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운명의 해부학을 재구성하다
이선영(미술평론가)
박소은의 작품에는 차이가 차별로 치부되지 않기를 바라는 타자의 목소리가 있다. 하트같이 심장을 닮은 형태는 두개가 겹쳐져 공유되는 자리를 만든다. 그렇게 겹쳐 만들어진 타원형은 그것을 연상시키는 기관을 통해 말을 이어간다. 타원형은 여성 성기와 유사하며 다른 각도에서 보면 눈이 되고 입도 된다. 귀를 두 개 붙인 형상도 복잡한 굴곡을 가진 대칭성 때문에 자궁이나 골반을 연상시킨다. 이 해부학적 기관들은 여러 방식으로 조합되어 보고 듣고 말한다. 블랙/핑크로 선택된 인조털은 전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기관들을 감싸고 이어준다. 유기체로서의 전체 몸은 복구되지 않는다. 그것들이 조화롭게 연결되기에는 이 여성 작가가 할 말은 너무 많다. ‘해부학을 운명’(프로이트)으로 만들었던 유기적 총체는 거부되고, 단편화된 기관은 재구성되려 한다. 완전한 해체는 죽음이고 무의미이기에 또 다른 연결은 중요한데, 몸 전체에 분포된 털은 적절한 맥락이 되어준다. 짝패처럼 연결된 손에 걸쳐있는 땋은 검은 머리는 털과 달리 끝없이 자라는 머리털, 특히 검정 직모로, 아시아 여성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말한다.
love
Pool
Manufactured tears
Manufactured tears
박소은은 내용적으로나 형식적으로 누군가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자신의 작품이 ‘시끄럽고 난잡하고 말이 많기를’ 바라며, 여성의 ‘생명력과 공격성을 회복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검정 눈과 핑크 눈이 손잡고 있는 듯한 작품에서 핑크 쪽 눈의 분홍 털로 덮인 가장자리에는 긴 손톱이 눈썹처럼 박혀있는데, 타원형 모양이 여성의 질을 연상시키기도 한다면, 그것은 다소간 공격적인 질(Vagina dentata)의 변형이다. 눈동자 부분은 거울처럼 보는 사람을 반사한다. 보고/보이는 관계 속에서 생겨난 사회적 권력으로, 특히 여성은 보여지는 존재로 간주되어 왔음을 말한다. 그것은 보여지는 여성이 사회의 지배적 시선을 다시 내면화하는 무한 반사의 과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성기는 양성의 육체적 차이를 극명하게 하는 기준이 되어, 한 성이 박해받는 입장이 되기도 하고, 이러한 박해에 저항하기 위한 대안의 자리가 되기도 한다. 수로요의 작업실에서 여성 성기 형상을 흙으로 빚고 있는 박소은을 만났을 때, 작가는 기계적 평등을 원하는 측은 아니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남/녀를 비롯해서, 평등은 자유처럼 선험적 가치를 내장한 시점이 아니라 목표로 설정되어야 할 미지의 가치일 따름이다. 평등해서 평등해야 한다는 동어반복이 아니라, 불평등하기에 평등해야 한다. 여성의 입장이라는 것은 기울어진 운동장 또는 유리천장과 비교되는 여전한 질곡 속에서 유지되고 강화되어야 했다. 남성우월론자들이 있듯이 여성우월론자들도 있다. 작가는 이전에 주변화되었던 타자들을 중심에 놓고자 한다. 인간의 기관이 아닌 조개 형상들이 한가운데 품고 있는 보석(진주)는 이러한 주변/중심의 관계를 역전시키려는 운동에서 자궁의 위상을 강조한다. 진주는 상처가 승화된 것이며, 이러한 승화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는지도 암시한다. 박소은의 작품에서 진주는 눈형상과 연결되어 눈물로 나타나기도 한다. 정신분석학은 의식에 비해 무의식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여전히 남성중심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남성을 정상, 여성을 거세된 존재로 보는 입장이 대표적인데, 거세란 죽음 또는 죽음에 이르는 상처를 말한다.
Tear garden
the world is our oyster
the world is our oyster
두 손
두 손
여성의 성기는 단단한 주체로 서 있는 남근과 달리, 벌어진 상처처럼 기괴한 괴물 형상의 원천이 되어왔다. 여성 성기라는 모델은 괴물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를 구축하기 위해 에너지를 발산하는 기관으로 나타난다. 특히 타원형 모양을 통해 눈이나 입으로도 전이되는 과정은 시각중심주의나 말중심주의(Logocentrism)를 변질시킨다. 눈은 의자같이 배치된 구조 속에서 엉덩이에 깔리고 자궁과 겹쳐질 수 있는 입은 순수가 아닌 오염의 원천이 된다. 작가는 여성을 포함한 인간이 태어나는 상징계 중의 하나인 문자를 연구하면서 그것이 온통 이데올로기에 물들어 있음을 깨닫고, ‘여자는 가공된 프로젝트’라고 결론 내린다. 여성의 자연스러운 몸을 받아들이지 않는 지배적 가치는 남성의 미는 남성을 건강하게, 여성의 미는 여성을 약하게 하는 관행에서 발견된다. 상징계도 마찬가지다. 한자에서 ‘계집 여(女)’가 속한 글자들이 대개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편안할 안(安)’에서 여성의 그림자 노동이 아니라면 집은 결코 편안한 곳이 아닐 것이다. 로고센트리즘에 대한 비판은 말 대신에 쓰기에 대한 감각을 강조한다. 작가는 해체된 운명의 해부학적 기관들을 통해 여성을 다시 쓰려고 한다.
출전; 2024년 수로요 도자 레지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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