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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서문〕이칠재 / 남겨진 것에 대한 순수기억과 이미지

김성호

〔전시서문〕이칠재

남겨진 것에 대한 순수기억과 이미지

 

 

 

김성호(미술평론가)

 

 

 

남겨진 것의 근원 - 순수기억

이칠재의 이번 전시 〈내 고향 화성 이야기〉展은 작가가 태어나서 성장하는 고향 화성에 대한 이야기를 시각적 언어로 풀어보는 전시이다. 넉넉한 고향의 농촌 내음이 향수라는 이름으로 절절하게 그리운 작가의 입장으로서는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옛 모습을 상실해나가는 현재의 모습을 대면하는 현실이 매우 버거운 것 같다. 고향지킴이로서 자신의 고향에 잠입하는 발전적 변모로서의 낯선 형태마저 밉살스러운 것은 옛 것의 파괴가 자행되는 현실을 못내 용납하기가 힘든 탓이다.

 

스스로 토착민으로 규정하는 작가 이칠재의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고향 화성의 모습은 이제 그가 예전의 것들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 속에서 그것에 대한 연민으로 풀어나가는 이야기보따리와 함께 펼쳐진다.

이칠재에게 있어 ‘예전의 것’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적어도 작가가 유년 시절부터 경험했던 과거의 시간 속에 자리한 풍경이자 풍습으로 작가 이칠재가 오늘의 변모된 지형 속에서 자꾸 되뇌며 그리워하는 ‘자신의 기억 속의 것’들이다. 그 기억에는 아버지 세대로부터 전승된 가치의 체계와 전통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 것은 다분히 작가 자신의 기억 속에서 존재하는 몇 십 년 전의 기억으로부터 촉발되고 시작될 뿐이다. 그 이전의 것은 그에게 체득적으로 경험되지 않은 태고의 것일 따름이다. 그래서 그에게 ‘옛 것’은 실존적으로 이칠재의 체험과 경험으로부터 연유되는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쉰다.

 

단절되지 않고 현존의 그에게 끊임없이 불러일으키는 그것은 마치 베르그송이 일깨우는 ‘의식으로서의 기억’(conscience comme mémoire)이며, ‘순수기억’(mémoire purifiée)이다. 과거라는 흘러간 지분이 그에게 현재를 '지속'(durée)하게 하는 연장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과거란 분절 가능한 것이 아닌 생명과 물질의 지속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되는 과거일 따름이다.

 

그 ‘옛 것’이 오늘날 그에게 의미 있는 것은 ‘현실에서는 소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지금 시점에 다가오는 그 무엇’으로 간직되는 탓이다. 가난해도 넉넉한 마음의 자산, 풍요로운 인심, 정겨운 이웃, 어린 시절 상상의 터전이었던 자연과 동네의 풍광 등은 그가 장성해서 미술가로 살면서도 오늘날 여전히 맞닥뜨리는 같은 물리적 공간 속에서 불러오는 과거의 지평이다. 하나의 장소에 각인된 작가만의 고유한 체험적 소산들은 그에게 결코 잊히지 않는 회고의 대상인 셈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전시 〈내 고향 화성 이야기〉展은 그에게 ‘옛 것’ 혹은 ‘기억으로서의 과거’가 촉발시키는 ‘남겨진 것’들에 대한 연민과 추억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것은 많은 부분 소멸되고 지극히 작은 크기로 적은 양으로 남아 있지만 그것이 작가에게 심정적으로 차지하는 크기와 양은 막대한 규모를 감당한다.

 

 

 

 

‘남겨진 것’에 대한 이미지 - ‘내 고향 화성’

작가 이칠재에게 있어 ‘남겨진 것’의 근원이 베르그송 식으로 ‘체험적 기억’인 ‘순수기억’이었다면 ‘남겨진 것’의 시작은 베르그송 식으로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우리가 물병에 든 물을 볼 때 그 실재를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마시기 위한’ 것으로 지각하는 것처럼 우리가 이미지를 지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더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전체 이미지’ 속에서 필요한 부분만 ‘남겨두고’ 필요하지 않는 부분을 빼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지각의 과정은 이미지들의 생존을 도래시킨다. 이런 차원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지’라는 베르그송의 ‘이미지 존재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칠재의 그간 작업을 이해하기 위해 이 말을 거꾸로 해보면 ‘존재는 이미지들의 총체‘임을 알 수 있다. 그에게 ‘내 고향 화성’이라는 존재는 ‘전체 이미지’속에서 필요한 부분만이 ‘남겨진’ 채 다른 부분들을 빼나간 이미지로 다가온다. 즉 이칠재의 체험적 기억, 순수기억으로 남겨진 것으로 ‘화성’에 대한 이미지를 지각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암암리에 상정된 ‘남겨진 것’은 결국 이러한 이미지를 지각하는 주체인 작가 자신이다. 그 스스로 ‘토착민’이라 부르는 ‘남겨진’ 이로서의 스스로에 대한 애착과 연민, 그리고 남겨진 것에 대한 동질감 등이 자신의 고향인 화성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과거의 추억이 남아있는 이미지들과 개발 논리에 의해 휩쓸려 폐허처럼 무너진 현재의 이미지들을 화성 곳곳을 다니며 촬영해 한 쪽 벽면에 비스듬히 한 채 연속적으로 투사하고 있는 도큐멘터리의 영상작업은 남겨진 토착민 작가 이칠재에게 ‘이미지로서 각인된 존재들’이다. 전시장 벽면을 둘러싼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내부에서 연속 두드려 일으키는 소음은 개발에 대한 생경스러움과 저항감이 녹녹히 녹아있는 이미지이고 전시장 초입부터 어지러이 운무하고 있는 스테인리스 철판으로 판형 작업한 물고기들의 유입과 유출은 남겨진 토착민을 교란하며 이주를 반복하는 이방인들의 밉살스러운 이미지가 중첩된다.

 

이칠재에게 있어 ‘남겨진 것에 대한 이미지’는 이번 이미지로부터 출발하는 남겨진 것에 대한 연민과 애착인 것이다.

 

 

 

 

남겨진 것’에 대한 이미지- ‘마음의 선물’과 ‘빙산의 일각’

조각가 이칠재에게 있어 체험적 기억으로서의 ‘순수기억’과 존재의 현현으로서의 ‘이미지’를 통해 ‘남겨진 것’이라는 주제에 집중하고 있는 것은 비단 최근 전시에서만의 일이 아니다. 그의 이전 작업 〈마음의 선물〉시리즈나 최근까지 시도하고 있는 〈빙산의 일각〉시리즈에서도 이러한 ‘남겨진 것’에 대한 관심은 주요하게 적용되어 왔다.

 

주로 전통적 조각의 매스를 통해 이미지를 창출하던 〈마음의 선물〉시리즈는 한 기획전에 출품한 작품에서는 매스의 최대치 안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허(虛)의 공간을 창출한 바 있다. 네거티브의 공간이 주도하는 이 작품은 조각의 최소한의 언어인 입방체를 덜렁 생성하고 마는 미니멀리즘 환원주의적 성향과 자기규정성이라는 모더니즘의 강령을 살짝 배반하고 입방체 속을 주목함으로써 사물성으로 전락하고 말 조각의 위상을 서정적인 내러티브의 장(場)으로 깔끔하게 변환시켰던 작업이다. 즉 ‘마음의 선물’과 같은 이미지 저편의 내러티브를 비어진 공간 안에 침투시켜낸 것이다. 주로 이전의 〈마음의 선물〉시리즈가 조각의 장식적 유형화를 공고히 했다고 한다면 ‘남겨진 것’이란 주제에 관한 한, 이 작품은 분명코 진일보한 변환으로 정초된다.

 

남겨진 것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가 작동하는 시리즈 작품 중 보다 더 이지적인 방식으로 그 조형언어를 탐구한 작업은〈빙산의 일각〉시리즈라 할 것이다.

 

해수면 위에 살짝 올라온 빙산의 일각은 수면 아래로 엄청난 거대 규모의 빙산을 모체로 하고 있다는 과학적 진실을 이미지화하고 있는 이 작업은 표면적으로는 ‘옵티컬한 이미지’의 측면을 조형언어로 탐색하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의 관계항’을 탐구하면서 사회적 현상에 대한 냉소적 비판의식을 병치하고 있는 것이지만 이 작업 역시 ‘남겨진 것’에 대한 관심에 기초하고 있다.

 

표피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소비되고 소통되는 이미지의 현상 속에서 그 모체가 되는 보이지 않은 채 ‘남겨진 것’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사회적 발언이자 조형적 관심인 셈이다. 즉 수면 아래에서 소비되지도 소통되지도 않지만 그 막강한 파워를 지닌 ‘빙산의 몸체라는 남겨진 것’에 대한 ‘실존적 인식에의 경각심 촉구’와 같은 사회적 메시지가 담겨있는 작업이자 이미지의 현상 속에서 소외된 잠재적 실재에 대한 ‘드러냄에의 조형의지’가 실현되는 지점이라 할 것이다.

 

날카로운 사회적 발언이자 따뜻한 서정적 연민이 한 자리에 함께 하고 있는 이칠재의 작업은 앞으로도 이전의 조각 작업들과 최근의 설치적 유형의 작업들이 당분간 병행되는 시점에 서 있다. 향후 그가 본격적인 작업의 지평을 열면서 열정적인 작업을 지속해 나갈 터이지만 어떠한 조형언어로 ‘남겨진 것’들에 대한 관심을 지속할 지는 우리들 판단으로서는 아직 미지수이다. 그 만큼 작업에 시간과 열정을 쏟을 만큼 여유롭지 못한 작가의 부단한 사회적 활동 속에서 생산해낸 작업들이 지극히 과작일 뿐만 아니라 주제에 대한 심층적 깊이로 잠입할 여유를 가질 만큼 사회적 여건이 그에게 결코 녹록치 않은 탓이다.

 

지금까지의 작업에서 보여준 조각가 이칠재의 잠재적 역량이 만개하는 다음 번 전시를 기대해 본다. ●

 

 

출전 /

김성호, '남겨진 것에 대한 순수기억과 이미지', (이칠재-내 고향 화성 이야기전, 2006. 12. 12-21 대안공간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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