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 대표작·비주류 계열 한눈에 <아카데미즘과 그 너머>전 
(사진1) 조선인 최초로 도쿄 대학 서양화과 본과에 입학했으며, 국내 화단의 아카데미즘 형성에 일조했던 화가 이마동의 대표작 <남자>(1931년). 조선미술전에 출품해 특선에 뽑혔다.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아카데미즘과 그 너머>(수묵채색화 부문은 5월23일, 유화수채화 부문은 9월12일까지, 02-779-5310)라는 제목으로 일제 시대부터 광복 이후까지 한국 근대 미술사를 일별할 수 있는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미술관 소장품을 위주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들은 근대 미술사에 등재된 회화 작품 위주의 전시여서 우리 근대 미술의 전모를 충분히 보여주기에는 미흡하다. 하지만 아쉬운 대로 이 전시는 한국 근대 미술에 대한 일견(一見)을 구하는 데 좋은 기회다.
전시 제목이 암시하듯 한국 근대 미술의 역사는 일제로부터 이식된 유사 아카데미즘으로부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서양 미술 수용을 한국 근대 미술의 기점으로 잡는 것은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이런저런 논의들이 있었지만 1920년대를 기점으로 잡는 데 많은 이들이 동의하고 있다. 1915년 고희동이 일본에서 서양화를 최초로 배우고 돌아와 귀국한 이후 서화협회·서화협회전시·조선미술전람회를 비롯해 여러 전시와 단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그래서 미술계가 조직되고 운용된 1920년대를 근대 미술의 기점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통해 받아들인 서양 미술은 이중의 왜곡을 통해 이 땅에 보급되었는데, 이는 서양 미술에 대한 매우 불충분한 정보를 전부인 양 파급시켰고, 또한 미술을 몇 가지 소재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으로 한정시켰다. 당시 화가들은 일본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서양 미술사 맥락에서 미술의 근대성의 의미를 찾으려 했고, 그것이 신식 교육을 받은 우리 화가들이 지닌 근대적 세계관이었다. 우리의 근대 미술 교육이 자주적 교육 이념이나 제도 설립을 통해 시작되지 않았고, 구체적 미술 교육 또한 대부분 일본인 화가나 일본에서 공부한 이들에 의해 이루어졌던 만큼 서양 근대 미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게 된 것이다.
‘식민지 조선의 서양화=근대화’라는 도식을, 민족 간의 적자생존 원리를 전제로 한 문명화로 받아들인 당시의 전반적인 논리는, 결과적으로 제국주의를 문명이 비문명을 선도하는 필요악으로 합리화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이는 미술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서양 미술을 모범으로 삼아 하루빨리 이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은 시간에 대한 경쟁이다. 역사의 시간과 숨가쁘게 경쟁해야 한다는 조급함! 여기서 역사의 시간이란 결국 서양이 주도한 근대적인 시간을 의미하며, 조급함이란 서양적 근대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일본이 효과적인 문화 통치의 일환으로 미술계를 장악하려는 시도로 만든 조선미술전람회는 많은 미술인들을 제도 안으로 끌어들여 길들이고 제도가 용인하는 특정한 경향만을 추구하도록 함으로써 이후 우리 미술계의 지형을 지나치게 평면적으로 만들어갔다. 미술이 사회나 현실, 개인의 문제를 미술적으로 해명하는 차원이 아니라 누드·정물·풍경 같은 소재를 창백하게, 공들여서 그리는 것으로 대체되어 버렸다. 이는 광복 이후 국전을 통해서 여전히 반복, 강화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미술전람회(선전)를 계승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가 다시 그 경향들을 온전하게 숙성시켜 고착화하거나 박제화해 온 셈이다.
서양 미술 따라잡으려는 조급증 드러내 (사진2) 조선미술전이나 대한민국미술전에 출품하지 않은 채 아카데미즘의 ‘너머’에서 활동했던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의 <남향집>(1939년).
1922년부터 1944년까지 당시 미술인의 유일한 등용문 구실을 하던 선전과 1949년부터 1980년까지의 국전은 한국 근대 미술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권력의 체계였다. 선전과 국전은 아카데미즘 특유의 소재와 양식 규격화와 관습화를 내재화했다. 미술의 문제가 특정 소재와 기법에 대한 충실한 수용과 모방으로 전락하고, 심사위원의 경향이 고스란히 전이되는 작품과 작가만이 살아 남고 의미를 부여받는 기이한 상황은 미술계가 권력화하고 속물화해 가는 것과 다름없다.
이번에 전시된 작품들은 근대기에 서양 미술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강박증의 일단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지난 시간의 기억과 현재의 시간이 충돌하고 그 가운데서 취향과 정체성 문제를 고민한 작업들도 더러 눈에 들어온다.
작품들은 선전과 국전 같은 관전(官展)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한 축으로 설정했다. 또 한 축으로는 당시 아카데미즘에서 주목되지 못하거나 배제되거나, 소외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상호 비교해 보려는 의도로 진열했다. 사회적으로 충분히 인정받지 못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름의 성과를 만들어나간 작업들이라는 얘기다. 이 두 개의 축으로 한국 근대 미술사를 조망해보고 정리해 보려는 의도를 지닌 이번 전시는 새삼 지난 한국 근대 미술의 성과를 한자리에서 음미하고 다시 생각해보게 한 중요한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 시사저널 2004년 5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