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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 잡생각이 풀어내는 의미의 다발

고충환

박소영 / 잡생각이 풀어내는 의미의 다발



신부가 벽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왜 벽속으로 들어갔을까. 부끄러워서? 아마도 그녀가 본성적으로 부끄러워하고 다소곳하고 우호적이고 여성스럽다는 생각은 가부장적 생각의 착각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부끄러워서 벽속으로 들어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사라지고 싶어서? 숨고 싶어서? 실체 없음을 온몸으로 증명하고 싶어서? 그녀는 잡생각이 많다. 그녀의 신분이 그녀로부터 신부로 바뀌는 순간 그녀의 실체도 실체 있음으로부터 실체 없음으로 바뀐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녀의 생각은 순수하게 그녀 자신에 속한 생각이라기보다는 다분히 사회의 생각이며 타자의 생각이며 관습의 생각이다.

이렇게 그녀는 벽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므로 이제 그녀는 없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생각 한 자락을 남겨놓았다. 바비인형의 몸체에 모조 잎으로 만든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생각의 한 자락은 꺾어진 날개를 달고 있다. 그녀는 날고 싶었다. 그녀가 신부가 되면 실제로 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신분이 그녀로부터 신부로 바뀌는 순간 그녀의 생각은 착각이었음이 드러났다. 꺾어진 날개는 생각이 착각으로 변질되고 돌변한 순간을 침묵으로서 증언해주고 있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와 관습은 이처럼 그녀와 그녀의 생각을 분리시켜놓았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온전한 그녀가 아닌 분열된 그녀를 통해서만, 그녀가 남겨놓은 생각 한 자락을 통해서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녀의 생각과 그녀가 일치한다고 확신할 수도 확인할 방법도 없다. 그녀는 이미 벽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므로. 실체가 없어져버렸으므로. 이렇듯 실체가 없어진 그녀는 실체 없이 산다는 것, 다만 분분한 생각만으로 산다는 것(존재한다는 것), 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그녀는 없다. 그녀는 오로지 생각만으로 오롯하다. 원래 생각은 정박되지가 않고 분분하다. 그래서 그녀는 혹 그녀도 신부도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실체 없는 몸으로 실체하는 생각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박소영은 원래 잡생각이 많았고, 그 잡생각은 그녀의 조각의 무기였고 작업의 도구였다. 이를테면 시도 때도 없이 못질하느라 딱딱하게 굳은살이 박인 망치의 머리를 거즈로 감싼다거나, 거듭된 가위질로 무뎌진 가위의 몸을 치유하고 위로한다. 하얗고 공허한 덩어리로 사람들이 저마다 지고 사는 삶의 무게를 표상했고, 하얗고 공허한 덩어리로 사람들이 자연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착각을 표상했다. 그리고 때로는 착각이 생각만큼이나 혹은 그 보다 더 소중할 수도 있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이 일련의 작업들에서 생각은 실체와 비교되고 대립된다. 실체가 의미가 정박되는 곳을 향한다면, 생각은 더욱이 잡생각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정상적이고 관습적이고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어디에도 정박되지가 않는다. 그리고 그 각 정박지는 의미가 고정되고 세팅되는 결정적인 장소로서보다는 의미가 변질되고 미끄러지는, 다른 의미들을 불러들여 덧붙여지고 부풀려지는 비결정적이고 탈결정적인 장소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잡생각은 생리적으로 살을 발라낸 앙상한 의미보다는 이질적이고 차이 나는 다른 의미들을 내포한 공허하고 어눌하고 생뚱맞아 보이는 의미의 다발에 가깝다. 꽃불 난 집(숭례문), 유기체처럼 허물거리는 별, 모조 잎을 덧입은 계란 같기도 하고 조약돌 같기도 한 작고 아기자기한 형상들 속에서 잡생각이 잡다한 의미의 다발을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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