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이 살아가니 마음이 자족하고 홀로 앉았으니 그 맛이 더욱 깊구나. 오랜 잣나무는 누각에 뻗쳐있고 그윽한 꽃은 낮은 담을 덮었네. 질그릇 발우에는 차유가 더욱 희게 미치고 피어나는 향로는 더욱 향기롭다. 비 그친 산당은 적막한데 툇마루에는 저녁 기운 상쾌하도다”
(근원 시)
자연 속에서 안분자족하며 유유자적하게 사는 은자의 삶, 즉 진인이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하늘의 것과 사람의 것이 서로 이기려 하지 않는 경지, 이것이 진인의 경지이다”
(장자 내편)
하늘의 이치를 좇아 욕심없이 물흐르듯 사는 것이 진정한 진인의 모습, 이렇게 사는 것이 자적이요 그 자적함을 아는 것이 지족이다.
김양동은 서예와 전각을 통해 자신만의 표현을 추구하고자 한다. 한국이라고 하는 민족적 색깔과 풍토에 익숙한 원시적인 조형이 서예의 중후하고 침착한 표정과 융합되었다. 그는 한국미의 조형어법을 추구한다. 그것은 한국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일 것이다. 한국고대문화의 원형을 탐구하고 고문자학에 대한 관심과 우리문화에 대한 해석학적 시야를 통해서 우리문화에 대한 원형탐구가 그의 작품의 근간이 되고 소재가 되었다.
서예작업글씨란 자연의 이치에서 생겨난 것이고 산과 물의 원리에서 운필의 묘와 필획의 세를 얻는 것이다. 서예는 원래 선비들이 개인적인 수기修己였다. 수양과 진리 탐구를 근간으로 한 선비들의 공부는 몸과 마음을 올바로 세우고 사물의 이치를 공부하는 것이다.
선비는 인의예지신의 도덕을 몸에 익힌 사람들이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함과 과장되게 스스로를 꾸미지 않는 소박함, 부드러운 인지함, 예의와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선비가 지닌 미덕이었다. 학문 및 자연과 인간사에 대한 여유로운 눈길과 멋스러운 정서를 시. 서. 화로 형상화해내는 예술가들이기도 했다. 문자생활이 주류를 이룬 이들에게 글씨는 사람됨의 반영으로 여겨졌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이 작품이기도 했다.
사실 서예란 뜻을 상(象)으로 표현하는 의상성이 매우 강한 동양예술이다. 한국과 중국의 고대신화, 전설, 민속, 원시신앙 및 상고시대 문학과 가사, 노장사상, 불교사상 등에서 소재를 택하여 각, 서, 화의 융합 기법을 통한 새로운 조형어법으로 개성적인 미의 세계를 만들어냈다. 특히나 그는 서예유적, 석비나 마애 암각석, 화상석 등의 고대유적을 바탕으로 하며 고문자에 대한 추적을 통해서 고대문화를 이해하고 있다. 서예를 전공한 그는 한자문화 시대가 아닌데 해석하지도 못하는 한자를 가득 채우는 작업에 고민했다고 한다. 따라서 당대의 서예가란 새로운 조형미감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책무가 있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래서 서예와 전각과 그림이 융합된 작업세계로 나가게 된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젊어서 서예를 공부한 이유는 서예가 교양의 하나였기 때문이었다. 한글이 서예적 미감표출에는 한계가 있지만 모국문자이기에 한글서예에도 역량을 기울이는 것이 서예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그는 현재 서예가 외면 받고 있는 현실에서 서예만을 고집해서는 돌파구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대적 미감을 드러내면서 현대인들의 감성에 와 닿는 작업 그러니까 서예의 현대성이 그의 과제인 셈이다. 따라서 서예와 그 밖의 요소를 혼합한다. 그러니까 효과적으로 서예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제작을 고민하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서예가들에게 회화적 발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가하면 그림 그리는 작가들에게는 서예적 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농묵은 가지고 논다는 뜻이다. 옛 선비들의 단아한 아취, 선비들은 여기로 문인화를 그리면서 주변 환경을 가지고 ‘농’했고, 먹과 벼루를 가지고 농했고, 인장을 가지고 농했다. 옛 사람들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농묵’이라고 했다. 농은 선비들의 멋이었다.
전각작업그는 ‘방촌’의 세계를 확대하여 글씨나 그림의 모양이 탁본으로 표현되게 한다
서예와 함께 전각은 그의 중요한 작업세계이다. 그는 시대변화에 적응하는 전각의 미적 전개에 관심을 갖고 있다. 고전적인 바탕위에 새로운 표현을 위한 총체적 역량을 보여준다.
아울러 그는 우리의 전통적인 판각문화에 주목한다. 우리 민족은 원래 학문을 좋아하고 책을 사랑하였기에 목판본들이 수없이 생산되었고 그 속에서 종이와 함께 판각문화가 발달했다. 우리 전통판화는 망치로 조각칼을 두드리며 깊고 얕게 파나가는 타각법이나 칼을 안으로 끌어당기는 인각의 판각기법이다. 힘차고 옹골찬 각의 맛과 다소 거칠고 투박하지만 고졸한 멋을 한없이 풍긴다.
제작방법론그러니까 그는 각, 서, 화가 삼위일체가 된 표현을 한다.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오래된 고지, 바래고 고풍스런 맛을 흠뻑 풍기는 종이를 바탕으로 한다. 도판에 예리한 선으로 새겨진 글자와 그림과 도형이 불에 굽혀지고 새겨진다. 한지와 1,2백 년 전의 오래된 조선지위에 탁본하는 식으로 두들긴 글씨나 그림이 요철화 되었다. 이 탁본의 아름다움은 먹을 두들긴 정도에 따란 생생한 품격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은연중 풍화의 맛을 자아낸다.
그는 우선 도자기를 만드는 흙으로 만들어진 도판을 설정하고 그 위에 구상해 놓은 그림을 스케치하고 새겨 넣었다. 그 도판을 초벌구이 했는데, 여기에 구워낸 도판으로 고지나 한지 위에 탁본을 한 것이다. 일종의 떠냄 기법이다. 종이가 바싹 마른 후 글씨를 써서 올렸다. 탁본형식으로 떠낸 그림들은 최대한 표면의 질감을 살리기 위해서 그대로 표구를 했다. 아울러 글씨나 그림을 그리기 전에 황토나 회토를 바르기도 하는데 이는 토속적인 한국적 미감을 살리기 위한 표현방법이다. 여기서 고지나 전통한지는 질기고 내구성이 강해서 선택되었다. 그는 이 같은 한지물성의 뛰어난 장점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이용하였다.
신화해석그는 신석기시대부터 토기에 가득한 햇살무늬, 빛살무늬를 바탕으로 한다. 빛살이란 신의 고자이다. 이는 생명의 시원적 기호이다. 빛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이것을 영원한 화두로 삼아 작업 속에 패러디화해 내는 신화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는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작품에 일관된 주제이다. 신화를 이야기하면서 중심대상인 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리고 있다. 고대인의 발언을 현대적으로 패러디하는 작업인 것이다. 그러니까 그는 고대의 유적이나 유물들을 상상력의 창고로 삼아 작업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법고이지변 창신이능실’(연암 박지원) ‘옛 것을 본 받더라도 오늘에 맞게 변화시킬 줄 알고 새 것을 만들더라도 법도에서 어긋나지 않게 해야 한다’는 말을 철칙으로 삼고 있다.
골동취향과 안목그는 무엇보다도 순간의 표현으로 미감을 나타내는 것을 중시한다. 그리고 어리숙하고 푸근한 것 역시 그렇다. 그는 오랫동안 박물관에 다니면서 많은 유물을 보고 관계서적을 접하는 한편 개인소장품이나 문중의 전각을 탐색해왔고 80년대 와서는 인사동을 중심으로 실물을 참견하고 안목을 형성하였다. 좋은 것을 보고 작가적 시각에서 재해석하는 해석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골동에 대한 안목이 보다 다양하게 형성되면서 작품도 한 단계 올라섰던 것이다. 아울러 선인들의 서간을 수집했는데 서간에 나타난 좋은 글씨풍이 눈에 자연스럽게 익혀지고 이러한 글씨풍이 어느덧 자신의 글씨로 배어 나오게 되었다. 이 같은 종합을 통해 그는 거칠고 졸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는 주제를 가지고, 철학을 가지고, 작품을 하자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이론과 작업의 일치가 중요한 것이다.
도인이 도를 닦음에 있어 졸함으로 도가 이루어지듯이 글씨를 졸함으로 이르게 되는 것, 졸한 글씨는 순박하다. 그리고 무수한 뜻을 담고 있다. 교묘함을 졸렬함으로 감추고 있다. 마이 어둠으로 밝음을 대신하고 무거움으로 가벼움을 대신하듯이 졸拙함으로 교巧함을 대신하고 있다. 바로 교졸함이 같이 있는 글씨다.
그는 한국미를 구수한 큰 맛으로 이해한다. 이는 고유섭이 거론한 것으로 우리 고유의 미의식을 탐구하면서 한국 민족의 미적 가치체험의 표현인 한국미술에 대한 미적 가치의미해석을 구하는 과제를 지녔던 이다. 그가 제시한 이념들은 서양미학이론에서 나온 개념들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유 언어를 사용한 새로운 범주까지 아울렀던 이다. 그는 정치한 맛이나 깔끔하게 정돈된 맛이 부족한 대신, 질박한 맛과 둔후한 맛과 순진한 맛이 두드러진 점에서 한국미술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고 보았다. 구수한 큰 맛이란 중국미술에서 맛볼 수 없는 바와 같은 웅장한 건실미와는 구별되는 무어라 번역할 수 없는 한국 미술이 특징적인 일면이다.
분청사기의 자유분방함의 응용이다. 청자와 백자 사이에서 이루어진 놀라운 변주곡인 분청은 소박한 파격의 미학을 지녔다. 마음 가는 대로, 손가는 대로 별다른 욕심 없이 그때그때의 기분에 따라 만들었다. 분방한 즐거움이 있고 소박하고 자유로운 정신에서 오는 별격의 장식미가 있다. 수없이 반복되어 찍어놓은 점들의 모임으로만 이루어진 정밀한 인화분청의 세계가 그렇고 백토를 짙게 바르고 그 위에 대담하고 활달하게 긋고 파내어 이루어진 분방함이 넘치는 조화가 있다. 이 박지분청의 세계 등은 한국미의 원형으로 일컬어진다. 무던한 심성과 푸짐한 손길로 빚어낸 여유로움이다.
그 다음으로 그는 짚, 풀에 주목한다. 주거용품의 중요한 재료이자 의류의 불가결한 원료인 짚, 풀은 온갖 민구는 물론 농사에 필요한 각종 그릇들의 재료였고 자연주의적 생활철학을 보여주는 매개다.
흔적과 지움은 상징적인 의미인데, 이는 인간의 생명작용을 서예로 표현한 것이다. 생성과 소멸의 순환반복이 결국은 우주의 철리이다. 그래서 흔적과 지움이 그러한 반복작용이 들어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불교적 이미지가 강하게 투영되어 있다.
. 근대 이후 한국미술의 아킬레스건은 전통과 현대, 전통미술과 서구미술과의 관계였다. 전통과 현대의 갈등, 충돌, 그리고 융합이란 문제가 늘상 작가들에게 과제로 던져졌고 이를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추구해온 것이 그간의 미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통해 서구미술을 수용하면서부터 그리고 낯설고 이질적인 미술 개념과 그만큼이나 어색했던 재료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부터 그 두개의 다른 영역은 항상 문제적이었다.
개화기 당시에 서구미술은 이전의 전통사회에서 이해되던 이미지들과는 다른 질적인 우위를 점하는 선진적이고 현대적이고 과학적이며 문화적인 것으로 인식되었고 상대적으로 과거의 것은 고루하고 낙후된 것으로 여기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대다수 작가들은 전통으로부터 급격히 이탈하거나 전통을 폄하하고 새로운 서구미술을 적극 수용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것도 진실이다. 이렇듯 시간의 선후에 따라 현재를 과거보다 우위에 놓는 것과 서구를 동양에 비해 우월한 것, 진보적이고 문명적으로 여기는 것 역시 근대에 와서 가능한 인식이다. 그와 동일한 맥락에서 현재는 과거에 비해 발전되고 진보된 상태를 의미하는 사실상의 우위를 점유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30년대 이후 향토색의 구현이라는 미술운동이 있었는데 이는 동양주의 및 아세아주의미술의 추구라는 당시 일제식민지정책에 일견 조응하는 흐름이었다. 이때 전통미술과 동양미술에 대한 이해들이 어느 정도 부각되었지만 일본파시즘의 정책적 필요에 의해 의도된 오리엔탈리즘 내지 고착된 정체성의 함몰이란 함정이 분명 내재해있었음은 주목된다. 대표적인 것이 야나기 무네요시의 논리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에 따른 조선의 미에 대한 믿음은 향후 한국작가들에게, 한국미술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해방 이후 민족미술의 수립이란 과제 역시 전통미술에 대한, 한국미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깨우치게 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미술계는 급격히 서구미술의 수용과 영향 아래 쓸려갈 수밖에 없었다. 60년대는 그런 의미에서 추상미술의 영향 아래 급속히 미술이 재편되는 과정을 겪는다. 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는 강요된 한국적 민족주의 아래 그간의 추상미술, 현대미술의 외피에 동양적이고 한국적인 정체성이나 사상을 억지춘향식으로 집어넣는 형국이 초래되었음을 기억한다. 이른바 단색주의회화라는 것이 그것이다.
80년대 또한 민족, 민중미술의 주창에 따라 전통미술에 대한 관심과 그에 부합한 한국미술의 정체성 논의가 촉발되었다. 최근까지 이런 논의는 미술계에서 가장 긴요하고 본질적인 것처럼 매번 주창되고 있음을 본다. 대다수 작가들이 이 한국미술의 정체성이란 문제에 과도하게 시달리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비서구국가로서 근대화의 세례를 받은 모든 나라의 문제일 것이고 미술 역시 동일한 운명 속에서 그 같은 궤적을 고스란히 반영해왔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흐름들이 공존한다. 우선 전통이란 고정되어 있는 그 무엇으로 이를 강박적으로 추구하는 움직임이 그 한 궤적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전통이란 단순한 고체의 오브제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는 것이며 보다 적극적으로 여러 패턴, 장르, 방법론으로 풀어내고 있음도 본다. 그래서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려는, 전통과 현대를 연계시키는 여러 작업들이 눈에 띄고 있다. 나로서는 근자에 앞선 세대가 보여주던 방식과 다른 전통의 해석과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을 연계시키는 발랄하고 신선하면서도 강박적이지 않은 의미 있는 여러 작업들의 편린을 자주 접하는 편이다.
전통은 상속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선택될 뿐이고 전통으로 인정되거나 인정되지 않는 것은 현재이 역사적 문맥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 다시 말해 우리가 전통의 생산과 수용의 ‘전략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전통의 생산과 수용에 작동하는 헤게모니의 격렬한 투쟁과 그 전개과정을 주밀하게 살피고 그로인해 선택되고 결정화된 전통이 지닌 의미를 다층적으로 읽어보려는 시도가 그만 큼 절실하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