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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서울미술관 전시, 《프랑스의 신구상회화》

김종길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 1982, 도록 ⓒ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지난 2월 18일에 열린 ‘《서울미술관, 그 외침과 속삭임》 전시 사전 세미나’에서 필자는 서울미술관의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을 벼릿줄로 발표했다. 전시는 1982년 7월 10일에 시작되었고, 개막에 맞춰 도록도 열화당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한 해 앞, 1981년 『계간미술』 여름호는 ‘특별기획’으로 「새 구상화 11인의 현장」을 실었다. 흥미롭게도 그해 6월에 《계간미술이 선정한 새 구상화가 11인 초대전》이 롯데화랑에서 열렸다. 아직 ‘민중미술’이란 말이 크게 드러나기 전이니 새로 등장한 회화는 ‘새 구상화’, ‘신구상회화’로 불렸다.

프랑스 신구상회화의 특징을 장 루이 페리에는 “추상의 폐허 위에서 신구상의 개념이 정의되기 시작한다.”고 했다. 한국미술도 1970년대의 단색조 화풍이 지속되자, 1978년에 ‘새로운 형상성의 추구’를 기치로 동아미술제가 탄생했다. 홍성담은 1977년 『조선미술』에 「전위예술의 기본방향-현대 예술의 사회 참여와 그 정신적 구조」를 발표했다. 그리고 1979년 ‘광주자유미술인회(광자협)’, ‘현실과발언(현발)’이 탄생한다. 광자협, 현발, 임술년, 두렁으로 이어지는 민중미술계 소집단들의 선언문에는 ‘삶의 현실’, ‘발언’, ‘지금 여기서’, ‘산 미술로’가 등장한다. 1980년 『계간미술』에 실린 최민의 「미술가는 현실을 외면해도 좋은가」, 성완경의 「한국 현대미술의 빗나간 궤적」, 그리고 1981년 「새 구상화 11인의 현장」에 덧붙여 쓴 김윤수의 「삶의 진실에 다가서는 새구상」은 당시 한국미술의 상황을 직접 화법으로 웅변하는 평론이다. 그런 측면에서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은 알랭 주프르와가 조직했고, “피카소의 격찬을 받았던 노대가 발튀스, 초현실주의 최후의 대가 로베르토 마타, 추상에서 구상으로 전환하여 새 경지를 연 장 엘리옹,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 청년 전통화가 그룹을 이끌었던 에두아르 피뇽 등이 포함돼 있으며 60년대 프랑스의 신구상을 주도한 질 아이요, 자크모노리, 안토니오 레칼카티, 제라르 프로망제, 레오나르도 크레모니니, 70년대의 신예 구상화가 루치오 판티, 장 폴 샹바스, 크리스티앙 부이에 등이 망라돼”(경향신문.1982.7.7) 있었다. 1981년 미테랑 대통령이 일본을 공식 방문했을 때 문화사절의 역할로 1개월간 도쿄의 브리지스톤미술관에서 전시됐던 60여 점 가운데 한국 전시를 위해 작가 25인의 25점을 골라 새로 구성한 전시였다.

이 전시가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끼친 것은 신구상회화의 역사가 ‘68혁명’과 밀접하기 때문이다. 특히 제라르 프로망제로 대표되는 신구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와 함께 한 작가들은 독립적인 정치적 저항 노선을 지킨 신념가이기도 했다.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이 열린 1982년은 5·18광주민주항쟁 2주년이 되던 해였다. 프로망제는 〈민중의 삶과 죽음〉(1975/77)을 출품했다. 그리고 1985년 7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60년대 초반까지 모든 미술은 추상 일변도인 데다 현실과 무관한 형식주의가 행패, 생명력을 잃어 갔어요. 이런 시대 상황에서 작가들은 독자적이고 독립적인 형식을 찾게 되었고, 구체적인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

언론은 《프랑스의 신구상회화》전을 두고 “양식 아닌 사상으로 문명비판”을 했다고 전했다. 전시 연계로 열린 강연회에서 성완경 교수는 “60년대 초부터 신구상회화는 현대사회와 아방가르드의 형식주의에 대한 준열한 비판을 담고자 했던 형상 회화”라면서 “현대의 대량 생산 이미지의 근간을 이루는 사건 이미지와 회화적 이미지 간의 관련을 신구상 화가들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전시의 영향이 컸던지 1983년 매일경제신문은 “민정기 신구상전”, 1984년 조선일보는 “임옥상 신구상화전”이라고 기사를 썼다. 미술동인 두렁이 기획한 『민중미술』은 그래서 책 말미에 “첫째, 새로운 미술운동으로서 신구상주의나 신표현주의 등 서구적 리얼리즘 전통이 아닌 ‘민중미술’을 지향했던 노력을 우선해서 모았다.”고 밝혔다. 1985년까지만 해도 ‘민중미술’에서 신구상주의는 ‘공동체’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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