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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와림(김기훈 & 김들림), 바람으로 들어가 종을 울리자

고충환



키와림(김기훈 & 김들림), 바람으로 들어가 종을 울리자 


고충환 | 미술평론가


바닷가에 바람이 분다. 바닷가 마을은 바람을 피할 수가 없다. 온몸으로 오롯이 받아내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도 바람을 피할 수가 없다. 온몸으로 맞서 싸우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삶에도 바람이 분다. 세파에 찌들 수는 있어도 삶이라는 바다에 부는 바람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바람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해도 좋다. 

옛날에 바닷가 마을에는 초가지붕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새끼줄에 돌을 묶어 매달아 놓았었다. 신식건물로 바뀐 지금도 바닷가 마을에서는 지붕 대신 다른 물건들을 노끈에 돌을 매달아 고정한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바람이 많은 바닷가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고 해야 할까. 바닷가 마을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삶에는 바람이 불고,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것이 바람에 유실되지 않게 고정하기 위한 이런저런 돌들을 떠안고 산다. 때로 삶이 무겁고 버거운, 그래서 존재가 숭고한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이처럼 바람은 이중적이다. 삶의 바깥에도 바람이 불고, 삶의 안쪽에도 바람이 분다. 작가는 이렇듯 바람의 이중적인 성질, 그러므로 자연에 부는 바람과 삶에 부는 바람에 착안한 조형물을 만들었다. 원형 구조의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바깥에서 안쪽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는 구조물을 만들어 세웠다. 그 길이며 구조가 미로 같고 소용돌이 같다. 그러므로 삶의 메타포 같다. 그리고 구조물 표면에는 파란 노끈을 쳐 속이 보이는 베일을 드리웠고, 바닥에 닿는 끄트머리나 중간중간에 돌을 매달아 고정했다. 여기서 파란 노끈은 바다를 상징하고, 아마도 바다색에서 유추되었을 바람을 상징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바다의, 그 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서 들어오도록 초대받는다. 초대라고 했지만, 사실은 이를 통해 바람에도 불구하고 바다에 나가는 바닷가 사람들의 생활감정을 기리기 위한 것이고, 저마다 마음속에 부는 바람을 주지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바람의 소용돌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렇게 들어가면, 소용돌이가 끝나는 곳, 그러므로 어쩌면 바람이 멈춘 곳, 다시 그러므로 길 안쪽에 풍경이 매달려 있다. 다시, 바람이다. 바람이 흔드는 종이다. 그 종을 치고, 다시 돌아 나오는 것으로 프로젝트는 완성된다. 

여기서 종을 치는 행위는 바람의 소용돌이 속을 마침내 지나쳐 왔음을 자축하는 의미도 있고,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하늘에 전하는 의미도 있다. 여기서 바람의 양가성이 도입된다. 바람은 삶을 흔들어놓기도 하고, 삶을 잠재우기도 한다. 바람과 소원 풀이를 동시에 함축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옛날에 성소가 있었다. 세상에 가정된 신의 영토라고 해도 좋다. 도둑이라고 해도 일단 성소에 들어서면 세상의 권력이 미치지 못한다. 신의 연민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조형물은 바람의 핵처럼 보인다. 알다시피 바람의 한 가운데에는 정작 바람이 불지 않는다. 절대 평온이라고 해도 좋다. 작가의 작업은 바로 그 바람의 핵 속으로, 절대 평온으로, 그러므로 어쩌면 세상에 가정된 성소로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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