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유명은 최근에 모 대학에서 미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화가다. 그림 그리는 사람이 왜 박사를 했냐고? 처음엔 막연하게 대학에 교수 자리 하나 얻을 수 있을까 싶어서 박사과정에 등록했었고, 수료 이후에는 이미 낸 등록금이 너무 아까워 악착같이 논문에 매달렸다. 그 이후는 특별히 생각할 틈이 없었다.
모두 아는가? 홍유명은 생계 전선에서 매일 고생만 하는 아내의 철부지 남편이자, 사춘기 두 딸을 둔 딸딸이 아빠로서 다하지 못한 가장의 의무에 대한 중압으로 못내 괴로워했다. 돈 못 버는 못난 남편을 대신해서, 친정아버지 유산으로 낡고 허름한 식당을 힘겹게 운영해 온 아내 보기가 미안해서, 헐렁하게 살아온 아빠의 자유를 부러워하면서 무작정 화가 되기를 꿈꾸는 철없는 두 딸의 장래를 열어주기 위해서라도 박사 학위는 필히 받아야만 했다.
아내는 그의 미술이 한국의 근대사가 지닌 야만적 폭력에 대한 저항과 비판의 메시지를 통해서 오늘, 여기를 사는 사람들이 지닌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십분 공감하고 인정해 주었다. 문제는 심사위원에게 이러한 내용을 논리적으로 설파하여 인정받아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는 박사논문에서 철학자 들뢰즈의 ‘소수 문학’의 개념을 가지고 다수의 언어를 비트는 탈식민적 소수 언어의 ‘전유적 사용’에 주목하는 논지에 집중했다.
지도교수 최안일은 이러한 연구 방향을 허락하고 간섭을 별로 하지 않는 까닭에, 논문 쓰기는 수월했지만, 문제는 심사위원인 나강압 교수의 까칠하고도 고압적인 심사평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논문 목차는 물론이고 작품에 대한 해석에 딴지를 걸면서 논지를 전면 수정하라고 권고했기 때문에 홍유명은 본심사 전까지, 수정본을 만드느라 피 말리는 날밤을 새워야만 했다. 늘 존경하던 그녀를 싫어하고 미워하게 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그래도 어쩌랴! 우여곡절 끝에 통과한 논문에 심사위원들의 최종 서명을 받아야 하니 그녀에게 머리를 숙이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할 수밖에 없었다. 김영란법으로 거창한 감사의 선물도 할 수 없으니, “이른바 파우치, 외국 회사 그 뭐 쪼만한 백” 대신 기초화장품 하나를 골랐다. 까칠한 그녀가 끝내 선물 받기를 거부한 것도 그렇지만, 논문에 서명한 후 들려준 그녀의 다음 한마디가 홍유명의 기분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래, 이제부터 뭐하게요? 실기하는 사람이 굳이 박사까지 받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으니.”
그러네. 홍 박사는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누군가 박사를 취득하면 가슴이 커진다고 했다. ‘세상을 품는 가슴’이 말이다. 그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것은 분명하다. 앞으로 돈도 더 쉽게,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정말 맞아? 꼭 그게 아니더라도, 적어도 후배나 제자들 앞에서 기죽지 않을 수 있을 것 같고, 아내나 두 딸 앞에서 주눅 들었던 가슴을 좀 펴고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꼭 뭘 해야만 하나?
그래도 해야지. 그는 최근 2년간 한국연구재단에 ‘박사후국내연수’라는 이름의 포닥(Post-Doc) 코스로 연구비를 지원받으려고 연구계획서를 제출했지만, 처참하게 낙방했다. 그러던 중, 유명 예술가의 작업실을 탐방하고 인터뷰하는 ‘홍 박사의 아틀리에 탐방’이란 제목의 유튜브를 심심풀이로 시작했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 이어 만든 ‘홍 박사의 아트 프로젝트’라는 이름의 또 다른 유튜브 방송은 어떠한가? 세상에, 세상에! 신진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리뷰하고 무료로 컨설팅해 주는 내용인데, 그게 백만 조회수를 찍으면서 그야말로 초대박이 났다. 그의 이름처럼 유명해진 거다. 아! 인생은 아무도 몰라. 이제 홍 박사는 평생을 유튜버로 살기로 결심한다.
한편, 홍유명의 박사논문 심사위원이었던 나강압 교수는 최근에, 남편으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그쪽도 홍 박사님을 아세요? 혹시 당신이 논문 심사했던 그 사람 아냐? 이 사람 완전 유명해요. 개그 작렬에다 콘텐츠도 영양가가 높아. 근데 말이야. 이 사람 유튜버 되려고 박사 받은 거야?”
* 이 글은 팩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