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이나 어린이 등 여러 형상으로 변모하는 뭉쳐진 검은 얼룩, 그곳에 착근한 잠자리 날개는 끊어질듯 이어지는 섬세한 그물망으로 나머지 공간에 가득 펼쳐진다. 검은 실루엣으로 드러나는 그림자 형상은 대상의 구체성을 생략하며, 주변의 것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을 이룬다. 여기에서 뻗어나간 잠자리 날개는 묵직한 어둠의 중력을 극복하고 우주를 향해 상상의 나래를 편다. 검은 형상 안팎에 뿌려진 목탄가루와 얼룩은 형상의 명확한 경계를 흐릿하게 하면서, 상상력에 의해 파열되는 고정관념을 예시한다. 잠자리 날개들은 자연 본래의 오묘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펼쳐진 날개의 경계면까지 가늘게 이어지는 선들은 상상이라는 관념적 연결망과도 겹쳐진다. 잠자리 날개의 그물망은 뿔이나 나뭇가지로 변모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증식한다.
정경희의 작품제목이나 전시제목에는 기억이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다. ‘자유연상’(1회 개인전, 2003년), ‘기억을 날리다’(2회, 2005년), ‘기억 너머’(3회, 2007년) 등. 그러나 유동적인 검은 형상들과 날개는 기억에의 고착이 아닌, 기억의 가변성을 예시한다. 잠자리 날개가 한번 펄럭일 때마다 기억을 이루는 연결고리들은 헐거워지면서 재배치된다. 요즘 작품에서 검은색들 사이에 약간씩 보이는 금색은 기억의 하이라이트를 이루는데, 기억의 그물망이 새롭게 출렁일 때마다 그 결절 점은 변화한다. 오일 스틱은 자유 연상이나 끝없이 이어지는 사고의 선을 표현하기에 적당한 매체이다. 안료를 기저 면에 두텁게 쌓아올리는 서양화의 전형적인 방식이 아니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의 전 과정을 알몸으로 드러내야하는 드로잉은 먹을 떠올리게 하는 색감과 더불어 동양화의 느낌을 주는 요소이다.
정경희의 작품에서 아이보리색 여백은 전시장 벽면까지 포함하곤 한다. 라인테이프 등을 이용해서 벽에다 직접 그리는 작품에서 많이 나타나지만, 작은 캔버스들을 모아놓은 작품이나, 화면 구성 방식에 있어서도 잠자리 날개의 공기주머니 같은 숨통을 틔워놓는다. 이미지가 화면 한가운데를 차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작품은 전체를 작게 줄여서 담아놓은 축소모델이 아니라, 일부만을 시각적 단서로 던져 놓을 뿐이다. 작품은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그려진 것과 남겨진 사이에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의 장을 이룬다. 잠재적인 형태가 발아하여 변모하면서 존재와 부재 사이에 유희가 펼쳐진다. 지상의 가장 느릿한 존재인 달팽이에 날개를 달아준달지, 물고기에 날개를 날아 물속을 하늘로 변모시키는 등의 표현은 상상의 날개로 존재의 무게감을 덜어주는 행위에 해당된다.
지상의 물질적 존재가 초월적인 존재로 승화되는 것은 날개의 또 다른 변형인 수목 또는 뿔의 이미지이다. 그것들은 검은 덩어리에 뿌리를 두고 위로 상승, 또는 비상하는 형태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는 상상의 사슬은 뿌리줄기나 비늘 같은 이미지와 연합되기도 한다. 유기체의 머리 위로 상이한 요소들이 얽히고설키며 증식되는 변이의 이미지는 연속적인 분지로 이루어지는 상상적 과정과 유사하다. 어둡고 둔중한 덩어리들에서 가늘게 뻗어 나오며 조직화되는 망들은, 근원적이기는 하지만 모호한 것들을 텍스추어가 살아있는 메시지로 전환시킨다. 촘촘한 그물망을 통해 근원적 에너지를 먼 말단까지 퍼 나르는 것이다. 잠자리 날개, 나뭇가지, 뿔 등은 시각적 유사함을 매개로 서로 중첩된다. 그것은 자연적 힘의 흐름이 최적으로 배열되는 상동적 구조이다. 형태 속에 분화와 진화를 각인하고 있는 이러한 분지 체계들은 주변과의 접촉면을 최대한 늘리면서 확장된다.

이러한 모든 과정들은 상승적 구조와 운동을 만들어 낸다. 한편 날개는 그림자처럼 밑으로 깔리기도 한다. 검은 형상이 네가티브 역할을 맡는 것에 그치지 않고 날개의 지지대이자 에너지 공급원을 이루듯, 그림자 역시 잠자리 날개 같은 잠재력과 가변성 그리고 취약성이 있다. 정경희의 작품에서 검은 형상은 그림자와 관련되는데, 그림자는 잠자리 날개와 더불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모티브이다. V. 스토이치타는 [그림자의 짧은 역사]에서 고대 로마의 학자인 플리니우스를 인용하며, 회화의 기원에 거울이 아닌 그림자가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에 의하면 회화는 선으로 윤곽을 그린 인간의 그림자에서 최초로 태어났다. 회화가 처음 나타났을 때, 그것은 신체의 부재와 그 투영된 형상의 존재를 포함하고 있었다. 정경희의 작품에서 검은 형상들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관찰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림자에 대한 재현물, 즉 복사물에 대한 복사물이다.
그것은 대상에서 발산되거나 스며 나온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태양이라는 중심적 존재를 반향 하는 명확한 시각적 본질이 아니라, 가변적인 허상의 위상을 가진다. 또한 스토이치타는 최초의 유사물이 만들어지게 된 계기를 사랑하는 이의 떠남이라고 지적하는데, 이는 그림자에 근거를 둔 재현의 근본 목적이 기억을 되살리기 위한 대체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정경희의 작품에 나타난 바처럼, 그림자는 부재중인 것을 현존하는 것으로 만들기 위한 기억의 보조물이다. 원시시대부터 그림자는 계속 사람의 영혼을 담은 복제물로 여겨졌다고 한다. 동물들과의 비유를 넘어, 어린 시절의 사진을 활용한 작품에서 그림자와 영혼, 혹은 정체성의 관계는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림자로 나타나는 유사물은 사람의 흔적을 나타내지만 구체적인 특징들을 지움으로서, 개인의 특수성이 아니라 일반성에 다가간다. 자아의 환상이 투사된 산물로서의 그림자는 기이한 왜곡상을 통해 그 타자성otherness을 드러낸다. 여기에서 그림자는 사람이 감추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거울의 반영상과 그림자의 반사상은 구별된다. [그림자의 짧은 역사]의 저자는 거울이 자아라는 동일자를 확인하는 재현적 상황을 의미한다면, 그림자는 타자를 확인하는 것과 관계된다고 지적한다. 이미지/그림자는 자신에 대한 것이 아니라 타자에 대한 유사성이며, 미메시스가 아니라 닮아 보이는 것 만들기 혹은 시뮬라크라이다. 그림자 형상을 기본으로 하는 정경희의 작품은 거울 속에서 비춰지는 통일적인 형태가 부재하다. 그것은 명료한 형태가 드러나는 순간에도 위장한다. 최근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얼룩말 패턴은 이전에 잠자리 날개나 나뭇가지 등이 뻗어있던 초식동물의 뿔을 대신 차지한다. 자기 보호를 위해 주변 환경을 흉내 내는 의태mimicry라는 형식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정적인 의미든 아니든, 주체의 한계성을 벗어나는 경향을 말한다. 여기에서 정신분열증이라는 병적 증후와 상상력의 확장이라는 긍정적 징후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다.

인류학자 R. 카이와에 의하면 의태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는 수동적인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주변과의 경계 짓기를 포기하는 것인데, 정체성을 비롯한 자기 소유를 거부하는 이러한 포기는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예술이라는 것 자체가 자기 보존과 생존이라는 단순한 기능을 넘어서 사치와 잉여의 과정에 흠뻑 빠져 있는 존재방식을 가진다. 카유와나 라캉의 이론에서 의태는 거울과 연결된다. 그러나 정경희의 작품에 그림자와 연결된 의태적 요소는, 동일자를 벗어나 타자로 향한다는 점에서 현대 심리학의 가설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주변을 시뮬레이션 하는 패턴 뿐 아니라, 중심에서 벗어난 구도 더 많은 여백, 주체가 아닌 타자의 응시에 양도하는 따위의 요소도 그러하다. 작가 자신의 기억에 관련된 작품들이 변모와 변신, 그리고 그림자놀이로 가득 채워져 있는 정경희의 작업은 일관된 정체성이나 협소한 자아를 넘어 타자로의 확장을 예시하고 있다.
출전 | 2008 고양 스튜디오 어드바이징 프로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