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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미 / 아브락사스, 창조적 파괴

하계훈



아브락사스, 창조적 파괴

하계훈 | 미술평론가

경기생활도자미술관에서 2012년부터 시작하여 한국 도예계의 중견작가들을 릴레이 형식으로 초청하는 <한국생활도자 100인전>의 마무리 작업이라고 할 수 있는 2024년 <한국생활도자100인전: 라스트 세븐> 전시에 출품하는 이정미는 작품과 작업에 투영되는 미학에 있어서 전통적인 도예의 기본을 져버리지 않은 상태에서 도자예술의 범주를 확장시키면서 심오한 예술성을 견지해 옴으로써 자신만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구축하여 미술계의 주목을 받아온 작가다. 

이정미의 작품은 형태가 가지는 조형성과 서사도 풍부하지만 특히 색채에 대한 민감성이 두드러지는데,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하여 유약 뿐 아니라 옻칠에서부터 결정유와 각종 회화재료가 되는 물감까지 폭넓게 탐구하고 집요하게 천착하여 이러한 연구의 결과를 작품에 적용해 왔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에는 소통을 위한 문법이 있고,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는 안정과 질서를 위해 법률과 규칙이 있다. 이러한 질서와 규칙을 지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우리 역사를 돌아볼 때 먼바다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는 당대의 상식에 도전한 콜럼버스가 결국 오늘날 세계질서의 주축이 되는 미국을 낳았고,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지동설은 결국 인간이 달나라에 발을 내딛게 해주었다. 필자는 이정미 작가의 작품들을 보면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진 <데미안>의 유명한 구절이 생각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최근까지 한국에서의 미술교육은 선언적으로 기본기에 충실하고 전통을 계승하는 틀 안에서 작가 개인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를 미덕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 관점은 어쩌면 오늘날 한국미술이 국제적인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에 일부 기여해 온 측면이 있다. 그러나 뒤집어 놓고 생각해 보면 창조적 사고, 실험적 모험을 원하는 작가들에게 이러한 교육 정신과 방법론은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몸부림치는 새를 가두고 있는 알껍질과도 유사한 측면이 있다.

시각예술의 여러 분야 가운데 도자예술은 회화나 조각 등과 같은 분야에 비하여 ‘생활’에 접점을 두면서 예술의 영역과 생활의 영역을 아우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회화와 디자인, 조각과 건축 등 장르간의 교류와 생활공간으로의 확장이 있기는 하였지만 그 빈도와 밀접성에서 도예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생활 밀착 예술의 성격을 갖는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도예 작가들은 생활 도예와 예술 작업이라는 두 가지 영역에서 자시들의 미학을 실험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이번에 이정미 작가의 작품은 독특한 형태와 아름다운 색감으로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정미 작가의 작품은 도예의 영역을 넘어서는 회화적 표현의 중요 요소인 뛰어난 색채 감각으로 차별성을 갖는다. 그녀는 주로 자연의 색감을 차용하여 작품을 완성한다. 예를 들어, 녹색, 적색, 푸른색과 같은 자연의 색감을 과감하게 활용하여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러한 색채는 관람객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과 함께 조화로움과 평온함을 떠올리게 하는 이중적 효과를 발휘한다. 이정미의 작품에서 대조적인 색감을 사용하여 강렬한 인상을 줄 때, 이는 관람객들에게 신선한 조형적 경험을 일으키면서 더욱 강렬한 감정적인 반응을 유도하기도 한다.

출품작 가운데 2003년부터 작가가 몰두해 온 ‘우물’ 모티브의 작품들은 중국, 일본, 유럽 등 세계의 곳곳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ㅁ 자 혹은 ㅇ 자의 형태의 공간을 작품 안에 끌어들여 전통 도예에서의 공간을 새로운 형상으로 탄생시킨 작품들이다. 우물은 생활 속에 생명을 유지하는 물의 원천이기도 하고 상징적으로는 생명, 예술적 영감의 정신적 발원지이기도 하다. 조형적으로 네모난 혹은 둥근 공간으로서의 우물 공간은 내부와 외부, 실재와 환상의 경계를 이루면서 형식적으로는 공간의 느슨한 경계가 흙판 작업에 의해 암시적이고 지극히 감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작가는 흙이라는 매체가 갖는 다양한 변환 가능성에도 집중한다. 이정미는 흙물(SLIP)을 사용하여 흙판을 붙이고 뜯어내는 작업을 통해 시간의 연속성과 우리 삶의 생성과 소멸과 같은 사유의 단서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작가는 도예의 영역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작업에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과정을 통해 조형적 실험과 확산을 진행해오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형태와 색채, 전통과 현대, 일상과 예술과 같은 양자가 통합된 아브락사스적인 변증법적 진화를 끊임없이 추구해 옴으로써 우리들에게 작가의 정신과 그것이 구체화된 결과로서의 작품 안에서 보다 성숙된 창작자로 나아가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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