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화 전
9.2 - 9.20 인사갤러리
조정화의 전시에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들이 많이 등장한다. 작품의 원천이 되었던 2차원적 이미지를 현실공간으로 이끌어내는 세심한 방법론은, 스타들을 단순히 작품 소재로 대상화 했다기보다는 작가 자신이 이미 그들에게 깊이 매료된 상태를 알려준다. 작가는 유명 가수나 배우를 작품화하기 위해 뮤직 비디오와 영화를 반복해서 본다. 작품의 이미지들은 사진이나 영상으로부터 취해오지만, 한명의 스타가 매체에 드러나는 방식은 여러 가지다. 가령 작품 [비]는 ‘화장품 광고 포스터, 드라마 속의 모습, 음악 앨범, 게임에 등장하는 기사의 모습, 의류 광고 속 모습 등’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인물은 명확한 자기 동일성을 가지기보다는 종잡을 수 없는 분신처럼 떠돌아다닌다. 작품 [마랄린 먼로]에서처럼 스타에 대한 애정에 원래보다 더 예쁘게 표현하기도 했지만, 작가는 곧 후회한다. 작품 [신데렐라]처럼 동화 속 인물의 경우, 여러 미녀 배우들을 섞어 놓았다.

신데렐라는 신데렐라처럼 보이는 허구의 중심을 향해 수렴되는, 누군가와 조금씩 닮았지만 특정할 수 없는 실체로 구축된다. 매체를 통해 가공된 모습으로 전달되는 스타들은 자연인이자 개인일 수 있지만, 그 이미지를 수신하거나 소비하는 대중에게는 궁극적으로 허구적인 것이다. 작가는 이러한 허구로부터 출발하여 그들을 또 다른 실체로 만든다. 흙으로 형상화하고 실리콘과 석고 작업을 거쳐 플라스틱 재료를 채워 완성된 작품은 밀랍인형처럼 정교하지만, 작품 소재이자 대상의 허구적 차원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납작하게 형상화 되어 있는 작품은 부조가 가지는 반쯤은 회화적인 환영이 부재하다. 대개의 작품이 배경이 아니라, 뒷면이 있다. 실물과 똑같이 채색되어 있으며, 앞과 뒤가 있는 납작한 형식은 벽과 조명으로부터 자유롭지만, 통상적인 조각 작품처럼 자체의 안정된 무게 중심이 부재하다. 그것들은 마치 입간판처럼 서서 관객을 맞는다. 그들은 보여 지는 대상이면서도 관객과 시선을 맞춘다.
동양이나 서양의 고전에서 발췌한 인물들은 성격에 따라 자개 상 같은 것을 배경으로 하여 완전한 부조를 만들기도 한다. 작품 [앵그르의 그랑드 오달리스크]는 고전으로부터 인용한 여성 누드 뒤편에 기암괴석과 학이 노니는 자개 상을 배경으로 하여 원래 작품에 내재된 오리엔탈리즘을 극대화시킨다. 그것은 인물을 해석하는 방식이 명화에도 적용된 경우이다. 오브제를 활용하여 부조로 제작된 작품 외의 대부분이 붕어빵처럼 납작한 상태이다. 그것은 입체경을 쓰고 본 회화 같은 느낌이지만, 결국은 관객이 앞과 뒤, 옆을 확인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환영은 곧 깨지고 만다. 양면 입간판 같은 방식은 작품 소재의 인물들이 태어났던 허구적 공간을 강조한다. 작품에서의 착시 효과는 순간적인 시공간에 한정될 뿐이다. 더 완벽한 재현을 위해 매체들이 더욱 얇아지는 기술적 추세가 있지만, 조정화의 납작한 피조물들은 실재와 닮아있으면서도, 개체의 확고한 실체를 지원해주는 조형예술의 환영적 장치를 피해간다. 그것은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데, 회화와 조각은 각각의 방식대로 실재를 재현하는 장치들을 마련해 왔던 것이다.
가령 만화 주인공을 작품화하는데 겪었던 작가의 어려움은 해부학을 바탕으로 인체 조형을 훈련해왔던 조각가로서 입장이 드러난다. 조정화의 작품에서 실재에 대한 어떤 이상적 원형에 근거를 두는 재현이 아니라, 허상simulacre의 특징이 강하게 드러나는 때는 납작한 조각의 양면을 다르게 처리한 작품에서 이다. 작품 [walking model-원피스 시리즈]에서는 유명 디자이너의 화려한 의상으로 치장된 모델의 앞뒷면의 외양이 다르다. 앞과 뒤의 이미지는 실루엣만 공유된다. 의상이 다를 뿐 아니라, 양면의 인물이 동일인인지도 확증되지 않는다. 작품 [모택동-양면 얼굴]에서도 중국인들의 우상인 그의 잘 알려진 한 가지 표정 뒷면에 웃는 모습을 담았으며, 작품 [마이클잭슨-빌리진-블랙&화이트]에서는 앞면을 백인의 모습으로 뒷면은 흑인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마치 가면 속 얼굴은 없고, 끝없는 가면들의 출현을 예시하는 듯한 그것은 뒤가 아니라, 또 다른 앞을 제시하는 가상의 유희인 것이다. 이러한 가상성은 플라톤적 이데아로부터 탄생한 재현의 논리를 비켜나감으로서, 리얼리즘에 내재된 관념성을 거부하고 탈 중심화 된 실재로 회귀하는 더 많은 원환들을 파생시킨다.
출전_계간조각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