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현대조각, 비물질과 탈조각의 시선 – 20세기 오브제미술의 모험

김영호




현대조각, 비물질과 탈조각의 시선 
– 20세기 오브제미술의 모험 


김영호 |중앙대교수, 미술사가


  20세기 미술의 개념을 통째로 뒤바꾼 오브제미술의 탄생과 전개 양상에 대해 살펴보자. 1910년대에 등장한 오브제는 현대조각의 경계를 넘어 설치미술에서 개념미술에 이르는 다양한 경향들을 탄생시켰다. 이 강의의 목표는 일상적 물품이나 자연물이 예술작품으로 둔갑하는 원리라 할 수 있는 오브제미술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고, 현대조각에 나타나는 비물질화 현상과 탈조각의 개념을 오브제미술의 맥락에서 진단하는데 두고자 한다. 

  오브제(objet)란 사물, 주제, 목적 등의 다중적 뜻을 나타내는 프랑스어로 ‘인간의 의식 앞에 제시된(jet) 어떤 것(ob)’을 지시하며, 구체적 단위의 물질뿐만 아니라 추상적 개념을 통틀어 품고 있는 말이다. 오브제는 실재 오브제(objet réel)과 부재 오브제(objet absent)로 구분되며, 실재 오브제는 다시 인공 오브제(objet artificiel)와 자연 오브제(objet naturel)로, 부재 오브제는 상상적 오브제(objet imaginaire)로 불리우기도 한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오브제는 주로 ‘사물’의 의미로 쓰이고 있으나, 인간의 의식 앞에 제시된 사물, 즉 대상이라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오브제는 인지된 어떤 존재, 즉 대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오브제미술이란 일상 용품이나 자연물 등을 원래의 기능이나 있어야 할 장소에서 분리해 독립된 작품으로 제시함으로써 일상적 의미와는 다른 상징적이거나 환상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예술의 한 수법이다. 오브제미술의 기원은 20세기 초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에서 시작해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네오다다,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아르테 포베라, 대지미술 등의 실험적 운동들을 태동시키며 모더니즘 미술과 대비되는 또 하나의 흐름을 형성하였다. 우리가 마르셀 뒤샹을 모르고 전위미술을 이해할 수 없듯이 오브제미술을 모르고 20세기 유럽 아방가르드 운동을 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 오브제가 예술작품으로 둔갑 되는 원리는 무엇일까? 냇가의 돌이 자연에 있을 때는 그저 하나의 돌멩이에 지나지 않지만, 응접실의 선반 위에 옮겨 놓는 순간 관상용의 ‘수석(壽石)이 되는 것처럼 어떤 사물은 그것이 놓이는 장소나 관찰자의 시선에 따라 각각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한 사람은 집에서는 가족으로 불리고, 회사에서는 직장인이 되고, 교회에서는 신자가 되며, 절간에서는 보살이 되고, 버스 안에서는 승객이 되고, 병원에서는 환자로 불리운다. 이렇듯 하나의 오브제는 그것이 인공물이든 자연물이든 장소를 옮기거나 매달기, 고정하기, 쌓아놓기, 걸어놓기 따위의 행위를 가해 원래 지니고 있던 기능을 박탈시키면 우리에게 색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미술관은 오브제의 원래 기능을 상실시키고 미적(예술적) 대상으로 둔갑시키는 대표적인 장소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오브제의 기호학적 접근과 해석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기호로서의 오브제는 표피적 의미(기표)와 내용적 의미(기의)라는 이중적 리얼리티를 지닌다. 기호로서의 오브제는 연출가의 의도나 관객의 특수한 의지에 따라 의미 부여된 개념이 있을 뿐 스스로 어떠한 확정적 의미를 가질 수 없는 대상이다. 예술의 영역에서 기호화된 오브제는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등의 인문과학적 성취와 연계하며 다양한 개념들을 파생시킨다.

  이제 오브제미술의 기원과 전개 양상에 대해 살펴보자. 오브제는 입체주의의 ‘파피에 콜레’와 다다의 ‘레디메이드’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초현실주의에 의해 하나의 예술 기법으로 제시되었다. 콜라주와 전치(轉置) 그리고 설치 따위의 기법이 그것이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난 이후에는 네오다다(Neo Dada), 팝아트, 누보레알리즘, 아르테 포베라, 대지미술 등으로 확산되었음은 위에 언급한 바와 같다.  

  오브제미술의 기원의 하나인 파피에 콜레는 1912년 파블로 피카소가 만든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에서 등나무 무늬의 종이를 화면에 오려 붙이며 시작되었다. 종이의 종류가 신문지, 벽지로 확대되었고 초현실주의에 와서 콜라주 기법으로 발전되면서 종이뿐만 아니라 헝겊, 머리털, 단추에서 나무토막 그리고 박제된 동물에 이르는 오브제들이 사용되었다. 오브제미술의 기원을 이루는 두 번째 사건은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였다. 기성품으로 해석되는 레디메이드 역시 초현실주의 운동을 출현시키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레디메이드는 콜라주와는 다른 맥락에서 이해된다. 콜라주는 조형을 위한 재료로 쓰였으나 레디메이드는 반미학과 반예술의 의도에서 등장한 것이었다. 기존의 문화적 규범에 대한 파괴와 부정 그리고 해체를 시도했던 레디메이드는 오브제미술의 진정한 시발점이었다.  

  초현실주의는 다다의 반미학과 반예술의 태도를 ‘긍정의 미학’으로 전환했다. 다다의 무작위적 행동에 오토마티즘이라는 형식논리를 부여한 것처럼 초현실주의는 생경하고 모순적이며 역설적인 기법들을 창출해 냄으로써 꿈과 무의식의 세계를 드러내었고 오브제는 그 미션을 위한 기법의 하나로 다루어졌다. 콜라주 외에도 프로타주, 포토몽타주, 데칼코마니, 레이요그램, 오토마티즘, 데페이즈망 그리고 이중영상 따위의 기법이 초현실주의가 일구어낸 기법들이다. 조셉 코넬의 <앵무새 뮤직 박스>에 가두어진 박제된 새와 머레 오펜하임의 <오브제, 모피 잔의 아침식사>에 쓰인 짐승의 털로 감싼 찻잔을 생각해 보자.   

  1957년부터 뉴욕을 중심으로 나타난 새로운 경향인 네오다다는 다다 운동이 부활을 알리는 또 다른 사건이었다. 다다와 다른 점은 다다가 기존의 가치를 부정하고 파괴하는 태도로 일관되었던 것에 반해 네오다다는 파괴를 새로운 예술의 역설적 미학 원리로 삼았다는 점에 있다. 네오다다는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에 주목하고 예술과 일상의 경계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꿈과 무의식의 세계에 관심을 두었던 초현실주의와도 차별화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재스퍼 존스의 이러한 태도는 뒤이어 1960년 팝아트의 탄생에 영향을 끼쳤다. 팝아트는 산업사회의 광고물과 생산물들을 사용해 소비사회의 현실을 드러내며 국제적인 세력을 확장시켜 나갔다. 

  미국에서 고개를 돌려 유럽을 보면 1960년에 결속한 누보레알리즘에 시선이 머물게 된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파리에서 선언문을 발표하며 시작된 누보레알리즘은 뒤샹의 레이메이드 개념을 채택해, 후기산업사회의 생산물을 있는 그대로 제시하며 현실 인식의 새로운 방법론을 실험했다. 대표작가로서 아르망, 세자르, 크리스토, 앵즈, 빌르글레, 팅겔리, 스포에리, 팅겔리 등의 이름을 발견할 수 있다. 아르망은 쓰레기를 유리 상자에 담아 작품으로 제시했고 스포에리는 벼룩시장의 좌판대를 고착시켜 벽면에 걸어 놓음으로써 삶과 예술의 경계를 해체했다. 앵즈와 빌르글레 등은 포스터를 찢어 자신의 작품으로 주장한 경우다.   

  1960년대 후반이 되면 일련의 작가들이 누보레알리즘의 뒤를 이어 오브제미술을 확장시켰다. 이태리 작가들이 주를 이룬 아르테 포베라 그룹이었다. 이들은 후기 소비산업사회가 생산한 인공오브제가 아닌 자연 오브제를 생경하게 제시하는 방식을 취했다. 사물의 물질적 현존과 인식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를 희망하며 새털, 숯, 채소, 유리, 모래, 돌, 물, 양모, 양철, 나무, 곡식 등의 자연 오브제를 릴리프나 조각 또는 설치 따위의 방식으로 제시했다. 대표작가로는 보에티, 파브로, 파스칼리, 파올리니, 메르츠, 쿠넬리스, 피스톨레토, 안젤모 등이 있으며 베니스비엔날레와 카셀도큐멘터 등 동시대의 비엔날레를 통해 왕성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한편 1970년을 전후해서 미국과 유럽에서 태어난 새로운 미술 경향으로서 대지미술은 아르테 포베라 운동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발생한 오브제미술의 유형이다. 랜드아트라 불리우기도 하는 이 운동은 사막이나 산악, 해변, 설원 따위의 광활한 자연 공간에서 땅을 파거나 선을 새겨 넣는 작업을 하면서 환경과 예술의 일치화에 대한 실험을 전개했다. 이들은 미술관의 폐쇄적 공간을 벗어나 자연과 공생을 모색하거나 자연경관의 배후에 존재하는 의미들을 밝혀내는데 몰두했으며 작품들을 주로 사진이나 비디오에 의해 기록을 남겨졌다. 대표적 작가로 하이저, 스미드슨, 모리스, 오펜하임, 롱 그리고 크리스토 등이 있다. 

  시대가 다시 바뀌며 새로운 세대의 작가들이 미디어아트를 출현시킨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70년대 이후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주요 수단인 각종 미디어를 미술에 도입한 미디어아트는 책이나 잡지, 신문, 만화, 포스터, 음반, 사진,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비디오 등의 오브제를 통해 시대상을 드러내었다. 1990년대 이후에 들어서면서 컴퓨터의 대중적 보급과 전 세계를 네트워크로 연결한 월드와이드웹(WWW)이 등장하면서 디지털 기반의 뉴미디어아트가 미술계의 중심 담론의 하나로 부상하게 되었다. 21세기로 접어든 오늘날, 오브제미술은 비디오아트, 컴퓨터아트, 웹아트, 디지털아트, 일렉트로닉아트, 인터넷아트, 피지컬 컴퓨팅, 인터랙티브아트, 라디오아트, 사운드아트, 넷아트, 로보틱아트 등의 경향들을 태동시키며 동시대미술의 다양한 가지를 뻗고 있다.   

  이상에서 본 것처럼 오브제미술은 20세기를 관통하면서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새로운 조형의 개념을 탄생시켰다. 또한 일상적 사물과 자연물 그리고 디지털 미디어에 이르는 다양한 오브제를 예술품으로 둔갑시키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었고 조형적 영역은 물론이고 세계관에 변화를 일으켰다. 이번 특강의 주제인 현대조각과 연계해 보면 오브제미술의 의의는 조각의 물질적 범주를 넘어선 비물질(개념 혹은 가상) 세계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미술관 수요클럽 특강, 2022.9.14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