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살아남은 전통과 살아남을 현대성의 대화
이선영(미술평론가)
‘온고지신(溫故知新): 한국 전통미술을 현대화하다’는 천안 K-컬처 박람회와 연계한 특별기획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한 장이다. 아트놈, 한영섭, 권지안, 김보민의 전공은 동양화부터 서양화까지 다양하지만, 모두 그 쟝르의 지배적 어법에서 이탈해 있는 점이 공통적이다. 이탈은 변화의 조건이다. 모든 세대는 지금과 그때를 대비시키며 지금의 새로움, 또는 전통의 새로움을 말한다. 해럴드 블룸은 [영향에 대한 불안]에서 위대한 시인의 예를 들면서, ‘자신의 기원에서 멀리 여행한 자’라고 평가한 바 있다. 이 비평가는 위대한 전통과의 대화 뿐 아니라 ‘창조적 오독’이 필요함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예술에 있어서의 영향은 ‘비의도적이고 거의 무의식적인 경향이 있지만 오해를 통해서 작용’한다. 해럴드 블룸은 예술의 은밀한 주제가 영향에 대한 불안이라고 말한다, 이는 자신이 행해야 할 어떤 고유의 작업도 없다는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두려움을 강조한다.
해럴드 블룸은 ‘클리나멘Clinamen, 즉 시적 오독 혹은 오류’라는 용어를 루크레티우스에게서 가져온다. 이는 우주에서 변화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원자들이 이탈하는 것을 말한다. 루크레티우스에 의하면 ‘원자들은 그들의 진로에서 아주 적게 이탈한다. 이런 이탈이 없다면 자연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술의 역사는 이러한 수정적인 이탈들을 기록한다. 창조적 오독은 특히 역사적 단절이 심한 환경에서 활성화된다. 역사에 정반합의 원리가 있다면, 정(正)의 결핍이 한국의 문화적 풍토 아닌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부제는 독립기념관이 있는 지역의 정체성을 표현한다. 지역이라는 키워드는 ‘여기’의 의미를 중시한다. ‘온고지신’은 여기에 ‘지금’을 첨가한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정체성이되, 지금도 유효한 무엇을 탐색하고자 한다. 그 어느 시대도 단지 전통이어서 추종되는 것은 없다. 전통은 당대의 검증을 거친 후 이어진다. 전통 자체에 당대가 포함되어 있다.
지금의 흥행은 역사로 기억되며 그것이 역사로 지속되기 위해서는 후대의 검증을 거친다. 중요한 것은 살아남은 전통, 살아남을 현대성이다. 최근 세계 무대에서 약진하고 있는 ‘K-컬처’에서 미술은 어떤 위치를 차지할까. 미술은 대중문화와 달리 소수 문화가 되었기에 일대일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중문화는 코드와 관련되고 어느 정도 목표가 정해진 상태에서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영역이다. 코드를 잘 조합하고 속도전에 능한 풍토는 전후의 폐허에서 풍요로운 물질문명을 일궈온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들만큼’이라는 평등 의식이 발전의 바탕이 됐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 자유로운가에 대한 문제는 여전한 숙제이다. 물질적 풍요나 도구적 합리성은 진정한 창조성을 꽃피우기 위한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술은 코드보다는 탈코드를 지향하기 때문에 조합이나 속도만 가지고 경쟁력을 가지기는 힘들다. ‘컬처’가 도약하기 위해서 ‘아트’가 빠져선 안되는 이유다.
아트놈, [Robot Takwon V],130.3x193.9cm, 캔버스에 아크릴, 2019년
아트놈은 작품 제목에서부터 동양 사상을 담거나 동양화의 장르, 소재 등을 명시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 [-화조도], [-와 호랑이] 등이 그것이다. 예외가 [ART SPACE]나 [Robot Takwon V]다. ‘art’야 말로 서구적이다. 외국어라서가 아니라, 제도로서의 아트는 근대 분업사회에서 예술이 자율화되면서 생겨난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많이 참고하는 전통인 민화는 ‘아트’가 아니라 생활문화의 하나였다. 또 하나는 로봇을 거대하게 표현한 작품인데, 그가 선택한 도상은 토종 캐릭터로 성공한 예다. 한국에서 70-80년대를 보낸 아이들이면 다 아는 유명한 것이다.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성장하던 시기에 등장한 도상에 작가는 거대한 존재감을 부여했다. 루이비통은 현재의 한국인이 열광하는 명품 코드 중의 하나다. 로봇의 몸체 위에는 루이비통 무늬가 새겨지고, 한국화의 주요 소재인 꽃들도 배치된 화면은 금빛 배경에 더욱 화려하다. 그의 작품은 동양과 서양, 대중문화와 상품의 코드가 버무려지는 장이다.
놀이 복장을 한 아이가 변신을 통해 신령한 존재와 만나는 [가지와 호랑이]는 그림 속의 또 다른 그림이며, 그 배경은 수많은 기하학적 패턴으로 채워져 있다. 당시 민초들의 생활예술인 민화는 캐릭터를 비롯해서 현대의 대중문화의 도상과 정신적인 것은 물론, 형식적으로도 어울린다. 전통 화조도를 변형한 화조도 형식의 작품들에서 작가는 식물 패턴 한가운데에 캐릭터화된 인물이 자리한다. 대중 문화의의 유아론적인 양상이다. 대중문화는 모두 각자의 개성을 추구한다고 믿는 가운데 대량 소비가 추동된다. 아트놈의 작품이 자리하는 곳은 소비의 주인공을 생산의 주인공으로 격상시키는 전이의 지대다. 그것이 전쟁처럼 힘들기에 작가는 더욱 유희적 입장이 필요한지 모른다. 여러 색이 함께 모인 환상적인 꽃들 사이에 캐릭터 또한 하나의 꽃송이다. 밝고 환하고, 강렬하며 달콤한 팝적인 세계와 민화의 연결고리다. 팝아트는 일련의 유파로 간주될 만큼 한국 미술계에서 두드러졌다.
현대미술의 많은 유파 중에 선택된 요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트놈은 관련 기획전에 자주 참여했다. 최근 주요 그룹전으로는 《팝콘》(대구미술관, 2019), 《K-팝아트의 오늘 특별전》(대구국제아트페어, 2022) 등이 있다. 그의 전공인 동양화와 팝문화의 조형적 연결고리는 선과 색이다. 동양화의 선적 요소, 선으로 둘러친 평평한 형태를 채우는 화려한 색이 그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재미주의 작가’라고 말한다. 아트놈의 작품에서는 묵직해야 할 불상의 자세 조차도 예쁘고 귀여운 코드로 변화한다. 작품에 심어있는 유머러스한 부분은 대중에 다가서는 적극적인 면모이다. 밝고 환한 세계에 대한 지향은 동심을 담은 캐릭터로 표현되었다. 그는 ‘내 작업은 어린 시절 기억에서 시작된다. 가장 행복하고 빛났던 때, 그때가 내 인생 전반에 잠재해 있다’고 말한다. 그가 몸담고 있는 현대의 대중문화에는 유토피아나 환타지적 요소가 있고, 전통 또한 어려운 현실에서 위안받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희망의 기호들과 관련된다.
권지안, [Piece of Hope-Humming #199]
[Piece of Hope_Humming #일련번호]로 붙여진 시리즈 형식의 작품은 재료(물질)에 행위(에너지)를 투여하여 만들어진 추상이다. 미술사적인 예로서는 추상표현주의의 어법이 특징적이다. 반드시 미의 창조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는 없는 자유로운 행위를 유연하게 받아낸 재료는 파라핀(초)이다. 작품마다 하나의 색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복잡한 형태를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하나의 색으로 나타나는 두툼하고 복잡한 형태는 조각처럼 3차원을 차지하는 부피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흘러내린 흔적이 선명한 형태들은 고정된 미술의 양식에 시간을 기입한다. 각 작품 속 녹아내린 초들의 모습 또한 시간이다. 작업하는 삶이란 늘 불안한 균형을 잡아아 하는 과정이다. 망가진 케잌과 그 위에 꽂힌 초의 형태가 있는 작품들은 무질서도(엔트로피)가 극대화된 상황을 연상시킨다. 사람의 행동을 긴장과 이완의 국면으로 나눈다면, 이 이완의 국면은 작가가 작업을 통해 추구했던 ‘치유’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터트리기의 방식은 치유의 한 양상이다.
마치 무당의 행위처럼 한술 더 뜨기 전략을 통해서 바람직하지 못한 국면을 통과하는 것이다. 긴장만 있는 삶이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준다. 이완만 있는 삶은 무기력하다. ‘아트테이너’로 대중과 넓게 소통해 온 권지안은 그만큼 행복하고 그만큼 불행했다. 자신을 완전히 노출시키는 삶은 쉽게 고갈되기 마련이다. 다른 한편에서 고립무원의 삶이 있다. 후자는 대부분의 전업 작가의 상황이다. 그 중간은 없을까. 권지안의 작품들은 변형의 과정을 표현한다. 예쁘게 장식된 케잌도 축하를 위해 꽂힌 초도 변하지 않는다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이 어지러운 상황을 정리해주는 것은 색이다. 이전 작품 《Just a Cake-Piece of Hope》 시리즈에서 1970년대 한국의 단색화를 재해석하기도 했다. 권지안이 다소간 정적인 단색화를 해석하는 방식은 극적이다. 내향적이지 않고 외향적이며, 독백이 아닌 대화이다. 망가진 형태가 추상으로 보이기에 단색+추상의 조합인 단색화가 연상된다.
작가는 색의 상징과 의미를 연결시킨다. 가령 하얀색으로 이루어진 작품들을 ‘백의민족’으로 확장시키는 식이다. 단색화는 한국미술의 한 단락을 형성한 유력한 유파다. 한편 작품 속 촛불의 자리도 인상적인데, 촛불은 한국 사회에서 압제에 저항하는 해방의 코드로 부각되기도 했다. 스스로를 녹이면서 어둠을 밝히는 초는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촛불은 여러 차원에서 치유적 행위의 상징이 된다. 변화는 기존의 형태가 허물어지고 새로 짓기를 원한다. 그의 작품에 내재된 퍼포먼스적 요소는 뮤지컬 학과를 졸업했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다. 흥얼거림이나 희망이라는 키워드가 담겨있는 작품들은 그가 치유를 위해 그림을 시작했음을 알려준다. 다시 상처받기를 원치 않는 영혼은 상처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반복함으로서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작가의 여러 행위를 받아내는 화면은 반복적이다. 반복은 차이가 생성되는 조건이다.
김보민, [여명], 175x120cm, 마에 먹과 옅은 색, 2020
동양화 방식으로 그린 풍경에 빌딩이나 비행기 등 현대적인 광경이 섞여 있는 김보민의 작품은 전통과 현대가 공존한다. 이물감 없이 섞이는 것이, 산수를 표현했던 과거의 어법이 관념적이지 않고 사실적임을 느끼게 된다. 작품에는 한국 사회가 급격한 현대화를 통해 시간차를 두는 코드들을 병렬시킨다. 급격한 변화가 야기한 이질적 코드의 공존에 대해 누군가는 비극으로 누군가는 활력으로 볼 수 있다. 양극화된 사회에서 변화는 늘 상 희비를 엇갈리게 하기 마련이다. 김보민의 작품은 우리의 산세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생활 공간은 급격하게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산세는 지질학적 시간에 지배되지만 생활 공간은 일신우일신한다. 좁은 국토 면적에 산악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재)개발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특수성도 있다. 외국인이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표현할 만큼 대세가 된 고층 주거지가 대표적이다. 자연을 이루는 유려한 선과 아파트를 이루는 직선이 대조된다.
자연에는 부재 하는 직선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테이프로 작업했다. 한국화에서 테이프같은 재료는 이물적이다. 하지만 ‘현대적’ 환경은 이러한 이물성을 자연스럽게 흡수한다. 전통에서 중요한 선은 새로운 대상의 표현을 위해 변화한다. 고층빌딩으로의 개발을 기다리고 있을법한 구 시가지의 광경이 공존하는 이미지는 우리 현실에서도 그러함을 말한다. 김보민의 작품은 매우 환상적인 듯해도 현실과의 접속 지점이 곳곳에 존재한다. 살아남은 전통만 전통이며, 현대 또한 전통이 될 것이다. 풍경 속 비행기의 시점이 반영된 작품은 섬세한 필치로 근대와 현대의 풍경을 담았다. 전통미술의 재료인 붓과 먹, 비단은 벽에서 조금 띄워 설치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마천루와 사진으로 남은 근대의 한 장면이 타원형 틀에 담겨있고 그 가운데는 비행기 창에서 본 듯한 시점이다. 작품 [여명]은 시간과 공간이 급격하게 변모하는 시(지)점을 선택한다.
거기에는 과거에서 현대로 이륙하는 듯한 이동 시점이 있다. 동양화에 내재된 시간성을 설치적인 방식으로 건 그림들을 통해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개화]라는 제목은 삶의 방식 또한 급격하게 변화됨을 암시한다. 준비되지 못하거나 예측할 수 없는 변화도 있을 수 있다. 간극들은 이어짐을 위한 조건이 될 수 있다. 전통과 현대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에드워드 쉴즈는 [전통]에서 전통은 물려받은 것 또는 유산으로, 과거로부터 현재로 전래되거나 물려받은 모든 것을 뜻한다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신념이나 행동 모형이 하나의 전통이 되려면, 적어도 두 번의 전달과 3세대의 간격이 요구된다. 전통은 대대로 물려오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예술은 도약과 비약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비선형적인 무대이다. 작가는 ‘강변을 걸으며, 사라져버린 시공간에 대한 감각을 상상해보려 애쓴다’. ‘내 안에서 여러 개의 세계가 겹치고, 나는 이들과 함께 움직인다’고 말한다
한영섭, [빛, 바람, 소리 그리고 바다 No.6004], 205x540cm, 한지에 탁본, 꼴라주, 2006년.
한영섭의 작품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붓 대신에 먹솔을 사용한다. 다양한 자연의 원소로도 보이는 선들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찍혀나온 것이다. 작가의 의지에 복속시킬 수 있는 붓과 달리 찍어낸 것은 그 결과를 확언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열린 예술작품이다. 들깨 나무줄기나 옥수숫대 같은 재료를 으깬 다음 한지를 덮어서 먹물을 찍어 탁본하는 그의 작품은 물질과 물질 사이에 몸이 개입하는 방식이다. 자연적 소재와 행위가 만난 결과는 자연과 최대한 닮는다. 자연의 재현이 아니라 자연적 과정의 재연이다. 오랫동안 그만의 미학적 레시피로 만들어온 형상은 그자체가 작가의 필적으로 진화되었다. 한지와 먹, 그리고 자연물이 서로에게 스며 만들어진 형상은 고상한 색감과 깊은 질감을 가지며, 과정과 결과의 간극을 최소화하는 수행성을 띈다. 한지를 포함한 자연적 재료를 사용한 그의 작품은 추상과 자연을 하나의 근본으로 수렴한다.
자연적 과정의 재연은 추상화된다. 한지와 먹의 조합. 그리고 스미듯이 생겨나는 형상은 한국화의 특성을 가진다. 탁본을 통해 드러나는 선들은 여러 ‘관계’를 이루고 작품 제목처럼 ‘빛, 바람, 소리 그리고 바다’가 된다. 그는 원래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한국 현대미술이 형성되던 시기 최전선에서 한국적 소재를 실험했다. 그에게 추상은 자연을 비롯한 여러 기원을 자연스럽게 하나로 만드는 넉넉한 어법이 되었다. 한지는 단색화 작가들도 많이 사용한 재료로, 일종의 유행이었다. 당대에 유력한 것, 가령 유행은 전통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에드워드 쉴즈에 의하면 유행과 전통의 공통점은 모형의 표현과 타인들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유행은 하나의 전통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전통과 유행의 차이는 모호하다. 한지는 한국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만날 수 있는 이상적인 재료였던 것이다. 그는 단색화파의 주류에 속하지는 못했지만, 한지라는 재료를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첫세대에 속한다.
1941년 평안남도 개천 생으로, 1960년대 초 홍익대에 입학한 그는 근대미술사의 중요한 대목에 있는 작가였지만, 일본에서 먼저 평가받았다. 하류우 이치로의 회고에 의하면, 한영섭은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전시를 많이 가졌다. 단색화를 한국 현대미술의 한 가운데로 끌어들인 평론가 윤진섭은 한영섭이 현재와 같은 방법론(탁본)에 처음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라고 기록한다. 윤진섭은 그를 ‘그림을 시작한 이래 평생을 한지와 씨름해 온 천상 한지작가’라고 하면서, ‘60년대 중반, 신세대를 중심으로 한 전위미술의 돌풍이 불었을 때, 한영섭은 논꼴 동인으로 화단에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한다. 오래된 소재와 방법으로 오래 작업해왔다는 점에서 새로움에 대한 문턱은 높았지만, 마치 ‘오래된 미래’같은 방식으로 직선이 아닌 예술의 길에서 새로움을 만난 경우다. 탁본은 현대미술에서 사물성이나 평면성 같이 대조군을 이루는 개념을 이어준다.
출전; 천안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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