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강미나/서사와 예술성을 함께 담아내는 이형교배(hybridization)의 매력

하계훈



서사와 예술성을 함께 담아내는 이형교배(hybridization)의 매력


하계훈 | 미술평론가
 
강미나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금속공예를 전공하였기에 작가로서의 활동 역시 학업과 훈련을 통해 습득한 미학적 사고와 기예가 바탕이 될 것으로 짐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속성은 단단하고 광택을 내며 고급스러운 오브제를 만드는 재료로서 적합하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있다. 물론 모든 금속이 그러한 성질을 갖는다고 할 수는 없으나 금속의 대표적인 물질인 금, 은, 동과 이들을 기본으로 한 합금물 등이 대부분 이러한 속성을 보이며 오랜 역사 속에서 금속 공예가들의 손길을 거쳐 왔다. 
현대 공예에 있어서 작가들은 이러한 금속성에 부식과 상감, 도금 등을 통해 작품의 표현력을 확장하고, 때에 따라 작품의 크기를 확대하면서 이질적 재료와의 결합에서 오는 미학적 효과를 추구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금속 공예가들은 작품 그 자체의 물리적 성격과 미감에 한정하지 않고 작품이 개입하는 공간까지 작품의 범위에 포함함으로써 작품의 물리적 효력 범위를 넓혀서 현대 조형의 생태계에서 예술 장신구의 영역을 확장해 오기도 했다. 

강미나도 금속공예로 출발하여 우리 전통의 직물 중 대표적인 재료라고 할 수 있는 한산 모시와 금속의 물리적 결합을 추구하는 작품들을 오랫동안 연구해 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여성 예술가들에게는 창작 활동의 크고 작은 장애물에 봉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업 초기에 작가이기 이전에 여성으로서 자연스럽게 도래하는 20대 후반의 결혼과 출산, 육아와 같은 일상생활과 예술 장신구 작가로서의 출발선에서 전업 작가로서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창작 의욕으로 무장한 자신의 창작 생활이 출산과 육아라는 일상생활과 혼재하는 삶에서 강미나는 우연히 작품 창작의 실마리를 발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 전통의 직물인 한산 모시가 가진 특성이 금속 재료들과 만났을 때 발현되는 성격을 비유적으로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얼핏 보기에 단단한 금속 재료와 반대의 성격을 갖는 직물 재료인 모시는 두 재료의 물리적,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강미나의 작품에서는 이러한 선입관과 고정 개념의 틀을 깨면서 두 재료의 상호 보완적/촉진적 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그러한 작업의 결과는 단순한 표현의 확장을 넘어서서 상당한 서사와 예술성을 드러낸다. 이질적 재료의 결합은 창작 형식과 주제 개발에 있어서 금속공예 작품들이 갖게 되는 물성과 크기의 제한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게 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금속 재료를 다른 속성의 재료들과 결합하는 작품 제작 방식은 미술사적으로 장신구를 둘러싼 사회적 의미를 반영해 오기도 하며, 개인과 집단의 다양한 서사를 작품 속에 내포하게 해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강미나가 이러한 예술 장신구 작품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일상에서 이루어지던 바느질 행위의 몰입감에서 파생되는 사유와 그러한 바느질에서 사용됐던 생활용품으로서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산 모시의 특성에 관한 관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부정형의 모시 조각을 금속으로 일부 지지한 상태에서 바느질 기법으로 결합하여 부피와 형태를 확장하며 모습을 갖춰 가는 작품을 만들어 내는 제작 과정은 작가의 사유와 의식의 흐름 과정을 담아 놓은 가시적 결과물이면서 그 형태에 있어서 유기체의 세포증식(cell proliferation) 작용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자투리 천을 모아 조각보를 만들던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주는 이러한 손놀림에서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전통적 창작 활동의 면모를 읽어내며 그것을 작가 자신의 창작과 생활의 은유적 투사로 받아들인다. 불교적 사유에서 증식은 곧 번뇌가 증가하는 것이며 이를 다스리는 행위가 곧 수행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강미나가 모시 조각들을 바느질로 이어가면서 생각과 생각을 이어가며 느끼는 감정의 정리를 통해 도달하게 되는 안정과 위로는 작가 스스로 언급하고 있는 바와 같이 바느질에 수행과 염원을 담아 새로워진 나를 발견하는 과정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창작의 과정에서 몰입의 상태는 작품의 예술성과 작가의 정신 에너지의 발산을 촉진한다. 그리고 몰입의 대표적인 방식은 반복과 연속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가 선택한 반복적 행위로서의 바느질은 창작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를 해소하는 한편 창작 행위의 미학적 탐구와 집중으로 더욱 완성도 높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는 실천이 된다. 작품을 탄생시키는 이러한 작가의 선택은 2012년 독일 뮌헨에 있는 BKV(바이에른 미술공예협회)가 35세 미만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젊은 응용미술가상’의 1등상을 받음으로써 창조적 예술성을 객관적으로 증명한 셈이 되는 것이다. 
강미나의 작품은 장신구로서의 기능성이나 상징성, 그리고 조형적인 형태미 등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능적인 면에서 모시의 감촉은 인체와 친화적으로 접촉을 이루게 되며 금속 그 자체보다 접촉에 대한 이질감을 덜 느끼게 해줄 수 있다. 게다가 모시는 우리나라의 한정적 지역에서 만나게 되는 작품 재료이지만 그 수용성은 매우 넓다고 할 수 있다. 예술 장신구를 제작함에 있어서 섬유이면서 부드럽기보다는 뻣뻣하고 반투명한 통기성을 지닌 모시라는 재료는 오히려 외국인들에게는 이국적인 특이성(exoticism)이 매력적 요소로 작용하여 장신구로서의 작품의 특성을 더욱 두드러지게 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모시에 더해지는 천연 염색과 그로부터 확장된 색상의 미묘한 변주 등은 예술 장신구로서의 작품성을 한결 돋보이게 해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섬유로서의 모시의 특성과 입체적 조형의 재료로서의 적합성, 그리고 그러한 재료를 결합하면서 지지대와 결구에 부분적으로 금속을 사용하여 제작해 내는 강미나의 예술 장신구는 일차적으로 감상자의 흥미와 관심을 유발하기에 적절하다. 그리고 모티브의 선정과 그 안에 함축된 서사, 그리고 바느질이라는 작품의 수공 생산방식을 통해 구현되는 유무형의 결과물을 감상자가 읽고 상상할 수 있게 연결함으로써 작가의 창작 행위를 통해 몰입한 결과물로서의 장신구가 탄생한 과정의 정당성을 부여해 주고 있다. 

강미나가 자기 작품에 금속과 모시를 결합한 것은 질감뿐 아니라 표현력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술 장신구를 포함해서 작품을 창작해 내는 두 가지 요소는 형태와 색채, 다시 말해서 데생과 색채의 문제였으며 미술사에서 17세기 프랑스의 푸생과 루벤스, 19세기 앵그르와 들라크루아의 대립적 논쟁도 이러한 창작의 요소 간의 강조점의 차이가 창작의 주요 촉진제가 되었다. 하지만 시각예술의 창작에 있어서 형태와 색채의 문제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님이 이미 증명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강미나의 예술 장신구는 형태와 색채에 관하여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과 같은 효과를 잘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더 높은 표현력과 발전 기능성을 담보해 준다고 생각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