓰기보다는 다양한 선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에 여러 매체를 실험 중이다. 그동안 많은 전시를 거치면서 자신을 보다 객관화시켜야 했던 작가에게, 변화에 대한 압박 또한 그가 반응해야 하는 외부적 힘일 것이다. 








(참고) 2021 플레이스막2 설치 전경



푸르게 또는 붉게 표현된 물은 규모가 크지는 않아도 그 밀도에 힘입어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디지털 액자에서 출렁거리는 푸른 물은 단순히 컴퓨터에서 동영상이 실행되는 이미지라기보다는, 기기의 프레임 자체가 용기(容器)처럼 물의 범람을 아슬아슬하게 막고 있는 느낌을 잘 살렸다. 안준영의 작품에는 물이 아니더라도 둑이 무너질 것 같은 위기감이 상존한다. 가장 기본적인 ‘둑’의 상징은 인체다. 몸은 나와 바깥을 구별하는 가장 기본적인 경계를 이루며, 안준영의 작품에서 자주 침해, 또는 손상된다. 인체는 피부가 다 벗겨져 근육이 드러나기도 하고 해골만 남아 있기도 한다.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등장하는 몸은 죽음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작가는 개인에서 전체, 해부학에서 사회질서로 확장될 수 있는 그 선의 영역에서 다층적인 울림을 줄 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작품에서도 몸의 경계는 인류학에서처럼 금기를 낳고 삶과 죽음과도 연동될 수 있는 질서와 무질서의 기준이 된다.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순수와 위험]에서 경계의 설정은 무질서한 경험에 체계를 부여하는 것이 주요한 기능이라고 본다. 그가 연구한 인류학적 사례들은 내부와 외부, 위와 아래, 남성과 여성, 찬성과 반대 등의 차이를 확대하고 강조해야 질서가 창출됨을 보여준다. 금기에 의해 구축된 인간사회에서 경계의 위반은 심각한 위험의 신호인 셈이다. 메리 더글라스에 의하면 갖가지 금기들은 우주의 윤곽과 이상적 사회질서를 추구한다. 인류학적 관례들은 상징적 질서인 제의가 삶으로부터 죽음을 떼어놓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이제 금기가 상시적으로 위반됨으로서, 순수를 되찾는 제의의 효과는 사라지고 제의 자체도 축제와 더불어 사라졌다. 장 뒤비뇨가 [축제와 문명]에서, 그리고 르네 지라르가 [희생양]에서 주장했듯이, 이제 위협받는 순수를 정화할 결정적 수단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윤곽선을 정밀하게 나타낼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윤곽이 명확하지 않는 실체를 드러내려는 안준영은 파괴와 무질서, 죽음의 영역을 가시화하는 셈이다. 




안준영_수상한 움직임_종이위에 잉크, 연필_80.0 x 54.5cm_2022



안준영_수상한 움직임_종이위에 잉크, 연필_80.0 x 54.5cm_2022



그것은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메리 더글러스를 참조하며 쓴 [공포의 힘]에 흐르는 주제이다. 심리 또한 생리와 연결되어 있기에 경계 지대에서의 사건은 중요하다. 안준영의 작품에서 출몰하는 넘실거리는 수위(watermark)는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최근 작업에 등장하는 동물들은 인간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겪는다. 그것들은 눈동자는 한 개가 아닌 여럿으로 분열되어 있다. 머리통 위에 층층이 돌을 올린 채 물속에 얼굴을 담그고 있다. 돌연변이처럼 눈이 변형된 동물들과 함께 배열된 인간의 뒷통수도 크게 뚫려있다. 이 구멍으로 저편의 우주가 보인다. 자아나 주체에 엄습하는 막연한 불안은 구체적인 공포의 이미지로 거듭난다. 이러한 강한 표현은 작가 스스로 경계 붕괴의 위험을 극복하기 위한 강 대 강 전략이라고도 생각된다. 마치 샤먼처럼, 인간이 견딜 수 없을 만큼의 깊은 병을 앓고 이를 극복한 후 다른 이를 치유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나듯, 한술 더 뜨기로 위기에 대응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안준영에게 작업은 단순히 조형적 표현을 넘어선다.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던 불면증이 어느 날 저절로 나은 것도 그에 관련된 작업을 열심히 해서 그런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물론 작가가 그림에 빵을 그린다고 빵이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수년 전 그의 첫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처음 만난 안준영은 젊은 작가의 불안감, 그리고 그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되는 불면증이라는 고통이 반영된 작업이 특이했다. 오랫동안 자신을 마주해온 그가 이제 자연으로 우주로 범위를 넓혀가는 소재들이 눈에 띈다. 그만큼 폭이 넓어졌다는 반증이다. 하지만 자신에 충실한 작업을 해왔던 작가 특유의 연속성은 발견된다. 그것은 지속적으로 경계를 넘나들며 동일성을 위협하는 어떤 힘에 대한 것이다. 펜으로 글자를 따박따박 쓰는 듯한 구체적 표현을 선호하는 작가에게 그 힘은 시기마다 다르게 나타나지만 다양한 ‘수역’들이 등장하는 이번 전시는 물로 대표되고 있다. 



안준영_수역(水域)(Morass)_42.0 x 30.0cm_ink and acrylic on paper_2021



안준영_수역(水域)(Morass)_42.0 x 60.0cm_ink and pencil color pencil on paper_2021



물은 색채와 미디어, 맥락을 달리하면서 최근 작품에 흐른다. 조용하면서 파괴적인 물의 양태는 풍경과 정동(情動)을 연결시킨다. 물은 개체와 우주 모두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은 만유인력처럼 보이지 않는 힘에 의거한 상호작용이다. 뉴턴이 만유인력을 발견했을 때, 그의 적대자들은 멀리 떨어진 것들 사이에 작동하는 힘이 마술적인 느낌을 준다고 비난했다. 설익은 계몽주의는 진리의 빛에 의해 사그러들었지만, 아직도 인류는 뉴턴이 비유했듯이 진리의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에 불과하다. 제임스 글릭은 [아이작 뉴턴]에서 중력의 법칙을 설명하면서, ‘달은 지구를 향해 끌리고(gravitate), 이러한 중력(gravity)의 힘에 의해 당겨져 항상 직선운동에서 벗어나 궤도를 유지하게 된다’고 말한 뉴턴을 인용한다. 안준영이 상상한 썰물이 없는 세계는 ‘지구가 달을 당길 때, 달도 지구를 끌어당긴다’(뉴턴)는 법칙이 사라진, 또는 변질된 세계를 말한다. 


뉴턴이 발견한 만유인력의 법칙은 ‘우주에 있는 물질의 모든 입자는 다른 입자를 끌어당긴다’는 것이다. 안준영은 우주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이 일반화가 무너진 세계를 말한다. 작가가 상상한 ‘썰물이 없는’ 세계는 인력의 작용이 변질되어 일방적 힘만이 작동하는 세계다. 상호적인 관계가 아닌 하나의 흐름만이 있는 단선적 세계가 바로 작가가 바라보는 부자연스러운 세계다. 사회적 시각을 가진 이라면 정의롭지 못한 세계를 말한다. 제임스 글릭의 평전에 의하면, 뉴턴은 만약 이런 원리들이 없다면 ‘부패, 발생, 증식 그리고 생명이 모두 멈출 것’이라고 예언했다. 최근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달이나 천체 이미지는 저 멀리 있지만 지금 여기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다. 물이 달과 같이 등장하는 것은 물의 운동을 지배하는 물리학적 관계를 깔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서로에게 밀접한 영향을 주지만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즉 그것을 앎으로서 지배할 수 있는 투명한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다. 




안준영_수역(水域)(Morass)_42.0 x 30.0cm_ink and pencil color pencil on paper_2021



안준영_수역(水域)(Morass)_42.0 x 30.0cm_ink and pencil color pencil on paper_2021



안준영_수역(水域)(Morass)_42.0 x 30.0cm_ink and pencil color pencil on paper_2021



마치 달의 힘에 반응하는 늑대인간의 변신처럼, 제어 불가능한 외력이 불안과 공포를 야기한다. 안준영의 작품에는 동일자를 위협하는 타자들이 자주 출몰한다. 하지만 해체주의나 현대의 정신분석학은 주체로 대표되는 동일자 자체가 타자에 의해 구성되고 있음은 말한다. ‘수역’에서 물은 미디어처럼 많은 것을 실어 나른다. 물은 유기체에게 꼭 필요한 요소이기에 세계사적으로 문명은 물을 끼고서 번성했지만, 뫼비우스띠처럼 양면적이다. 천체와 인체가 함께 등장하는 작품 [수역](2021)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들 간의 마술적 관계가 표현된다. 달이 뚫고 나오는 듯한 손등 안쪽은 우주의 풍경이 펼쳐진다. 다른 작품에서 달은 손바닥 안에서 나오고 있다. 마치 출산을 하듯이, 또는 마술사가 빈 손에서 공을 빼듯이 말이다. 그의 작품에서 달은 몸을 통과할 수 있다. 전시장에 띄엄띄엄 붙여진 이미지들은 마치 만화의 간격처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남성 누드상으로 유명한, 소우주와 대우주의 질서가 조화롭게 상응한다는 르네상스 이후에 보편화된 세계관이 있지만, 안준영의 작품에서 소우주와 대우주는 생경한 방식으로 만난다. 지구와 달 간의 인력에 문제가 생겨서 작가의 상상대로 썰물이 없어진다면 어떨까. 지금 기후 위기 때문에 북극 얼음이 녹아 생길 재난 상황은 비교도 안될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달이 인간에게 가한 변화가 표현된 작품은 제자리를 잃고 방황하는 고삐 풀린 자연으로 나타난다. 동물은 천체보다는 인간에 더 가까이에 있는 존재다. 그것들 또한 정상을 벗어나 있다. [수역](2021)으로 한데 묶은 몇 개의 작품은 인간과 동물이 함께 등장한다. 개는 인간과 함께 한 지 오래된 동물이라서 그런지 표정이 읽힌다. 관객을 바라보는 작품 속 개의 눈동자는 기형적이다. 그의 작품에서 동물들은 최소한의 조치로 최대한의 이질감을 전달한다. 개와 더불어 실험 동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원숭이는 여러 개의 눈이 박혀있는 모습이 불길하다. 










(참고) 안준영_Ink Spots 시리즈



원숭이가 인간에 가장 가까운 동물이라면 그것은 인간에 대한 비유로 읽힐 수 있다. 한도를 초과한 이 기형적 존재는 특이 상황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가령 수많은 인터페이스로 둘러싸인 현대인에게 오로지 활성화된 것은 산만한 눈들일 따름이다. 순간순간의 흥미에만 몰입하는 인간의 (무)의식은 퇴행적이다. 사회는 이러한 소소한 욕망들의 흐름이 합산된 것에 불과하다. 또한 눈에 가해진 조형적 테러는 작가의 눈 건강이 악화되었음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섬세한 작업을 장기간 할 때의 직업병 같은 것이 가세했을 것이다. 털의 한 올 한 올이 살아있는 묘사는 이상(異常)의 순간을 즉각적으로 전달한다. 물감은 물론 애니메이션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는 있지만, 드로잉하듯이 그린 것들은 본격적인 작업을 위한 예비 단계가 아니라, 자체의 표현력을 극대화한다. 끝이 날카로운 미디어는 작가의 몸과 정서의 상태를 지진계처럼 전달해줄 수 있다. 


안준영에게 연필이나 펜같이 섬세한 도구는 동물과 사물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한 최적의 매체처럼 보인다. 그의 작품이 주는 설득력의 근거가 된다. 층층이 돌을 이고 물속에 머리를 박고 있는 동물은 익사의 공포가 느껴진다. 머리를 짓누르는 어떤 심리적 하중의 가중에 대한 비유적 표현으로 다가온다. 물에서도 사는 거북은 포유류처럼 익사의 공포는 없지만 대신 자신의 등위에 말라 죽어 껍데기만 남은 등껍질을 지고 다니는 모습이다. 생물학 도감에 나올만큼의 상세한 묘사는 동물의 자세한 모습 자체가 기괴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그의 작품에서 거북이는 가상 동물을 포함해서 여러 동물의 모습이 한데 모여있다. [수역] 시리즈는 개별적이면서도 대여섯 개의 장면이 이어지는 패널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각각의 장면을 연결, 확장하여 설치적인 방식으로 운용한다. 막간에 보이는 전시장의 벽은 단순히 이미지들의 지지대가 아니라 상상의 도약이 일어나는 간격으로 활성화된다. 








(참고) 안준영_Ink Spots 시리즈



전시장의 조건에 따라 다르게 배치되어, 그때마다 서사의 맥락은 달라진다. 그림 한 장은 단어가 구문의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를 비롯한 여러 동물 초상들을 일정 간격으로 배치하고 그 아래에 물에 비친 그림자 같은 이미지가 배치된 설치의 경우 또렷한 형태가 녹아버린 듯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이상(異常)은 유동하는 물그림자처럼 경계가 와해되는 순간을 말한다. 생활하고 작업하는데 필요한 기구들이 보이는 실내에 넘실거리는 푸른색 물은 평범한 일상에 들이닥칠 수 있는 사건이 연상된다. 얼마 전 한국에서는 반지하에서의 익사 사건도 있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제작된 작품이지만, 작가의 상상은 항시적인 위험사회의 단면을 예견한다. 물속을 헤엄치며 다가오는 동물의 존재를 강조하는 노랑색 수면은 경계에 대한 감각을 고양한다. 수생동물이 아닌 그 존재는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이렇게 다가오는 존재와 거리를 둘 수 없을 때 어떤 위험이 더해질 것인가. 


모든 것이 불확실하며, 그에 대한 명료한 대처가 불가능하다는 점이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푸른 색감의 다른 작품들, 가령 푸른색으로 물든 날카로운 부리를 가진 존재는 위협적인데, 안준영의 작품에서 블루는 멜랑콜리같은 무거운 감정을 떠올린다.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질병인 멜랑콜리가 예술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말이다. 물과 폭발적 이미지의 공존은 해저화산의 폭발이라든가 하는 자연 현상에도 보여지며 물이든 불이든 경계를 위협하는 힘을 대변한다. 작은 이미지들을 이어서 한 작품처럼 배치한 설치는 파노라마처럼 서사를 이어간다. 작지만 걸 수 있는 벽면이 많은 아트스페이스 휴에서는 파노라마식의 배열은 지양되고, 각각의 서사를 형성할 수 있는 일군의 작품들이 집합적으로 배치된다. [ink spots] 시리즈는 이상과 기형, 죽음의 이미지, 촘촘하고 자세한 표현방식과 느슨하고 간략한 표현방식이 공존한다. 








(참고)안준영_Ink Spots 시리즈



야생동물과 같은 반열에 놓인 인간들은 그동안의 진보에 대해 되묻는듯하다. 동물뿐 아니라 식물도 변형에 가담한다. 이어진 장면들은 심장과 열매, 풍경으로 변한다. 열매같은 형상은 점점 육체의 일부나 풍경으로 바뀐다. 단단하게 닫혀있는 것이 찢어지면서 그 사이로 물이 흐르는 풍경이 되는 식이다. 관점에 따라서 공포스러운 변형이다. 변화하는 도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다. 작가에 의하면 심장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끄집어낸다. 비슷한 구도의 대상은 변형은 계속 이어짐을 말한다. 변형은 시공간의 축을 따라 펼쳐진다. 관객의 동선은 나열된 이미지에 서사를 만든다. 장면과 장면의 연결은 무의식의 흐름을 따른다. 비선형적이다. 안준영은 일상의 안팎에서 벌어지는 경악할 만한 사건을 추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을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설치적으로 운용되는 그의 그림들은 구성/해체되면서 열려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출전; 2022 아트허브 평론지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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