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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검은 파도, 검은 침묵, 하염없는 경계 위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고충환



이현지/ 검은 파도, 검은 침묵, 하염없는 경계 위로 밀려오고 밀려가는 


고충환 | 미술평론가


바다에는 경계가 있다. 아득한 경계고, 가없는 경계다. 손에 잡히지 않는 경계고, 실체가 없는 경계다. 부재 하는 경계고, 하염없는 경계다. 이처럼 하염없는 경계 위로 밑도 끝도 없이 파도가 밀려오고 밀려간다. 산처럼 일어서는가 하면, 산처럼 일어섰다가도 무너져 내리면서, 거품을 만들면서, 산산이 부서진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도, 일어서고 눕는 것도 밑이 없고 끝이 없다. 파도에 올라탄 생각이 밑도 끝도 없이 몰려오고 몰려가는 것도 같다. 이처럼 아득한, 가없는, 하염없는 경계는 감각이 관념에 자신을 내어주는, 시각이 죽고 청각이 열리는, 오로지 소리로 보는, 칠흑 같은 밤에 더 오롯해진다. 하염없는 경계가 비로소 실체를 얻고 몸을 얻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바다에 서는 것은 경계에 서는 일이며, 세상 끝에 서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다시, 바다에는 경계가 있다. 경계 위로는 일출이 있고, 밑으로는 파도가 있다. 작가 이현지는 그 경계 위쪽과 아래쪽 모두를 그렸다. 처음에는 경계 위쪽의 일출을 그렸다. 사진 혹은 하이포를 떠올려도 좋을,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사실적이고 감각적인 그림이다. 동해안 일출을 소재로 그린 이 일련의 그림들을 작가는 <세상의 첫 빛>이라고 불렀다. 세상의 첫 빛? 세상에 처음으로 형태를 부여해준 순간의 빛? 아마도 일출은 그 처음 순간의 빛이 매일같이 되돌아오는, 그러므로 매번 처음 순간으로 회귀하는 빛일 수 있다. 수사적 표현이겠지만, 작가는 매일같이 되돌아오는 일출을 빌려 바로, 그, 처음 순간의 빛을, 그 빛이 열어 보이는 세상의 장관을 그려놓고 있는 것도 같다. 매번 되돌아오는 것이지만, 매 순간 처음인 것처럼 일출을 맞이하는, 그 자체 자기 갱신(혹은 재생)의 계기로 보는, 그러므로 일종의 제의적 행위라고 해도 좋을,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도 부합하는 부분이 있다. 

그렇게 작가는 <세상의 첫 빛> 시리즈 이후, 파도를 그렸다. <검은 파도>를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다. 파도가 그려 보이는 비정형의 형상에 주목한 <결> 시리즈와 그 형상이 연상시키는 <설산> 시리즈를 그렸다. 실재하는 소재로서의 파도를 그렸고, 그 자체 삶의 메타포로도 읽을 수 있는 그림을 그렸다. 이를테면 작가가 그린 결은 물론 파도의 결 그러므로 물결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결은 유형무형의 모든 존재가 공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이테가 그렇고 빛살이 그렇다. 바람결이 그렇고 살결이 그렇다. 사물의 표면 질감이 그렇고 마음결(마음씨)이 그렇다. 파도의 결을 빌려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감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의 결을 그려놓고 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작가는 <검은 파도>라고 했고, <검은 침묵>이라고도 했다. 검은 파도를 보면서 검은 침묵을 떠올렸을 것이다. 검은 파도에 검은 침묵이 감각적으로(혹은 관념적으로) 연동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검은 파도를 빌려 심연보다 깊은 침묵이 말을 얻고 형태를 얻는 계기를 열어놓고 있다고 해도 좋다. 에너지 혹은 생명력의 원천이 그 실체를 얻는 계기를 열어놓고 있다고 해도 좋다. 침묵에 형태를 부여하는 한편, 이로써 자신의 그림이 생태학과 바이털리즘에 연동되는 계기를 열어놓고 있다고 해도 좋다(침묵이 에너지고 생명력이다). 

일출을 소재로 그린 그림(그러므로 전작)이 감각적이고 사실적이라고 한다면, 검은 파도를 소재로 한 근작은 감각적이고 관념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인데, 그렇다면 이처럼 감각과 관념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림을, 이로써 자기 언어를 확장하고 있는 그림을 작가는 어떻게 그려놓고 있는지 볼 일이다. 

단색조 그러므로 모노 톤의 화면에 붓 대신 조각칼로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비록 조각칼을 사용하지만, 물감의 살(그러므로 두께)을 칼로 떠낸다기보다는 미처 마르지 않은 화면을 긁어 미세한 스크래치를 만드는 방식이다. 칠흑같이 검은 흑색을 칠한 바탕화면 위에 흰 선으로 드러나는 스크래치로 흑백이 대비되는 화면을 만드는 방식이다. 붓 대신 조각칼로 그림을 그린다는 점에서 붓의 확장으로 볼 수 있겠고(뾰족한 끝으로 스크래치를 만들 수 있는 다른 도구로도 확장 가능한), 흑백이 대비되는 화면이 색의 절제와 함께 그림을 내면적이고, 관념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비록 파도라는 실재하는 대상을 소재로 한 것이지만, 그저 파도를 넘어, 파도에 빗댄 내면 풍경의 표상을 그려놓고 있다고 해도 좋다. 

파도를 소재로 산처럼 능선처럼 보이게 한 것이지만, 기본적으로 대상이 열려있는 것인 만큼 다른 무엇으로 보아도 무방한 그림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관심사와 인문학적 배경을 가지고 있고, 그 다른 관심사에 따라서 다른 그림을 보아도(읽어도) 무방한 그림이다. 형태로도 의미로도 열린 그림이라고 해야 할까. 파도는 구름이 그런 것처럼 정해진 형태가 없고 색깔이 없다. 다만 항상적인 변화와 이행과 운동성이 있을 뿐이다. 파도가 그렇고 구름만 그런 것이 아니다. 존재가 그렇고 에너지 그러므로 생명력이 그렇다. 그리고 아마도 침묵도 그렇고 내면도 그렇다. 개념이 아니라면 존재 자체를 붙잡을 수 있는 도구는 없다. 예술은 원천적으로 열린 의미구조를 내장하고 있고(움베르토 에코), 생리적으로 결정화할 수 없는 무정형의 형태를 지향한다(조르주 바타유). 

그렇게 작가는 파도를 빌려 어쩌면 항상적으로 변화하는, 이행하는, 운동하는 존재의 생명력을 표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예술 고유의 열린 의미를, 무정형을 제안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로, 파도처럼 구름처럼 흐르는 것들, 정처 없는 것들을 빌려 무상한 존재를 그려놓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도를 소재로 한 이 그림은 감각을 그린 것인가, 아니면 관념을 그린 것인가. 실재인가, 아니면 허구인가. 그 실체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한 감각적 실재에도 불구하고(묘사에 관한 한 작가는 남다른 기량을 이미 증명해 보인 바 있다), 작가의 그림은 그저 감각적 실재를 넘어선다. 그림을 그리기 전에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편집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통해 비록 현실에서 발췌한 모티브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그러므로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그림을 그려놓고 있다. 현실을 편집해 또 다른 허구적 현실처럼 보이게 한 것, 그러므로 편집된 현실이라고 해야 할까. 영락없는 실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미디어를 매개로 만든 풍경이란 점에서 현실을 확장하고, 현실 인식을 확장하는 그림이라고 해도 좋다. 미디어로 매개되는 시대 감정에도 부합하는 대목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풍경과 자연은 다르다. 자연을 보고 있으면, 자연으로 건너가는 것이 있고, 자연에서 건너오는 것이 있다. 그렇게 건너가고 건너오는 것이 교감하면서 자연은 풍경이 된다. 그러므로 교감을 매개로, 해석을 도구로 주체의 일부가 된 자연, 주체화된 자연이 풍경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자연과 어떻게 교감하는가. 파도를 어떻게 해석하는가. 

작가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칠흑같이 검은 파도가, 심연보다 깊은 침묵이, 생각 그러므로 사념의 파도가 밑도 끝도 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것 같다. 빛의 기운과 어둠의 세력이 투쟁하는 것도 같고, 첩첩한 산맥과 미증유의 우주를 떠도는 것도 같고, 흩뿌려진 별들 위로, 몽환적인 꿈결 위로 부유하는 것도 같다. 정형에서 비정형으로 이행하는 것도 같고, 결정적인 것에서 비결정적인 것으로 흩어지는(해체되는) 것도 같다. 자연에 존재하는 결들에 대해, 그 알 수 없는 의미에 대해 파고드는 것도 같다. 항상적으로 변화하는, 이행 중인, 운동하는 존재를, 존재의 생명력을, 비결정적인 존재의 생리를, 무정형의 형태를, 밑도 끝도 없이 일어서고 눕는 순환하는 존재의 생성 작용을, 그러므로 어쩌면 끝내 개념으로는 거머쥘 수 없는 미증유의 의미를 예시해준다. 그렇게 작가의 그림은 칠흑 같은 밤에 소리로 오히려 오롯해지는 파도 앞에 서게 만들고, 경계 앞에 서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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