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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계의 가짜와 허위의식, 미술계가 키운다

윤범모

미술계의 가짜와 허위의식, 미술계가 키운다
윤범모(미술평론가, 경원대 교수)
 

(1) 과열 미술시장과 희한한 사건의 연속
가짜, 가짜가 판을 치는 세상이다. 거기다 사기(詐欺)는 무엇인가. 허위의식이 난무하는 예술계,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가짜가 판을 치는 미술계, 우리를 참담하게 한다. 2007년은 미술의 해였다. 아니 상처투성이인 미술 사건의 해였다. 그렇지 않아도 과열현상의 미술시장이 국민적 관심 속에서 기록을 수시로 갱신하던 판이었다. 거기에 기상천외 사건까지 속출하며 나라안팎을 시끄럽게 했다. 시장이 넓어지니까 자동적으로 생기게 되는 부작용인가. 웬 가짜들은 그렇게 많은지, 평소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언론을 달구고 있다. 허위의식이 넘쳐나는 미술동네, 그 슬픈 동네의 이야기를 정리함은 바람직한 내일을 위한 정지작업이기도 하리라.
미술시장의 활성화, 아니 갑작스런 비만증은 건강문제를 염려하게 한다. 한 통계에 의하면, 2007년의 경우 미술품 유통량은 약 4천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한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피면 미술시장의 점유율은 경매 58%로 약 2천억원대, 공공미술 23%의 8백억원대, 아트페어 7%의 2백45억원대, 아트 펀드 6%의 2백억원대, 미술관 및 정부 구입 6%의 2백억원대이다(최병식 집계). 실로 엄청난 양적 팽창의 미술시장이다. 불과 몇 년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숫자에 의한 기록갱신의 대행진이다. 10여 년전 국내 대표화랑의 연간 목표 매출액이 ‘겨우’ 1백억원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같은 숫자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에 불과하다. 서울옥션의 경우 이제는 단 하루에 3백억원 이상의 낙찰총액을 올리기도 한다. 미술시장에서의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유영국, 천경자, 이대원, 백남준, 이우환, 김종학 같은 인기작가의 작품은 글자 그대로 보증수표로 인기가 날로 치솟고 있다. 그들 가운데 몇몇 작가는 이제 ‘재고’가 없어 거래가 중단될 지경에 이르렀다. 그뿐만이 아니다. 블루칩 작가대열에는 일부 청년작가들까지 가세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그림 값’의 행진에 연일 기록을 바꾸고 있다. 예술작품이 투자 대상의 인기종목으로 부상하다니! 미술시장의 활황은 곧 부작용과 연결된다. 그것의 암적 존재는 위작의 유통이고 더불어 사기행각의 만연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미술계는 좋은 일로만 넘쳐나기 보다 사기사건이나 위작문제로 어둠이 깔리기도 한다. 왜 가짜가 횡행하는가. 왜 사기가 넘쳐나는가. 예술계에 가짜라, 무엇 때문인가.
2007년의 갖가지 부작용은 미술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총체를 거의 다 보여 준 부정(不正)의 종합판 같다. 유족까지 연루된 이중섭 위작사건을 필두로 이중섭과 박수근 관련 대량 위작 사건, 가짜 박사학위 하나로 미술동네를 넘어 ‘단군 이래 최고 수준의 언론을 동원한’ 신정아 사건, 한국미협의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 삼성 비자금 조성과 미술품 구입 사건, 경매사상 최고가격을 보인 박수근의 <빨래터> 진위공방 사건 등 가닥 잡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미술은 동네북이 되어 만신창이가 되었고, 미술품은 고가의 투자 대상으로 전락되었고, 가짜사건이 들끓는 지저분한 동네의 대명사가 되었다. 물론 미술동네에 이런 오명을 씌운 자는 소수의 미꾸라지이다. 하지만 흙탕물을 일으키는 미꾸라지가 자랄 수 있도록 토양을 제공한 것도 미술동네, 때문에 미술동네의 순수성만 두둔할 수도 없는 처지이다.

(2) 작가의 유족까지 연루된 이중섭 위작사건
서울옥션은 이중섭 작품 몇 점을 경매에 올렸다. 하지만 감정 결과 위작이라는 판정은 사건을 확대하게 되었다. 애초 소장자의 신분을 공개하지 않았던 서울옥션은 작품의 소장자가 바로 이중섭의 유족이라고 발표를 했다. 그러면서 일본 거주의 미망인과 아들을 만나 진위 여부를 재확인까지 했다. 유족은 아버지인 이중섭이 50여 년전에 준 진품이라고 주장을 했다. 이 사실을 믿고 경매에 올린 작품은 낙찰되었고 뒤에 사건은 더욱 커지게 되었다. 서울에 온 이중섭의 아들(이태성)은 언론에서 자신의 경매 출품작을 진품이라고 주장을 했다. 이 대목에서 상당수의 사람들은 문제의 작품이 진품일 것으로 믿고 싶어 했다. 아니 20세기 한국 최고의 화가로 칭송을 받는 화가의 명성과 그 유족의 주장을 의심 없이 믿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컸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하지 않았다.
사건은 그동안 미술계에 알려지지 않은 김용수라는 노인에게 연결되었다. 그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그림 2천8백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세기 한국의 최고 화가로 추앙을 받는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을 대량으로 가지고 있다고! 아니, 그것도 수 십 점이 아니고, 수 천점의 작품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품 숫자에 경악을 했다. 그러면서 다량의 유존 작품 가능성 자체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김 노인은 한 방송사와 손을 잡고 이중섭 50주기 기념전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김노인은 이른바 이중섭 그림을 들고 작가의 유족을 찾아 도쿄까지 간 모양이다. 작가의 아들은 김노인의 소장품을 이중섭 진품이라고 인정해주었고, 김노인의 손을 거쳐 유족에게 몇 점의 그림이 건너가게 되었다. 이중섭의 유족은 50주기 기념사업을 위한 자금 마련의 이유로 소장품을 경매에 내놓았다. 결과적으로 이중섭이라는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소장자와 유족 등 관련 인사들끼리 법정 소송 사건으로 확대되어 검찰의 조사가 시작되었다. 문제의 그림에 대한 진위문제가 첨예한 부분으로 사건의 단서로 부상되었다. 오랜 기간 수사를 한 검찰은 드디어 사건의 핵심을 발표, 김노인의 소장품은 모두 위작이라고 판단했다.
위작 근거의 결정적인 단서는 바로 그림에 사용된 재료였다. 예컨대 작가 사후인 1960년대 개발되어 사용하기 시작한 펄 물감이 이들 그림에 사용된 점 등이었다. 오래전에 어린 여학생이 그린 그림까지 위작으로 둔갑되었고, 검찰은 마침 과거 여학생을 추적하여 확인 받는 등 물적 증거를 제시했다. 따라서 검찰은 김용수 노인을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했다. 검찰은 이중섭의 아들 이태성도 공범일 가능성을 갖고 수사를 펼쳤다. 하지만 일본 거주의 유족에 대한 정확한 진술은 확보하지 못했다. 연일 언론에 대서특필된 이중섭 위작사건, 작품 한 점이면 집 한 채 값, 국민적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렇듯 대규모 위작사건에 유족이 연루되다니! 국민은 그만 아연실색할 뿐이었다.
이중섭 박수근 대량 위작사건의 핵심은 우선 대량이라는 점이다. 그동안 위작 사건은 불과 몇 십 점 정도의 안팎에서 맴도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2-3천점이라는 ‘천문학적’ 가치를 유통시키려한 대규모이다. 미술시장의 광역화는 위작 사건의 광역화를 자초하는가. 이중섭이나 박수근의 유존 작품은 불과 천 단위의 반에서 머무는 작가이다. 그들은 결코 1천-2천 단위의 대량 제작 작가가 아니다. 그런데 한 소장가가 2천-3천 단위의 진품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태, 이는 단군 이래 최대의 위작 사건의 하나로 치부될 만한 규모였다.
더불어 이번 사건의 핵 가운데 하나는 위작 사건에 이중섭의 유족이 연루되어 대가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는 점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애초 옥션회사까지 속일 정도로 유족은 김용수 소장품의 세탁에 일조, 그에게 받은 이중섭 위작 몇 점을 서울로 보냈다. 부친인 이중섭으로부터 직접 받아 반세기동안 간직했다던 그림이 가짜라니, 거기에 유족이 연루되어 돈 놀음에 앞장을 서다니! 미술계는 경악, 또 경악을 연발했다. 역시 문제는 돈이다. 미술품이 고가의 ‘상품’이 되다보니 이런 사건까지 발생하는 것이다. 이중섭 위작사건의 핵심은 역시 돈이지만, 크게는 이른바 인기작가의 미술작품을 황금으로 간주하는 사회풍토와 맞물린다. 게다가 미술품 감정이라는 직접적인 문제와도 연결된다.

(3) 미술계 신델레라의 추락, 신정아 사건
‘신델레라’, 한 때는 그렇게 추앙을 받았던 모양이다. 미술계의 신델레라, 그는 미술동네가 좁은 것처럼 활보를 했다. 한마디로 승승장구였다. 그는 명문 예일대의 박사학위 소지자라 했고 미모에다가 욕심도 있었다고 한다.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금호미술관을 거쳐 성곡미술관에서 잘 나가는 큐레이터라 했다. 그는 어느날부터 큐레이터이면서 대학교수라 했다. 겸직이라니! 그것도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교수가 되었다고 전한다.
‘해방 이후 미술계의 최대 스캔들(?)’ 신정아 사건은 시한폭탄처럼 장진되었다가 드디어 폭발했다. 상상밖의 위력으로 미술계를 초토화시키더니 끝내는 대한민국 사회를 쥐고 흔들었다. 미술동네의 발신으로 한 개인의 경우, 신정아는 그야말로 단군 이래 최대의 사건 주인공으로 등극을 했다. 신정아 사건의 메뉴는 예일대 박사의 가짜학위, 동국대 교수 임용,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임, 성곡미술관 관련 비리 등으로 차려졌다. 여기에 조계종 승려들과 성곡미술관 박문순 관장이 조연으로 등장했으며, 청와대의 실세라는 변양균이 공동 주연급의 역할을 맡아 사건의 내용은 거의 폭발적이었다. 그러니까 신정아사건은 ‘아름답다는 미술’을 매개로 하여, 미술관 큐레이터, 외국 박사, 대학 교수, 스님, 돈, 권력 그리고 사랑(?)까지 골고루 범벅이 된 한편의 드라마였다. 이처럼 흥미진진한 드라마가 있을까. 때문인지 언론은 과도할 정도로 이 사건에 매달렸으며, 사실 국민적 관심도 매우 높았다. 신정아는 ‘스타답게’ 언론으로부터 패션까지 분석의 대상이 되었는가 하면 한편으로 누드 사진 공개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거기다가 섹스 스캔들로 비화되는가 하면 권력을 등에 업고 국가예산까지 연결되는 쪽으로 활동영역을 확대시켰다. 확인되지 않은 갖가지의 유언비어와 함께 이러저러한 뉴스는 장안을 온통 신정아 바람으로 물들게 했다. 여자와 돈과 권력 그리고 종교와 예술, 이렇게 호화스런 메뉴의 드라마가 일찍이 어디에 있었던가.
2005년 9월 신정아가 동국대에 낙하산을 타고 교수로 특채되면서 사건의 잠재적 폭발력은 본격적으로 키워지기 시작했다. 대학 당국은 신정아를 대학원 미술사학과로 임용하고자 학과에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불교미술사와 한국미술사 중심의 학과 특성상 서양현대미술사를 전공했다는 신정아에게 줄 강의 교과목은 없었다. ‘재정적 도움’을 가지고 올 인물이라는 총장의 설득으로 조건부 채용으로 결론을 맺었지만, 우여곡절 끝에 신정아는 미술 전공학과와 거리가 먼 부서에 임용되었고, ‘놀랍게도’ 기왕에 다니던 직장인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직을 겸직했다. 대학교수가 사립 기관에 겸직하는 사태는 보통의 ‘특혜’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직함을 ‘동국대 교수/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이라고 당당하게 겸직을 밝혀, 미술계의 뜻 있는 인사들을 놀라게도 했다. 역시 과욕은 사건을 키워나갔다. 가짜 예일대 박사사건은 우리 사회의 학벌중심주의, 일류병, 외국 박사 우선주의 등 사회문제를 그대로 보여준 씁쓸한 ‘교훈’을 남기었다. 그렇지만 가짜라도 일류대학의 가짜 학위는 위력을 과시했다.
‘예일대 박사’ 신정아는 초고속 성장을 하면서 미술계의 큰 손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포식의 식도락을 즐겼다. 식단 가운데 하나는 곧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이었다. 신정아의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과정은 광주비엔날레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예술감독 선임을 위한 비엔날레 예술감독 선정소위원회는 원래 2차회의에서 김승덕, 박만우를 후보로 압축했으나 김승덕이 외국인 공동감독 지명권을 달라고 요구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진사퇴해 박만우만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3차 회의에서는 원래 최종 후보로 들어가지도 못한 신정아를 포함한 후보 전원을 한갑수 이사장에게 추천하기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외압설이 강하게 대두되었다. 광주비엔날레는 예술감독 선정과정에서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를 밟았다고 볼 수 없게 했다. 결국 광주비엔날레는 학위를 속인 신정아를 당국에 고발했고 재단 이사들은 전원 사퇴를 했다. 광주비엔날레는 국내 최고의 국제 미술전으로 국민적 관심사의 격년제 미술행사이다. 이렇듯 대규모 미술행사의 예술감독을 경력도 미흡한 젊은 여성에게 맡긴 과정이 명쾌하지 않았다. 광주비엔날레는 병들어 있었고, 이번 신정아 사태는 이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계기이기도 했다.
신정아사건의 절정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뇌물수수 혐의에 의한 구속 수감이었다. 변양균은 요직을 거치면서 권력의 실세이면서 신정아의 비호세력으로 편의를 제공했다. 그러니까 신정아는 변양균의 비호로 ‘미술계의 큰손으로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타 신정아’를 키운 것은 물론 미술계이다. 가짜이건 허위의식이건 모든 문제들 역시 미술계에서 키운다. 이에 미술계의 자정운동을 촉구하게 한다. 이 부분에서 언론의 협조가 요청된다. 신정아 신데렐라의 행진에는 언론의 미뤄주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비엔날레와 더불어 미술을 다루는 일간지와 월간 전문지 등 미술저널들은 이번 사태의 배후로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신정아 파문은 수십여 년간 화랑가와 미술관에서 물어다주는 관급 정보에 사실상 일방적으로 기대어 유착관계를 형성해온 언론계 미술저널의 무기력증을 공론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두 진실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신정아씨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일개 큐레이터인 자신이 명절 때 기자들에게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고, 고향 청송에서 직접 과일 등을 배송해 선물을 준비했다고 밝힌 부분은 미술과 언론의 부적절한 유착이 빚어내는 그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주요 중앙일간지들은 2000년 이래로 엄청난 분량의 신정아씨 관련 기사를 실었고, 칼럼 필자를 맡긴 것은 물론, 가짜 박사학위 취득을 축하하는 기사까지 실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은 <문화일보>의 신정아 누드 사진 게재 소동에서 보이듯 이 부분에 대해 성찰과 반성보다는 신씨의 행적과 문제점에 대한 선정적이고 공격적인 보도에 집중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종합일간지 가운데 신정아씨에 대한 온전한 평가와 검증이 부족했다고 반성하는 기사를 올린 곳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미술계의 인맥·학맥 구도와 연결돼 있는 미술 월간지도 눈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월간미술]의 경우 2003년 자사가 주최한 월간미술 전시기획 분야 대상을 신정아씨에게 주었다. 이 상은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에 신씨를 추천한 이종상씨가 기금을 출연한 상이다. 그가 신씨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계기로 알려진 이 월간미술 대상은, 상을 받은 전시가 사실상 해외에서 국내로 수입한 디자인 기획전이라는 점에서 심사 기준 등에 대한 의문을 낳은 바 있다. 그러나 [월간미술] 쪽은 당시 수상 과정에 대해 현재까지 일체 함구하고 있다.” (노형석, <추악한 미술판을 뭘로 덮을 것인가>, [한겨레 21], 2007, 10, 4)

(4) 삼성그룹 비자금과 미술품 구입 사건
<삼성 홍라희씨 등 4명 비자금 빼돌려 600억 미술품 구입>, 이같은 제목의 기사는 우리를 놀라게 했다. 이른바 삼섬 비자금 조성과 더불어 미술품 구입문제는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재벌의 미술품 투자,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선 삼성에서 거액을 받으며 삼성가족으로 일을 하다 삼성 사건에 불을 지핀 김용철 변호사의 기자회견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2002~2003년에 이건희 회장 부인인 홍라희씨 등이 600억원대의 고가 미술품을 구입했고, 구입 대금은 구조본 재무팀이 관리하는 비자금에서 지급됐다. 미술품 구입을 주도한 사람은 홍씨와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이재용씨의 장모인 박현주씨,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부인인 신연균씨 등 4명이다. 홍씨 등이 구입한 작품은 고가의 미술품이다. 목록을 보면 프랭크 스텔라의 <베들레헴 병원>과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 등이 포함돼 있다. <베들레헴 병원>은 800만 달러(당시 환율로 100억원대), <행복한 눈물>은 716만달러에 산 것이다. 이밖에 바넷 뉴먼, 도널드 저드, 에드 루샤 등 미국 추상파 작가들과 독일 작가 리히터의 작품 등 대부분이 100만달러 이상의 고가 작품들이다. 2002~2003년 구입한 작품만 30여점, 600억원어치이며 이중 3분의 2 이상이 홍라희씨가 구입한 ‘물건’이다. 홍씨는 한 번 그림을 사면 되팔지 않았지만 이명희씨가 산 것은 경매소 등에 나오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의 아들 재용씨로부터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이 이회장 집에 걸려 있다는 말을 들었다. 홍라희씨는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 재무팀 관재파트에 연락해 미술품 구입 대금을서미갤러리(대표 홍송원) 등에 지급하도록 요청했다. 삼성그룹 비자금 관리담당인 재무팀 관재파트에서는 서미갤러리로 ‘비자금 미술품 대금’을 보냈다.”
우리 미술계에 끼치는 삼성의 영향력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막강하다. 미술계를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인사의 집계에서 삼성미술관의 홍라희관장은 매년 1위를 차지한 사실만 보더라도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삼성그룹은 국내의 어떤 기업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의 미술 관련 사업을 의욕적으로 펼치고 있다. 직영하는 미술관의 숫자나 그 규모 특히 대량의 소장품은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그런 삼성에서 비자금을 조성했고 그 돈으로 미술품을 구입했다 하여 검찰 조사를 받았다. 불행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의 비자금 조성 부분은 불법이니, 이 자리에서 더 이상의 언급은 삼가려 한다. 하지만 삼성의 비자금과 관련하여 언론보도를 보면 지나칠 정도로 미술품이 동네 북이 되어 얻어맞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다. 미술품 구입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 국제무대의 미술계에서 한국인 큰 손의 존재는 그만큼 한국미술의 국제화에 끼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다. 외국 작품을 우리가 구입을 해야 외국도 한국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비자금 사태로 미술시장을 얼어붙게 하거나 혹은 미술활동을 위축시키는 불상사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삼성의 미술계 기여도는 웬만큼 예찬을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등주의 삼성,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명예를 제고시키는 삼성, 이제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할 시간도 필요하지 않나 여겨진다. 이 대목에서 나희덕 시인의 <삼성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글을 인용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한다.
“삼성그룹이 가입자의 보험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하고 그 일부로 그림을 구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행복한 눈물>은 불운하다. 이 그림의 주인이 삼성가냐 아니냐를 떠나서라도 삼성이 호암미술관을 개관한 이래 삼성미술관 ‘리움’ 등을 운영하면서 미술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림이 예술작품으로서가 아니라 재벌의 투기와 탈세, 불법 상속의 대상으로 변모해 버린 현실을 바라보며 새삼 예술의 가치와 존재방식을 되묻게 된다.
문화기업을 자처해 온 삼성한테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2003년 교통사고로 타계한 조각가 구본주의 유족에게 삼성화재가 제기한 손해배상 항소사건이다. 당시 삼성화재는 여러 차례 개인전과 초대전을 가진 젊은 조각가의 죽음을 자살로 몰아가면서 예술경력을 인정할 수 없으며 배상기준을 무직자에게나 적용하는 도시 일용노임으로 하고 정년을 60살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예술계가 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싸웠던 것은 단지 한 개인의 보상금 때문이 아니었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라면 예술인의 창조적 능력이나 가능성 따위는 짓밟아 버리는 기업의 횡포에 맞서 예술도 사회적 노동으로서 정당하게 존중되어야 함을 밝혀야 했던 것이다. 한 손으로는 비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해 세금도 내지 않는 막대한 거래차액을 챙기면서, 다른 한 손으로는 보험 배상금을 줄이려고 예술가의 죽음을 향해 모욕에 가까운 흥정을 벌이는 삼성의 이중성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가 바로 구본주 손해배상 항소사건이었다. 결국 삼성화재 쪽이 원심 판결을 따르기로 합의해 소송은 종결되었지만, 그 뒤에도 삼성의 개입으로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방영이 연기되는 등 마찰이 적지 않았다.
<행복한 눈물>을 둘러싼 의혹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관심의 초점은 온통 그림 한 점에 쏠려 있지만, 에버랜드 창고에 보관되어 있는 수만 점의 미술품을 어떤 자금과 경로로 소장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이라도 삼성은 그동안 예술을 매개로 재산을 어떻게 숨기고 부당하게 증식했는지를 스스로 밝혀야 한다.” ([한겨레신문], 2008, 2, 4)

`(5) 미협 주최의 미술대전 심사비리 사건
한국미술협회 주최의 대한민국미술대전, 이 복마전의 공모전은 또 다시 사건을 저질렀다. 몇 년전 심사 부정으로 미술계에 오물을 뒤집어씌우더니 그 버릇 아직도 고치지 못한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대한민국미술대전에 돈을 받고 입상시켜 준 혐의(업무방해 등)로 미협 문인화분과위원회 전 위원장 김무호(54)와 부위원장 김영삼(48)을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제25회 미술대전 심사에 앞서 11명의 심사위원 중 8명을 모텔로 불러 수 백장의 문인화 사진을 외우게 한 뒤 심사장에서 뽑도록 했다. 조사결과 김무호는 화가 2명으로부터 3천여 만원을, 김영삼은 화가 1명으로부터 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미술대전 입선 대가로 제자들로부터 3천여만원을 받아 이중 2천만원을 김무호에게 건넨 최 모도 불구속 입건하는 한편 모텔에서 합숙하며 부정을 저지른 심사위원 등 관련자 11명을 벌금형에 약식기소했다.
참, 희한한 사건이다. 심사위원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출품작 사진을 보이며 외우게 했다니! 이런 부정을 저지른 미협 간부들이 한심하고, 또 이같은 부정에 동참한 심사위원들도 한심하다. 그들은 밖에 나가서 작가라며 어깨에 힘을 주었을 것이다. 심사전 합숙이라는 범죄의 구성내용도 대담하다. 미협은 또 다시 불명예를 안고, 사회적 지탄을 자초했다. 당연한 수순으로 미술대전의 비리는 대통령상 명칭 사용 등 정부 포상의 중단과 더불어 문예진흥기금 지원도 중단됐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제36차 정기회의에서 미술대전 운영 지원 예산으로 책정됐던 문예진흥기금 8천만원을 지원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술협회의 대한민국 미술대전은 왜 그렇게 말썽의 온실인가. 잠잠하다 싶으면 사건을 다시 만드는 곳, 언제까지 반복하면서 미술계를 욕보일 셈인가.
미협은 지난 2001년의 미술대전 심사비리와 관련하여 얼마나 호된 비판을 받았던가. 25명의 이른바 미술인들이 심사부정으로 불구속 입건된 사건 말이다. 미술대전은 범죄의 온상인가. 당시도 부정의 모태는 문인화 분야였다. 문인화라면, 그야말로 세속적 때를 외면하고 고고한 선비의 세계를 지향해야 할 곳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문인화를 그리겠다는 ‘사이비 문인화가들’이 돈을 주고 상을 사고, 또 돈을 받고 상을 주었다는 말인가. 문인화가 불쌍하다. 아니 조선시대식의 문인계층이 사라진 민주시대에 문인화라는 구식 장르를 별도로 설치한 것부터 한심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문인정신의 실종은 곧 공모전에서 부정으로 상을 매매하게 한다. 미술대전 문인화 분과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말썽이 일자 미술협회는 미술대전의 혁신안을 마련했다면서 시행한 것이 겨우 권력에의 의지였다. 부작용 때문에 폐기된 ‘대통령상’ 명칭을 부활시킨 것이다. 미술대전의 권위 추락을 겨우 대통령 이름으로 회복을 도모했으니, 예술의 이름으로 자원할 사안은 아니었다. 개혁안이라는 것이 겨우 권력에 기대는 수준이니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미협 이사장 선거철만 되면 몇 십억원을 뿌리니, 어쩌니 하면서 금전 난무 소문이 무성했다. 왜 그런가. 본격적 작가인지 알 수도 없는 사람들의 출마로부터, 미협은 과연 대한민국 미술인의 대표성을 갖는 기구인가. 나는 흔쾌히 찬성할 수 없다. 작가활동이 활발한 작가들일수록 미협 참여의 저조 현상만 보아도 이 점을 입증할 수 있다. 미협은 근본적인 수술을 요하고 있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매년 치루는 미술대전, 과연 바람직한가. 공모전 시대도 한물 간 것이어늘, 심사부정은 왜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가. 나는 오래전부터 미협의 미술대전 폐지를 주장해 왔다. 더 이상의 대안은 없다. 미술계에 기여도도 없는 미술대전, 무엇 때문에 매년 개최해야 하는가. 미술대전이 없으면 미협 자체가 존재할 수 없을 정도인가.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미협은 대오각성하여 미술대전의 폐지 선언에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미술대전의 폐지만이 미술계에 대한 최소한의 속죄의 길일 것이다. 범죄와 비리의 온상을 언제까지 끌고 갈 것인가. 미술대전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이미 <근조(謹弔), 대한민국미술대전>이라는 조사(弔詞)를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으므로 더 이상 반복하지 않으려 한다. 단 한 가지만 강조한다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나는 그동안 미술평단의 말석을 차지하면서 여러 종류의 심사에 참여한 바 있다. 심지어 지방의 어린이미술대전 심사까지 참여한 바 있다. 하지만 내가 참여를 거부한 단 하나의 미술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름도 거창한 대한민국 미술대전이다. 나는 지금과 같은 방식의 전시공학이 이어지는 한 이 공모전에의 심사참여를 계속 거부할 작정이다. 물론 폐지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지만. (졸저, [한국미술에 삼가 고함], 현암사, 참조)

(6) 박수근 <빨래터> 진위공방과 감정기구의 문제
서울옥션의 2007년 5월 경매에서 박수근의 유화작품 <빨래터>가 국내 경매사상 최고가격인 45억2천만원에 낙찰되어 언론의 조명을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아트레이드] 창간호는 박수근의 <빨래터>를 두고 ‘짝퉁’ 의혹을 제기하여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이끌었다. 이에 대하여 서울옥션측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에 재감정을 의뢰했고, 2008년 1월 9일 동 연구소는 문제의 작품을 진품으로 감정했다. 아무리 특별감정단을 구성하여 감정을 진행했다지만 법정으로까지 비화된 <빨래터> 사건은 명쾌하게 종결되지 않아 아쉽게 했다. 무엇보다 문제의 제기 당사자인 [아트레이드]측은 감정 기구의 공정성을 들어 재감정을 요구했다. 한마디로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감정 결과에 대하여 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연구소의 출범 당시 참여했던 나의 심경 또한 착잡했다. 현재 전문가 케이스 감정위원이었던 최명윤, 정준모, 윤범모 등은 이 감정단체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문제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화상중심으로 감정업무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감정위원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시절이다. 이 말은 감정위원이 실명으로 자신의 견해를 공개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사안의 중요성에 비하여 이번 <빨래터> 감정의 경우, 역시 감정에 참여한 감정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않아 의혹을 말끔히 씻어주지 못했다. 무엇이 두려워 감정위원 명단을 공개하지 못하는가. 전문가적 소신으로 감정에 참여했다면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못할 이유도 없다. 한국미술품 감정문화, 무엇이 문제인가.
미술품 감정과 관련하여 가장 커다란 문제점은 무엇보다 감정 전문가의 극소수라는 점이다. 감정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기관도 부재하거니와 지망자도 드물다. 감정가는 1-2년의 짧은 기간에 양성되는 것도 아니고, 최소 10년 내지 20년 이상 관련 분야에서 전문적으로 수학해야 감정능력이 배양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미술품 감정가의 양성은 어려운 일이다.
전문가의 희소성과 더불어 커다란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미술품 감정기구의 운영주체 관련사항이다. 1980년대부터 고미술품과 현대미술품의 감정을 시행하는 곳은 한국고미술협회와 한국화랑협회였다. 근현대미술의 경우, 지난 2002년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가 출범하여 한국화랑협회와 쌍립을 이루며 경쟁을 해왔다. 하지만 감정위원 숫자의 극소수, 감정 의뢰작품 숫자의 희소성, 감정 결과의 견해 차이 등 불리한 여건을 체험하고 2007년 벽두부터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연구소의 통합 운영을 시행해 오고 있다. 하지만 이들 감정기구의 운영 주체는 바로 화상들이다. 화상은 작품을 매매하는 것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다. 그들 가운데 몇 명은 뛰어난 감식안의 소유자도 있어 감정회의를 주도하기도 한다. 하지만 화상은 태생적으로 작품 매매의 이해당사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성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게 된다. 이에 작품 매매와 무관한 화상 이외의 전문가 참여가 절실한 형편이다. 아니 감정 현장에서 화상이 아닌 전문가의 주도적인 역할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미술품감정학회의 창설이라든가 과학감정을 위한 미술연구소의 설치가 중요한 부분으로 부상한다.
바람직한 미술품 감정문화의 정착을 위해서는 근현대미술품의 연구기능을 가진 기구의 설립이 절실하다. 국립의 연구소가 설립되어 감정문화 정착을 위한 기초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감정 관련 기초자료의 집대성을 비중있는 업무로 삼아야 한다. 과학적 감정의 토대 구축과도 맞물리는 사안이다. 관련 자료의 집대성과 분석 연구는 감정현장에서 매우 유용할 것이다. 더불어 이같은 사업을 수행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문가가 키워질 것이다. 국립근현대미술품연구소의 설립이 어려우면 일본처럼 문화재연구소 내에 근현대미술 분야를 설치하여 자료의 수집과 분석 등 과학적 감정의 토대 구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현재 문화재청은 근대미술품을 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미술품 감정의 비중이 날로 증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다. 미술품이 고가의 상품으로 부상되는 한 가짜의 행진도 이어질 것이다. 가짜 미술품의 방지는 곧 미술품 감정문화의 정착에서 비롯된다.

(7) 미술계의 중심에서 벗어난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은 어디에 있는가. 그동안 과천의 산골짜기에 숨어 유배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던 바, 근래는 아예 존재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다. 과천의 ‘국립’ 미술관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대중으로부터는 물론 미술계에서 까지 외면을 당하고 있는 미술관의 신세, 이제 불쌍하기 그지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는가. 국립 미술관이 미술계의 중심에 서서 담론을 제공하고 혼란기에는 중심을 잡고 어른노릇을 해야 마땅하거늘 작금의 국립 미술관은, 국내 유일한 국립 미술관임에도 불구하고,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까울 정도다. 그런 와중에 과천발 통신은 의혹과 부정적 소식만 들려 온다. 그 가운데 <여행용 가방>의혹 사건도 포함되어 있다. 이에 대한 언론 보도 내용의 요약은 다음과 같다.

“국립현대미술관이 2005년 구입한 마르셀 뒤샹의 작품 <여행용 가방>(1941)이 ‘드디어’ 도마 위에 올라 안타깝게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뒤샹 작품을 뉴욕의 한 소장가로부터 62만 달러(한화 약 6억원ㆍ보험료, 운송비 포함)에 구입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국제 가격은 6천만~1억원 수준이라며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6억원, 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구입한 미술품 가운데 가장 비싼 작품으로 기록된다. 그런데 말썽을 빗고 있는 것이다.
뒤샹은 생전에 <여행용 가방>을 총 50점을 제작했지만 사후 제작물까지 합하면 300여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여행용 가방>은 현재 국제 미술시장에서 작품성과 제작 시기에 따라 가격이 7개 등급(A~G)으로 나눠 유통되고 있다. A급은 점당 8억~12억원, B급은 3억~6억원, C~E급은 5천만~1억원대다. 감사원은 이 작품의 구입 경로를 비롯해 가격산정 근거, 위작 여부, 소장가와의 뒷거래 의혹 등에 대해 감사 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이 작품의 구입 경로와 가격 산정 등에서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고 입증할 만한 미국 감정기관의 재감정 확인서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미술관 측에 전달한 상태다. 만일 이 작품이 1억원 미만의 C~E급 작품으로 판명 날 경우, 국립현대미술관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정식 세관 통과를 하지 않고 개인이 들고 온 작품을 국가 기관에서 거금을 주고 구입한 배경에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미술계가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다. 미술시장의 활황 덕분에 미술계가 발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는데 문제가 크다. 갑작스런 시장의 활황은 오히려 갖가지의 부작용만 일으키면서 중병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중심의 상실, 이는 오늘 한국미술계가 안고 있는 문제점이다. 혼란 상황을 잠재워줄 원로를 만나기도 어렵고 또 그럴만한 기관도 없다. 이 점이 더 답답하게 하는 오늘의 실정이다. 중심을 잡아 줄 기관으로 단연 으뜸은 국립현대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국내 최대의 미술관련 기관이면서 글자 그대로 ‘국립 미술관’으로 국내 유일의 독점적 존재이다. 국민의 세금을 독점하는 국내 유일의 국립미술관인 것이다. 그런데 이 미술관은 미술계의 중심에서 가닥을 잡아 주기는커녕 오히려 잡음과 안타까움을 유발하는 기관으로 밀리고 있다. 미술계의 중심부로부터 밀려나기 시작함은 물론 이제는 입장객 숫자마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다. 한마디로 국립현대미술관은 미술계의 변방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존재인가. 김윤수 관장 체제의 최대 실책을 들라면 단연 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화이다.
과천 골짜기로 ‘유배’간 국립현대미술관은 태생적으로 ‘책임운영 기관’의 조건과 거리가 멀다. 교통의 불편이라는 불리한 접근성, 소장품과 학예실의 취약성 등 ‘흥행’과 가까워질 조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김관장 체제의 미술관은 책임운영기관 제도를 강행했다. 이것이 최대의 실책이다. 물론 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방식을 바꾸려면 그것에 부합되는 토대 구축이 선결되어야 한다. 그 한 예로 비즈니스 감각과 국제감각을 겸비한 전문 관장의 옹립이다. 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은 책임운영기관으로 운영방식을 바꾸고도 책임운영기관에 걸맞는 전문성 있는 관장을 초빙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책임’ 기관화 이후 미술관 운영을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인가, 정말 궁금하다. 미술관의 꽃, 미술관을 활성화시켜야 할 주체는 학예실인데, 오히려 학예실은 행정부서를 떠받들며 지휘를 받아야 하는 괴이한 구도를 가지고 있다. 학예실의 분위기가 활발할수록 미술관은 살아난다. 그런데 학예실장을 구박하더니, 오히려 비즈니스 감각이 있는 학예실장을 강제 퇴출시키더니, 미술관은 썰렁한 바람만 불고 있다. 칭송받는 기획전 하나 마련하지도 못했고, 그것의 당연한 결과로 입장객의 감소 현상을 자초하고 있다. 학예실의 존재가 미미하니 당연히 뒤샹의 <여행용 가방> 사건과 같은 불상사가 생기는 것이다. <여행용 가방>의 의혹은 책임운영을 하는 국립현대미술관의 현주소인 것이다.

(8) 미술계의 정도(正道)를 위하여
미술계의 가짜와 허위의식은 역시 미술계가 키운다. 미술계의 문제점, 역시 미술계 내부에서 대안을 제시하고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정상적인 지적 자체부터 정상적이지 않음을 우리는 잘 안다. 미술계의 자정능력, 과연 가능한가. 한국미술협회의 미술대전이 심심하면 심사부정을 저지르며 문제를 야기하듯, 스스로의 자정능력에 한계를 넘어섰는지도 모른다. 불행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미술시장의 확대로 인하여 미술계의 문제점은 이제 사회 현상의 하나로 확대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술작품이 거금으로 거래되는 한, 미술계의 부정과 비리는 속출할 것이다. 인기 미술품 한 점이 집 한 채와 맞바꿀 수 있을 정도로 부상되고 있는데, 부작용이 개입할 여지가 없겠는가. 이런 부정적 요소에 작가까지 동참을 하면서 문제의 씨앗을 키우기도 한다. 미술계의 정도(正道)를 위한 길,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미술계는 차라리 자폐증 환자를 선호해야 하는가. 자폐증 환자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자폐증인가, 활성화된 정상적 예술활동인가. 파블로 피카소의 다음과 같은 말에 위안이나 삼을까.
“예술의 관점에서 보면 구체적이거나 추상적인 형식은 없다. 다소 설득력 있는 거짓말 형식들만 있을 뿐이다. 그 거짓말들이 우리의 정신적 자아에 필요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바로 그런 거짓말들을 통해 삶에 대한 미학적 관점을 형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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