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설립 필요성에 대한 논의
윤진섭 | 미술평론가
광주는 자타가 인정하는 ‘예향(藝鄕)’이다. 예로부터 한반도의 서남부를 차지하는 곡창(穀倉)인 호남지역의 중심지 광주는 도시 전체가 예술의 향기에 젖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말년을 보낸 진도의 운림산방에서 풍기는 그윽한 묵향이 광주시 운림동에 있는 춘설헌(春雪軒)을 스치고 지나간다. 춘설헌은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毅齋) 허백련(1891-1977)이 머물며 창작을 하던 곳이다.
아아(峨峨)하며 고졸(古拙)한 예술의 멋을 풍기던 광주가 현대성의 옷을 갈아입기 시작한 것은 광주비엔날레의 창설과 맞물린다. 1995년의 일이다. 이로 말미암아 광주는 ‘예향 광주’, ‘문화수도 광주’의 이미지로 세인의 뇌리에 각인되면서 문예부흥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광주비엔날레가 창설 30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해외 인지도도 높아져 광주비엔날레는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휘트니비엔날레, 마니페스타와 함께 세계 5대 미술 행사에 등재되었다.(2014년 아트넷(Artnet) 선정)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의 설립에 관한 논의가 최근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 근거는 무엇인가? 2022년 4월 6일, 윤석열 대통령이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밝힌 내용이다. 당시 윤대통령은 “지역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으로...균형발전은 대한민국 국민이 어디에 살든 공정한 기회를 누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지역균형발전을 국가적 차원의 국정과제로 삼았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에 대한 논의는 바로 이와같은 지역균형발전 논리로부터 나온다.
사실 이러한 논리는 윤석열 정부가 처음은 아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지방분권과 국가균형발전을 국정운영의 주요과제로 삼았으며, 그에 따라 수도 이전과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이루어졌다. 즉 ‘집중에서 분산’으로의 대전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4관 시대를 거쳐 지방으로의 분산을 시도하고 있다. 1969년, 큐레이터란 용어 자체가 생소하던 시절에 경복궁 전시관에 문을 연 국립현대미술관은 1973년에는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였으며, 1986년에 과천에 신축건물을 짓고 다시 이전, 이후 서울관(2013), 청주관(2018) 등 4관시대를 맞이하였고, 2026년에는 대전관이 개관할 예정으로 있다.
대한민국을 수도권, 중부권, 영남권, 호남권으로 나눌 때, 수도권에는 앞서 언급한대로 국립현대미술관 3관(서울관, 덕수궁관, 과천관)이, 중부권에 2관(청주관, 대전관)이, 영남권에 진주관(검토중, 2024년 사전타당성 조사용역, 국비예산 반영), 대구 국립근대미술관(문체부 기본계획 수립중), 창원관(2021년 용역비 5억원 확보 후, 공청회를 여는 등 활성화된 바 있으나 현재 답보중)이 세워졌거나 세워질 예정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호남권에는 아직 국립현대미술관 분관 유치가 결정된 바 없다는 사실이다. 2023년 11월 광주의 언론들은 일제히 광주관 건립에 청신호가 켜졌다며 무등산 자락에 흉물로 전락한 옛 신양파크호텔 부지를 국립현대미술관 광주분관 후보지로 거론했다. 근거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국회 전체회의에서 광주시가 요청한 광주관 건립 사전타당성 조사 연구 용역 5억원 중 2억원을 내년도 예산안에 최종 반영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광주시는 2021년 10월 시비 369억원을 들여 구 신양파크호텔 부지를 매입, 부지를 확보한 상태이다.
광주광역시가 계획하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건립계획에 의하면 사업기간은 2025부터 28년까지 4년간이며, 미술관의 성격은 1. 레지던스 기능강화, 2. 일반 회화 소장품 및 미디어 아트 등 현대 미술작품을 복합 전시하는 문화강국 대표 미술관 건립, 국제적인 시각미술도시로의 도약, 3. 세계 수준의 현대미술 작품 수집, 보존, 전시, 교육 기능 등이다. 미술관은 연면적 22,365 제곱미터에 총사업비는 995억원(국비)이며, 부지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시비 369억원에 매입, 확보해 놓은 상태이다. 말하자면 건립을 위한 준비가 다 된 상태인 것이다.
그러나 국립미술관의 건립을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만으로 주장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 거기에는 필연적으로 특성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따라서 미래에 세워질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의 성격을 미래지향적인 차원에서 전위 내지는 실험미술에 두면 어떻까 하는 제안을 해 본다. 이같은 제안은 실험과 전위미술의 경연장으로서 광주비엔날레의 성격과 정체성를 고려한 것이며, ‘빛고을’ 광주가 지닌 미래지향적 이미지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적인 전위작가의 작품을 수집, 보존, 전시, 교육하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이 장차 이 분야에 관한 한 세계적인 존재로 우뚝 서길 바란다.
2013년, 아시아 문화전당 설립, 2014년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지정, 30년 전통의 광주비엔날레, 광주미디어아트센터(GMAP) 등등 풍부한 문화예술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광주에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이 건립된다면, 광주는 머지않은 장래에 지역적 불균형을 극복하고 명실공히 아시아를 대표하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로 굳건히 자리잡게 될 것이다. 차제에 이같은 논의가 좋은 결실을 맺기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 광주관 유치를 위한 토론회 세미나 원고,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