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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미술의 장르간 공감대 형성의 가능성 ㅡ장상철의 박경리문학공원 설치작품에 대하여

하계훈



문학과 미술의 장르간 공감대 형성의 가능성
ㅡ장상철의 박경리문학공원 설치작품에 대하여

하계훈 | 미술평론가



장상철 작가가 마련한 이번 전시는 한국문학사의 기념비적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박경리 작가를 기리기 위해 그녀의 이름을 딴 박경리문학공원에서 전개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더한다고 볼 수 있다. 25년간 5부작 19권으로 완성된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는 그 물리적, 공간적, 그리고 정서적 방대함과 작품의 흐름 속에 등장하는 겹겹의 역사와 다양한 인물들의 규모로 독자들을 숨멎게 한다.

그동안 작품 속의 인물관계와 심리, 역사적 맥락, 등장인물을 통한 언어분석, 심지어 작품 속 공간의 자연 식생의 연구 등에서 다각적으로 분석의 단초를 제공해 왔던 대하소설 <토지>를 마주한 장상철은 이러한 박경리 작가의 작품에서 만나는 700명 가까운 인물들과 그들이 살아간 공간에서의 흔적을 대형 도자 조명 설치작품으로 풀어내고 있다. 

인간의 삶은 복잡하고 다양하다. 시간과 공간을 넓혀가며 그 디테일을 캐갈수록 복잡성은 주체할 수 없이 불어난다. 김광섭의 시 <저녁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저렇게 많은” 밤하늘의 별로 표현되고, 화가 김환기는 이 시의 마지막 구절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1970)라는, 무수한 점을 찍어간 작품을 남기기도 하였다. 이처럼 별빛으로 혹은 점으로 은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장상철의 작품에서는 투각된 큐브의 집합에서 발산되는 빛의 확산과 뉴앙스로 표현된다.

멀리서 바라볼 때 우리들은 동일한 모습의 인간이지만 가까이 다가설 때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처럼, 장상철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은하수같은 한 덩어리의 빛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모양과 색의 미묘한 차이가 확산시키는 작은 빛의 총합으로 구성된 설치작품이다. 그것은 곧 우리들의 모습이자 박경리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마주했던 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의 총체로 은유될 수 있다.

장상철의 설치작품은 공원 안의 연못이라는 장소 주위에 설치되어 있지만, 단지 그 제한된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박경리문학공원 전체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원주지역과 우리나라를 넘어 무한한 밤하늘의 우주를 향해 퍼져 나아간다. 그것은 마치 1950년대 미국 미술에서의 추상표현주의 미술과 같은 확산의 자유와 유동성을 닮은 구석이 있으며, 또한 그와 함께 추상표현주의가 미니멀리즘의 단순성을 인도한 것처럼 인간, 생명, 삶과 같은 단순하면서도 근본적 우리들의 본질을 동시에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장상철이 설치한 작품은 조형 언어적 함의와는 별도로 작은 도자 큐빅 하나하나를 투각하고 그 내부에 조명을 삽입하는 손노동을 끝없이 반복한 결과다. 이 과정은 작가가 흙을 빚으며 작품 재료들과 나눈 대화의 결과이며 동시에 그 시간의 축적, 그리고 그 과정에서의 작가의 사고와 상상의 총집합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박경리 작가의 대하소설 <토지>처럼 설치작가 장상철이 써 나아가는 시각 소설의 집필 과정같은 장르 간의 공감대가 이루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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