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강 및 지속 사업의 실태 2006년 서울을 비롯한 전국 11개 지역에서 벌어진 아트인시티 사업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해서, 그 중 2개가 지속 사업으로 결정되었고, 광주 중흥동, 군산 해망동, 서울 낙산 등 3개 지역에 대해서는 보강 작업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예산이 따로 책정되었다. 지속 사업은 2006년 아트인시티 사업의 평가 기관인 재단법인 예술 경영 지원센터 보고서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마석 프로젝트(감독; 양철모)와 성서 공단 프로젝트(감독; 이명훈, 하정화) 선정되었으나, 마석 프로젝트는 주최 측 사정에 의해 포기되었고, 대구 성서공단에서는 공동감독을 맡았던 하정화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사업 대상지와 예술 감독 공모를 중심으로 2007년의 새로운 공공미술을 펼쳐 나가는 와중에, 충분하지 못한 예산을 쪼개서 지난해 사업을 따로 챙긴 이유는, 공공미술이 단순히 치고 빠지는 식의 일회성 행사를 넘어서 지속가능성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화이트 큐브라는 정제된 공간에서 한시적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닌 공공미술은 현장의 수많은 변수에 의해 노출된다. 외부 설치물의 경우 처음부터 제대로 만들지 않으면 멀지 않아 흉물로 방치되기 십상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부산 수정동 프로젝트(감독; 서상호)는 10년 이상을 버틸 수 있는 재료와 도료를 사용한 점이 높이 평가된다. 수정동 팀은 외부에 노출된 시설물의 부식을 고려해서 스텐레스 스틸 재료와 불소 코팅 도료, 그리고 방부 목에 오일스테인 코팅 등을 사용하여 오랫동안 원래의 형태와 색채를 유지하도록 했다. 반면 아크릴 같은 수성 도료를 쓴 벽화들은 많이 망가져 있었다. 예를 들어 낙산 프로젝트(감독; 이태호)에서 학생들이 제작한 벽화 4개는 도료의 접착력이 약화되어 조각조각 떨어져 나가 보강이 요구되는 상태였다. 2006년 아트인시티 사업의 시행 기간이 충분하지 않아, 단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하여 벽화에 치중한 경향이 있었는데, 이렇듯 시간의 시험에 무력한 몇몇 작품들은 그자체가 실패한 기념비로 남게 된다.
벽화라는 장르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제작 및 관리가 문제임은 물론이다. 벽화든 뭐든 작품 제작 과정에는 해당 지역 주민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그것이 가능해야 사후 관리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가령 복지관이나 학교 등 구체적인 시설에서 진행된 사업들은 기관의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부천의 원종동 프로젝트(감독; 박영균)에서 복지관 안에 설치된 시설 작업에 낙서와 복지관 맞은편의 벽화에 먼지가 많았는데, 복지관의 주기적인 청소가 요구된다. 합천 숭산 프로젝트(감독; 박지현)는 시골 초등학교 놀이시설 개조에 주력했는데, 시설물에 어린이들의 사용도가 빈번하여 보수문제가 제기되었다. 그것은 공공미술 작품이기도 했지만, 학교의 시설물이기도 하기에 주체인 학생, 선생님, 그리고 마을 주민들의 관심과 관리를 필요로 한다. 부산 물만골 프로젝트(감독; 하석원, 백종옥)는 사업 당시에는 주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하였지만, 12개 설치작업 중에서 파손된 것을 주민 스스로 보수하여, 마을 주민이 사후관리 맡겠다는 애초의 약속이 지켜진 긍정적인 경우이다.
광주 중흥동 프로젝트(감독; 박성현)는 골목길, 텃밭, 빈집 등을 상대로 40여개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재개발 지역이라서 그런지 주요 작업장이 다시 쓰레기장이 되었다. 박성현 감독은 와우 주막 등 빈집을 이용하여 작가 레지던시 같은 후속 프로그램에 대해 희망했는데, 작가가 현장에 남아서 주민과 함께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이상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중흥동 프로젝트에서는 영상이나 설치 등 현대미술 작업도 진행되었지만, 이러한 류의 작품은 일정한 전시 기간이 지나면 지속되기가 힘들다. 그래서 2007년도에 진행한 보강작업이 생태공원 프로그램인 [꿈틀이 공원] 작업에 집중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렁이 분변토를 활용하는 텃밭에서의 작업은 음식물 쓰레기 활용 등, 생태주의에 기반 하여 주민생활과 보다 밀착되어 있어 근본적인 지속가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의 아트인시티 목표가‘소외지역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공공미술 사업’이라는 목표를 가졌던 만큼, 재개발 지역에서 벌어진 사업이 많았다. 광주 중흥동 뿐 아니라,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대전의 홈리스 프로젝트(감독; 정세학)도 그랬다. 재개발 지역에서의 사업은 현장 자체가 사라지는 경우인데, 작가들이 2007년도에 진행된 다른 공공미술 프로젝트나 보수작업에 참여함으로서 지속성을 유지하였다. 빈집을 활용한 동네 미술관 작업을 했던 군산 해망동 프로젝트(감독; 하영호, 공화국 리라)도 설치 작업은 철수되었지만, 풍화가 심한 채 남아있던 벽화나 벽 시 작업에 대한 보수가 이루어졌고, 2007년 문화예술 위원회의‘새 장르 공공 미술 프로젝트’부문에서 지원금을 받아 자체적으로 지속 사업을 진행하였다. 또한 대규모 공단 지역의 노조사무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대구 성서 공단 프로젝트는 아트인시티의 지속사업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프로젝트의 주요 파트너였던 성서 공동체 FM 방송국이 한국문화원 연합회가 주관하는‘2007 생활 친화적 공간조성 사업’에 선정되어 사업비를 확보하는 등, 아트인시티 사업을 매개로 지역문화를 활성화시킨 성과를 낳았다.
민(民), 그리고 관(官)과의 공조
지역 주민들과의 교감을 중시하는 대안의 공공미술이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수립, 실행, 관리되려면, 지역 주민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이 지역 주민들과 얼마만큼의 유기적 관계를 맺는가의 여부가 작업은 물론, 그 이후까지 영향을 준다. 대안의 공공미술은 투여된 노동이 상품처럼 고립된 대상으로 소외되는 상황을 지양하고자 한다. 따라서 작가와 주민은 계몽이 아니라, 상호적인 구성관계를 가져야 한다. 작업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생산자가 아닌 매개자로서의 작가들은 확실하지 않은 어떤 상황을 받아들여야 한다. 손쉽게 가정될 수 있는 공동체라는 것이 현재로서는 확실하지 않다.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관계에 바탕을 둔 이전 시대에는 가능했을 법한 의사소통의 직접성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장의 작가들은 새로운 소통 방식을 고안해야 하며, 여기에 새로운 공공미술의 도전이 있다.
좋은 의미든 아니든 전통이 사라진 그곳에 경제적 합리성과 상업주의가 자리 잡았고, 자연스러운 공동체라는 개념을 더 이상 바랄 수 없는 상황에서, 단순한 물질적 가치가 아닌 상징적 가치를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요즘은 이념이 아닌 실용의 시대라고 이야기된다. 그러나 물신주의의 그물망에 포착된 최상위 그룹의 몇몇을 빼고, 대부분의 미술은 부의 생산과는 무관하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생산이 공공적 가치와 무관한 것인 한, 미술은 실용성의 부재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회학자 돈 슬레이터가 말하듯이 현대사회에서 부의 생산(실제로는 가격)은 빈곤과 착취, 그리고 불안정성을 지속적으로 초래하기 때문이다. 보다 많은 물건이 생산되며 사회생활이 점점 더 사물화 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모더니티는 세계의 전유나 대상화를 진보라는 맥락에서 타자로 파악하는 반면에, 다른 모더니티는 인간성의 소외라는 측면에서 대상화를 이해한다.
사회적 부가 증가해도 소외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이 아니다. 이 질서를 현존하는 유일한 세계로 내면화하는 예술 또한 지속가능하지 않다. 현대사회에서 예술은 공통의 세계를 구성해 왔던 사회적 과제를 상실하고 개인적 취향이나 사유화의 문제로 축소되었다. 개념과 명분도 잃고 오직 시장 위주로 치닫고 있는 현 미술계의 상황에서 대안의 공공미술이 취해야 하는 입장은 비교적 명백해 보인다. 그것은 사회학자들이 정의하는 이익이 지배하는 사회(비인격적이고 이차적이며 대규모적이고 사회적으로 분화된)가 아닌, 공동 사회(일차적이며 소규모적이며 통합된)의 가치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것은 견고한 구조로 변해버린 현대사회의 가장자리로부터 시작된다. 2006 아트인시티 사업대상지가 대부분 재개발 지역 등 ‘소외 지역’에 집중된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그러나 화폐 화 된 모든 형태의 부는 전통은 물론 공동체를 소멸시켰기 때문에, 작가들이 현지에 가서 만났을 법한 이상적인 공동체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근대의 이상적인 공공영역과 관련된 시민성조차도 시장의 소비자로 분해되어 버린 마당에, 오히려 작업은 사라진 공동적 가치를 다시금 구성해 내는 역할을 해야 했다. 지향해야 할 가치로서 공동체적 예술은 대중문화처럼 대중이 원하는 가장 낮은 공동의 지표에 호소하는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이 구매한 것과 관련된 소통이 아니라, 공동적으로 생산한 가치와 관련된 소통을 지향한다. 자신이 생산한 것과 무관한 소비에 끌려 다니는 대중들은 사실상 그 숫자에 비해 매우 비사회적인 집단이다. 대안의 예술은 미디어와 시장의 조작에 의한 산물인 소비자로서의 대중이 가지는 불건강한 침묵을 깨고, 새로운 소통 방식을 만들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공공미술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작가의 관심과 주민들과의 교감과 더불어 꼭 필요한 것이 해당 관청과의 협조이다. 2006 아트인시티의 참여 작가들은 하나같이 시행된 공공미술의 ‘유지 보수를 위한 기금 마련과 관리주체의 선정 등, 지속적적인 관심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박성현)고 주장한다. 낙산 프로젝트의 감독 이태호도‘작품의 완성 및 설치 후 그것의 지속적인 유지와 보수를 담당하고 책임질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개별 작가의 의지와 열정만으로 꾸려온 감이 없지 않은 공공미술의 현장에서, 공공미술 추진위원회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공공기금으로 공공미술에 필요한 예산이 확보되고 집행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정식 기구라기보다는, 문화부 외곽조직으로서의 임시적 성격을 가지는 위원회와, 관리해야할 사업 규모에 비해 소수로 꾸려진 사무국의 실정 등, 사업의 집행에 적지 않은 무리수를 둔 것이 사실이다. 사업의 주관 뿐 아니라 관리 단계에서도 관과의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심지어는 아트인시티 사업이 구체적으로 실행된 이후의 단계에서, 관이 앞장서서 작품을 파괴한 경우도 있었다. 종로구 동숭동 및 이화동 일대에서 벌어진 낙산 프로젝트는 대도시의 익명성 때문인지 유독 훼손이 많았다. 그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서울 사대 부속 중학교에 4000만원이나 투입된 벽화와 부조가 구청의‘담장 허물기 사업’으로 사라진 것인데, 종로 구청과 학교의 무관심과 무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지역의 경우, 광명시 철산동 프로젝트(감독; 안현숙)에서는 재개발 지역의 보상관련 민원이 제기될 것을 우려하여, 시가 타임캡슐을 묻었던 타일벤치 작품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나무 몇 그루를 심은 예가 있다. 정치인들은 주민과의 진정한 소통보다는 이벤트성 행사나 호화 건물 등 눈앞의 실적에만 급급하다. 적지 않은 지자체에서 단순히 보고 즐기는 일회성 지역 축제나 지역의‘브랜드 파워’를 드높인다는 장식성 사업에 적지 않은 국민 세금을 뿌리면서, 주민과 작가로부터 자율적으로 시작된 풀뿌리 문화 운동에 무관심하다. 공공미술은 작가 뿐 아니라, 민관이 함께 지켜 나가야할 중요한 공공재이다. 그것은 공동체와 참여라는 공공적 가치--그 자체가 사회적 책임과 사회적 이익을 의미하는--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출전 | 2007-2008 아트 인 시티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