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생광 탄생 100주년 기념 회고전
수묵 위주 한국 동양화단에 새 길 열어
* <청담 스님>(1983년, 위)과 <무속 12>(1978년, 아래). 박생광 특유의 강렬한 채색이 돋보인다. 청담 스님은 박생광이 불가에 입문했을 때 절친한 도반이었다.
몇달 전 강석경씨의 신간 소설 <미불>을 읽었다. 마침 소설을 읽고 난 후 강석경씨가 살고 있는 경주에 내려갈 일이 있었다. 작가들 작업실을 둘러보고 난 후 저녁 자리에 우연히 강석경씨가 합석했다. 나는 소설 <미불>이 박생광을 소재로 한 것임을 알고 몇 마디 건넸다. 물론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 내용은 박생광의 미술 세계를 엿보는 데서 크게 비켜서 있지 않았다.
지금 강석경씨는 인도에 가 있고 나는 <미불>과 박생광의 화집을 나란히 옆에 두고 틈 나는 대로 펼쳐 보고 있다. 이화여대 조소과를 나온 강씨는 강렬한 예술혼을 지닌 작가들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컸을 것이고, 그 대표적 작가로 박생광을 다루었을 것이다.
꽤 오래 전에 강씨는 <일하는 예술가들>이라는 책을 통해 이미 박생광의 작업에 대해 글을 쓴 바 있다. 마침 올해는 한국 동양화의 대표적인 채색화가이자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인정받고 있는 박생광(1904~198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다. 강씨는 아마 올해를 기념하기 위해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박생광을 기리는 전시가 두 곳에서 열리고 있다. 갤러리 현대(9월24일까지, 02-734-6111)와 경기도 영통에 위치한 이영미술관(10월31일까지, 031-213-8223)에서다. 원래 이영미술관이 오래 전부터 100주년에 맞추어 대규모 회고전을 준비하던 참이었는데 갤러리 현대가 먼저 전시회를 열었다. 사실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저간의 사정이야 어쨌든 죽은 이를 위한 성대한 축제에도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기득권 싸움 같은 것이 개입되어 있는 것 같아 서글펐다.
불화·무속화 등에서 소재와 문양 차용
* 박생광 화가(1904~1985)의 생전 작업 모습.
박생광은 진주에서 태어나 진주농고를 다녔는데 이때 불교에 관심이 많아 불가에 입문하고자 했다. 그때 절친했던 친구가 바로 훗날의 청담 스님이다. 17세에 일본 교토로 유학해 미술 수학을 했다. 그 후 오랫동안 일본에 머무르면서 일본미술원 등에서 활발한 작가 활동을 했다. 그가 완전히 귀국한 해는 1977년. 그 사이 몇 차례 귀국과 도일이 반복되었지만 대부분의 세월을 일본에서 보낸 셈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한국 화단에서 아웃사이더로 물러나 있게 된다. 또한 광복 이후 한국의 동양화가 일제 잔재를 청산하기 위해 채색화를 외면하고 수묵화(문인화)를 내세운 사정과도 연관이 있다.


박생광처럼 일본화의 영향이 강했으며 채색화 작업을 하고 있는 데다 국내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경우는 더욱 화단에서 배제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그는 가난과 고독 속에서도 자신의 작업 세계를 일관되게 펼쳐나갔다. 무관심과 소외가 자신의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준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1980년대에 들어 그는 민족적 소재와 불교, 무속, 역사 인물화에 대한 관심과 탐구를 바탕으로 비로소 그만의 독자적인 양식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강렬한 색채가 한바탕 춤을 추는 듯한 그림, 굵은 주황색 윤곽으로 이루어진 형상들, 불화·탱화·민화·무속화 등에서 자유로이 차용해온 소재와 문양들이 한데 어우러진 그의 채색화는 유례가 없는 축복 같은 그림이었다. 우리 전통 미술 속에 녹아 있던 색채와 도상의 힘, 메시지와 화면 구성의 절묘한 조화, 대담한 스케일을 거침없이 끌어들여 그 누구도 그리지 못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채색화라면 미인도나 꽃 그림을 기계적으로 반복해오던 화단은 충격을 받았다. 이후 많은 작가들이 그의 그림을 차용했고 그 결과 1980년대 중반 한국 동양화단은 수묵과 소재 중심의 그림에서 한 걸음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다수 작가들이 박생광 그림의 참뜻에는 무지한 채 오로지 민화·무속화·불화에서 따온 도상과 색채를 소재적으로만 다루는 경우도 비근했다. 어쨌든 당시 나이 80을 앞두고 있던 그에게서 쏟아져 나온 그림들을 보며 많은 이들은 놀라워했다.
82세 되던 1985년, 그는 후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기 세계를 좀더 밀고 나갈 수 있는 시점에 죽음이 닥쳤다. 그렇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그가 남긴 그림만으로도 그의 존재는 별과 같을 것이다.
시사저널 778호 | 2004/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