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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 영원을 꿈꾸는 ‘찰나의 의식’

박영택

영원을 꿈꾸는 ‘찰나의 의식’
안창홍 사진전 <얼굴>/증명사진 등 다양하게 연출



누군가의 얼굴은 미지의 세계다. 한 사람에 대한 정보는 전적으로 그 얼굴이 우선한다. 그 세계는 너무 낯설다가도 이내 친숙해진다. 우리가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망막이 그 얼굴들을 기억하고 머리 속에 각인한다.
그 얼굴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눈과 코와 입술이 모두 지워져 버리기도 한다. 그러나 끝내 소멸되지 않는 부분들도 있다. 그/그녀의 얼굴은 하나이면서 동시에 무수한 얼굴로 다가오기도 한다. 나 역시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나조차 알지 못하는 나의 얼굴, 오로지 타인들의 눈에 걸려드는 얼굴 말이다. 그럴 때는 무척 낭패스럽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드러난 얼굴뿐이지만 정작 그것으로는 타인을 알지 못한다. 그렇지만 또 그 얼굴은 한 개인이 지내온 시간의 과정과 마음의 굴곡, 정신의 주름들을 감출 수 없다. 우리는 매번 누군가의 얼굴을 보며 산다. 얼굴을 피할 도리가 없다.

안창홍의 최근 작업은 사람의 얼굴이 정면으로 촬영된 사진을 응용한 것들이다. 지금은 사라진 사진관이 보관 중이던 주인 없는 증명사진을 구해 이를 크게 확대한 후 그 표면에 다양한 칼질을 가하거나 찢어 붙이는 한편 눈동자와 입술을 조작하거나 얼굴 피부나 목덜미에서 기계부품이나 전선줄이 삐져나오게 그려 넣어 일종의 사이보그로 만들어놓는 등의 다양한 연출을 가한 것들이다.

그는 증명사진 속에 박힌 얼굴을 이용한 여러 유희를 통해 인간의 외부와 내부의 간극과 틈, 분열상을 보여주는 한편 날카롭게 자른 부분과 손으로 찢은 부분의 상충과 겹침, 어긋남을 이용하기도 하고 두 장의 사진을 하나로 겹쳐놓으면서 인간 감정의 여러 측면을 더욱 풍부하게 드러낸다. 얼굴은 진실을 가리고 있는, 그 뒤에 또 하나의 속 얼굴을 감추고 있는 장소이자, 동시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타자를 바라보는 장소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권유

더러 눈을 감기기도 하고 입술만 붉게 칠해놓거나 얼굴 주변에 나비를 부착한 경우도 있다. 자기 안으로 침잠하듯 들어가거나 명상에 잠긴 듯, 혹은 열반에 들거나 영원한 휴지기로 접어든 존재들의 영면 같기도 하고 지상에서의 고단한 삶의 이력을 모두 다 지우고 비로소 맞이한 꿈같은 휴식을 부여한 포즈 같다. 적멸의 순간이자 명상의 정점, 또는 모든 욕망을 잠재운 후에 비로소 드러나는 평화로운 얼굴 같기도 하다.



여기서 눈은 그 경계가 된다. 생사의 경계는 눈을 뜨고 감는 찰나에 서려 있다. 그는 마치 시신에 화장을 하고 염을 하듯 모르는 사람들의 오래된 흑백사진을 빌어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 같다. 직사각형의 철제 프레임 안에 들어간 거대한 사진(얼굴)은 에폭시로 절여져 있어서 반짝이면서 영원한 부동과 침묵, 시간의 입김이 스며들 수 없는 영생과 불사를 누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가하면 그 얼어붙은 시선들은 순간 자기 생을 뒤돌아보라고 권유하는 것도 같다.

* 안창홍 <얼굴>전은 4월19일~6월7일 사비나미술관에서 열린다. 문의 02-736-4371.

- 시사저널 2006. 5.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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