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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래의 생명 근원 탐구_‘뿌리 없는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변종필



이길래의 생명 근원 탐구_‘뿌리 없는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변종필 | 미술평론가

  “소나무 한 그루에서 모든 작품이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생명이나 물체가 분해되면 그 기능이 소멸되듯이, 세포나 파편이 응집되면 유기체적 생명력을 유지하게 된다. 수많은 동파이프 단면들이 물성화과정을 통하여 영원히 죽지않는 소나무를 만들고, 나는 이 땅 위에 그것을 식수(植樹)해 나아가고 싶다....” 
<죽지 않는 소나무를 위하여> 작가 글 중에서

1.
조각가 이길래는 자연의 생성 원리와 생명 에너지를 탐구하는 작가이다. 30년 이상 인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꿈꾸며 자신의 예술을 펼쳐왔다. 그가 독자적 조형 언어로 추구해온 것은 생명의 근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는 ‘나무-소나무’로 형상화한 작품을 핵심으로 전개되었다. 

뿌리 깊은 소나무는 바위 위든 비바람 속이든, 자란다. 환경에 따라 형태를 달리하며 생명을 이어가 개체마다 특유의 개성을 갖는다. 사시사철 뿜어내는 강한 녹색 빛은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상징한다. 소나무가 지닌 불굴의 생명력에 매료된 이길래는 소나무를 자연과 생명을 표현하는 이상적 대상으로 삼았다. 이제는 ‘소나무 조각가’라는 별칭이 익숙할 만큼 소나무 시리즈는 그의 작품세계를 대변한다. 경기도 여주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벽에 설치된 대형 소나무 작품은 솔거의 노송도처럼 변치 않는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고자 한 그의 예술적 의도가 잘 드러난다. 조각이면서 다분히 동양화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이길래의 소나무시리즈는 자연과 생명의 영원함을 담고 있다.

작품의 표현대상과 재료의 조화는 작가의 창작욕을 촉진한다. 이길래 작가에게는 소나무와 동(銅)이 그러하다. 2003년부터 동파이프를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삼은 그는 과거 작품에서 사용했던 흙, 굴껍데기, 조개와 다슬기껍데기 등의 자연적인 소재 대신 금속 물질로 자연과 생명을 탐구했다. 동은 산업적 특성을 지닌 금속으로, 비자연적이다. 그러나 이길래는 동에서 소나무와 유사한 특성을 발견한 후 작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표면이 산화하는 동의 특성이 시간의 흐름을 간직한 소나무의 표면 변화와 유사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나무와 동파이프는 자연물과 인공물이란 측면에서 대조적이지만, 영원성을 상징하는 표현대상과 재료라는 측면에서 유사 이미지로 연결된 것이다. 이길래는 단단한 동파이프 단면을 얇게 잘라 낸 후 다시 산소용접으로 연결하며 다양한 형상을 만든다. 이때 형체는 한 덩어리로 뭉쳐있기보다 겉과 속의 구분 없이 투과되게 하는 것이 포인트다. 크고 작은 수백 개의 동파이프 링이 다양한 형태로 그물망처럼 연결되고 유기적으로 결합한다. 이러한 작업방식과 작품 형태는 자연, 인간, 그리고 시간과 공간 사이의 복잡한 연결성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모든 생명체와 사물의 근본적인 관계성 탐구로 이어진다. 

이길래는 자연에서 영감을 받지만, 작품에 자연 생태를 완벽하게 반영하지 않는다. 그의 소나무의 형태는 자연 모방이 아닌 상상력에 의해 조형화된 결과물이다. 사실적 재현이 아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이나 형태를 통해 자연 생태 탐구의 범위를 확장해왔다. 예컨대 <Pine Tree with Three Roots>, <Millennium-Pine Tree Lump>, <Old pine tree> 등의 시리즈를 보면 자연 상태의 소나무를 닮지 않았다. 소나무의 실제 형태를 은유화해 생명의 본질과 그 상징적 의미를 주목하고 있다. <Millennium-Pine Tree Lump>에서는 천년 소나무의 한 부분(원목)을 거대 확대한 덩어리로 표현하고, <Old pine tree>에서는 소나무의 뿌리, 혹은 가지의 한 부분을 확대한 듯 표현해 생명력의 근원을 상징화했다. 절단된 나무의 단면, 즉 나이테에 기록된 시간성을 통해서 자연의 생명주기를 드러내고, 고목의 옹이에서 되살아난 가지와 푸른 솔잎으로 생명력의 지속성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강조한다. 이처럼 이길래는 소나무의 부분과 전체를 은유한 다양한 형태를 통해 오랜 자연의 역사와 자연 순환의 질서를 옹호한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자연 속에는 여러 생명체들이 잉태되고, 또 그 생명의 싹을 틔우는 자연 이치를 경외하는 작가적 태도이다. 이러한 경외감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표현한 작품들을 통해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임을 강조하는 작품으로 표현된다. 사람의 형상을 닮은 <인송>이나 <사람나무>시리즈에서 선보인 바 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본질적으로 자연 생태를 탐구한다. 자연은 우리의 망막 밖에서도 끊임없이 호흡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며, 그는 자연 생명체로 상징될 수 있는 다양한 형상을 만들었다. 씨앗, 세포, 고치, 열매의 형태를 닮은 덩어리(Lump)들은 그의 상상력을 통해 만들어진 대상들이다. 분명 자연의 산물이지만, 그 완성체는 상상으로 진화된 형상이다. 서로 엉키고, 꿈틀대는 듯 뒤틀린 형상, 하늘로 상승하는 촉수 같은 형상, 줄기와 같이 특정 부분을 확대한 작품 등 추상적 형태들은 상상 속에서 계속 부풀어 오르거나 증식할 태세다. 어떤 형태들은 우주의 어느 행성에서 있을법한 괴생명체 같다. 날카롭고 섬세한 소나무의 관념적 형상에서 벗어나 자연을 닮지 않은 덩어리들은 생명체의 존재를 무심히 드러내며 이길래의 작품의 독자성을 한층 강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독특한 덩어리식 형상은 비밀스러움으로 가득한 자연 속에 숨겨진 에너지를 채굴하며, 시원적인 생명체를 오랜 시간 동안 탐구해온 작가적 태도에서 기인한다. 실제 이길래의 순수한 자연에 대한 동경과 그와 관련된 조형성이나 재료 연구는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작업과 맥락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잃어버린 성>(중앙미술대상전 장려상, 1988)에서부터 '흙에서 땅으로' 시리즈와 '생성과 응집' 시리즈로 이어진 작업을 살펴보면, 그가 어떤 것에 주목하고 몰입해왔는지 알 수 있다. 기계문명의 가속화로 인해 자연 생태가 파괴되는 현대사회를 비판적 시각으로 응시하며,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자연의 원시성'의 관계를 특유의 조형 언어로 탐구한 시기부터 뿌리내려온 작가 정신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자라지 않는다. 땅속 깊이 파고든 뿌리는 나무의 존재를 높이 드러내며, 그것은 자연과 깊은 유대와 연결을 상징한다. 관점에 따라 뿌리는 단순히 나무의 생명력을 지탱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간의 복잡한 내면과 정체성의 근원을 반영한다. 가령, 예술가들은 뿌리를 통해 인간의 깊은 감정과 사회적 연결, 심지어는 우주적 질서의 조화를 탐구하며, 그 깊은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이때 뿌리는 단순한 식물적 요소가 아닌, 자연 생태의 존재 형식, 과거와 미래 사이의 상호작용, 그리고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상징하는 대상으로 치환된다. 이길래의 뿌리는 생명의 유대를 상징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품 중 미술관 2, 3층을 관통하는 작품과 벽면에 그물망처럼 펼친 작품은 뿌리가 생명의 관계를 잇는 매개이자 근원이라는 작가의 신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특히 7m에 이르는 거대한 설치물은 조각가 이길래의 조형 언어를 총체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작품이다. 커다란 나무 몸통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을 암시하며 드높게 솟아오르고, 크고 작은 뿌리들은 전시장 바닥에서 여러 방향으로 혈맥처럼 뻗어가며 강렬한 생명력을 과시한다. 뿌리가 대지 밖으로 노출된 모습은 제주도 곶자왈을 닮았다. 화산섬의 풍토로 인해 땅속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나무들이 땅 위로 뿌리를 노출시켜 주변의 돌이나 바위를 움켜잡고 생명을 이어가는 곶자왈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닥 가득 뿌리가 뻗어 나가는 연출로 인해 미술관 전체가 뿌리에서 내뿜는 강력한 기운으로 연결된 느낌이다. 자연스럽게 미술관 각층에 설치된 작품들과의 상호연결성이 부각된다. 

2.
이길래 작품은 드로잉에서 출발한다. 드로잉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도 완결성을 지닌다. 그의 드로잉을 보면 마치 나무의 심장이 박동하는 것 같은 모습, 나무 몸통을 감싸고 공생하는 모습, 사물과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습 등 나무의 생명력을 강조한 역동적인 장면들로 가득하다. 평면에서만 감지되는 회화적 감성이 대상의 강렬한 동작을 통해 시각적으로 전달된다. 특히 혼합재료(철가루, 커피, 먹물, 오공본드)와 철필을 이용한 평면 드로잉은 거친 표면 질감, 손의 움직임, 혼합물질의 뒤섞임 등 표현된 흔적을 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다. 생명의 근원이 중심부에서 시작되어 원심력을 그리며 뻗어 나오거나, 혹은 중심으로 응집되는 것처럼 표현되어 생명 에너지의 흐름을 보는 것 같다. 화면에 밀착해서 보면 마치 자연의 피부이며 혈류 같기도 하고, 우주 에너지의 흐름 같다.

이길래는 수많은 드로잉 중에서 선택한 드로잉을 작품화한다. ‘드로잉은 내 작품의 설계도면과 같다’라고 한 작가의 말처럼 드로잉 속 이미지를 입체화하는 과정이 흡사 도면을 놓고 표현대상을 완성해 가는 방식이다. 넓은 평면 작업대에 표본드로잉을 부분들로 나눈 밑그림을 놓고, 그 부분형상에 맞게 동파이프링을 채우고, 링을 하나씩 용접하여 부분 단면들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단면들을 두드리고 휘어서 특정한 형상을 만들어간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 표본드로잉은 거대한 입체조형물로 완성된다. 

이길래 작품의 또 다른 조형적 특징은 표현기법이다. 그의 작품은 곡선과 각도, 투조 기법이 중심이다. 금속의 단단한 특성을 유연한 곡선과 각도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자연성을 살려낸다. 이 곡선과 각도는 상상력이 더해지며 역동적인 느낌을 준다. 투조 형식으로 연결한 금속 링들은 세포가 분열하는 듯하다. 이길래의 투조 기법은 안과 밖의 명확한 구분을 없애고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지만, 내부와 외부 간의 유기적인 상호관계를 잘 드러낸다. 특히 그의 투조 방식은 빛과 그림자를 하나 된 느낌으로 만들어 작품의 깊이와 형태감을 더해준다. 가령, 바닥에서 띄워 설치한 작품의 형체는 벽면이나 바닥에 투사되어 본체와 다른 분위기를 발산하다. 보는 각도와 빛에 따라 투사의 형체가 달라지는 모습마저 매 순간 변화하는 자연 생명체의 숨은 면을 보는 듯 유도한다. 

조각에서는 무게와 균형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무너지면 보기에 부담스럽다. 이길래는 투조 기법을 통해 불필요한 무게를 줄이고, 공간과 물질 사이의 독특한 상호작용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의 투조 기법은 기본적으로 금속 재질이 지닌 무게를 최소화하면서 자연의 응집된 힘을 최대한 가볍고 부드럽게 전달하는 데 효과적이다. 분명 속이 비어있지만, 비어 보이지 않는 느낌이랄까.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는 표현보다는 애초에 속과 겉의 구분이 없는, 즉 겉이 속이고, 속이 겉으로 보이게 하여 이분화해 구분 지을 수 없는 자연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는 형상성을 추구한 작품보다 대상물의 특정 부위를 잘라 내 확대한 작품에서 더욱 명증하게 부각된다. 벽면에 소나무의 부분(표면)으로만 설치한 작품, 뿌리의 부분을 확대하거나 강조한 작품, 그리고 무심한 듯 바닥에 놓인 비정형의 여러 덩어리 작품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형상들이야말로 이길래 작가가 추구해온 자연생명의 원시성에 근접한 개념적 형태라고 해석된다. 

이길래 작품의 모든 제작과정은 시작에서 완성까지 육체적 노동과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다. 특히, 용접은 고도의 집중력과 숙련된 손의 감각으로 완성도가 결정되는 기법이다. 현대 조각가들은 이미 지난 세대 조각가들의 사고를 뛰어넘는 시대적 조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타고난 감각에 의존한 지각의 영역에만 머물면, 그 너머 정신세계의 문은 결국 두드리지 못한다. 조각가에게는 장식과 감정에 치중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자신만의 정신세계가 담긴 조형 언어와 문법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가 지금까지 인식하지 못했던 미적 경험을 끌어내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하는 데 필수적인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이길래가 동파이프 절편 하나하나를 생명 탐구의 새로운 지각과 인식의 골조를 세우는 조형언어로 활용하는 것은 분명 독자적이며 흥미로운 접근이다. 여기에 상상력으로 키워낸 비정형의 형상들과 소나무의 외형에서 벗어나 표면을 해체하고, 눈에 띄지 않던 뿌리에 초점을 맞춘 작품 등으로, 생명체의 근원에 한층 깊게 다가선 철학적 사유도 확장된 변화이다. 이를 통해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에 대한 감정, 생각, 경험을 돌아보게 하며, 관찰자의 개별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강해졌다. 

결론적으로 이길래의 작품은 동(銅)과 소나무를 통해 물질적 실체와 그 이상의 존재, 자연과 인공이라는 이중성의 경계를 허물며, 자연의 불멸성과 인간의 손길이 결합한 순간을 마주하게 한다. 그의 작품은 우리에게 자연의 영원함과 인간의 순환적 연결성을 경험하게 한다. 뿌리는 생명의 근원이며, 유대 형성의 형태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힘의 근원임을 일깨우고, 자연과 자연의 관계,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무엇으로 연결되며, 그 관계성 근원의 출발이 어디인지 돌아보게 한다. 
조각가 이길래는 오랜 시간 자연 생명력의 탐구를 지속하면서 ‘운명처럼 주어진 작가의 삶이 행복하다’라고 고백한다. 자연 풍파를 이겨내고 자연 생명체의 위대함을 드러낸 소나무처럼, 긴 시간 작가로서 치열한 삶을 살아내며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구축해가는 모습에서, 그의 고백에 믿음이 간다. 변하지 않은 자연은 없다. 그러나 자연의 본질은 영원하다. 이길래의 생명 근원 탐구도 그럴 것이다.


1차 게재 사비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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