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전시비평〕
2006 바깥미술 자라섬 전-25년 그 이후,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 하기”, 2006. 2.11-26, 가평군 자라섬
친환경적 생태미술의 거주지-대중과 유리된 ‘바깥’ 혹은 ‘섬’?
김성호(미술평론가)
권민철, 2005
바깥미술회 25년 그 이전
바깥미술회의 전신인 〈대성리전〉은 1981년 음험한 권력이 민중의 저항을 받기 시작한 혼란한 정국의 틈바구니에서 대성리 화랑포에서 31명의 참여작가들이 주도하여 태동된다.
아틀리에 밖의 집단적 미술운동은 정치에 대한 대항논리로 당시 팽배해 있던 민중미술 운동의 교조적 흐름 외에는 부재했던 상황에서, 주류 미술계에 대항하는 새로운 미술운동의 차원으로 바깥미술회가 출발한 것이다. 80년대, 여전히 강요되는 학원에서의 창작의 지침 아래 수업 받는 미대생들과 이들 밖에서 벌어지는 주류 미술 현장의 공고한 틀과 생생한 행동미술 현장과의 괴리는 심각할 정도로 서로를 이탈하고 맞서고 있었다. 다수가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 대성리 회원들의 꿈에는 주류미술의 암담한 폐쇄 구조에 대해서 반기할 뿐만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기치가 된 민중미술과도 별리하고픈 미술에 대한 순수 열망이 소중할 따름이었다.
“우리의 현장작업은 행위라기보다 ‘짓거리’라고 해둡시다. 언어나 그 밖의 도구를 배제한 자연 속에서 우리들의 신체가 스스로 드러나게 하니까요.”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향수나 문명에 대한 공허한 반항이 아닙니다. 급속히 변모해 가는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 매몰되어 가는 자연을 다시 인식하며, 자연 속에서 ‘삶’ 그 자체의 현실을 감지해 보고 싶을 따름이지요.”
당시 작업에 참여한 한 작가의 진술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더불어 대성리 강변으로 뛰쳐나간 그들의 열망을 곱씹어 보기에 족하다. 위의 발언은 1986년〈대성리전〉을 해체하고 〈바깥미술회〉가 발족하면서 구체화된 자연, 생태미술의 유형 이전의 예술에 대한 다양한 순수 열망을 확인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증언인 셈이다. 그러니까 바깥미술회의 전신인 〈대성리전〉은 ‘관념에서 해방된 집단신체 행위’나 ‘타자와의 상호 유기적 관계회복’에 대한 열망은 물론 ‘원초적 자연에 대한 탐구 및 사물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인 물음’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스펙트럼을 소유한 반 주류 미술이었던 셈이었다.
이것이 겹겹이 흘러가는 시대적 의식의 변모 속에서 ‘바깥미술’의 상징적 공간인 자연 공간이 중시되면서 ‘자연 경험에 따른 미술 실험’의 의미가 증폭되면서 자연 설치적 유형의 작업으로 초점이 모여지게 된 것이다.
85년 4명의 동인으로 이루어진 〈바깥미술동인〉이 태동하고 이들이 흡수되어 1986년, 101명이라는 작가의 놀랄만한 참여와 더불어 겨울〈대성리전〉의 대폭적인 검증작업과 반성적 모색을 통해 〈바깥미술연구회〉가 결성된다. 이들의 운동이 90년대 초반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는데, 특히 92년에는 123명이라는 가장 많은 작가들이 참여하게 되면서 <겨울 대성리전>의 발전적 해체와 더불어 정식으로 <바깥미술회>를 창립하기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와 더불어 활발한 초정강연과 세미나가 열리면서 아틀리에 밖의 거대한 실험적 미술운동으로 정초하게 된지 이제 어언 25년의 역사가 되었다. 특히 2004년 대성리의 화랑포의 개발에 따라 이들 미술운동의 거점이 상실되어 가평군 자라섬이라는 새로운 무대가 등장하게 되는 것은 주요한 국면이다.
2006년에 맞은 이번 바깥미술 25주년은 새로이 쓰기 시작한 자라섬에서의 〈바깥미술회〉 역사의 시발점을 공고히 하는 단계에서 총체적인 그룹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이를 검증하는 매우 의미 있는 전시가 되는 셈이다.
김언경_대지의노래
최성렬_먹기토하기
2006 바깥미술회 25주년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 하기”
이번 전시의 개막식을 찾아 나선 2월의 날씨는 폭설이 내리고 난 며칠 뒤였다. 바람은 황량한 그들의 무대를 휩쓸고 휭휭 귓전을 에이며 지나갔다. 전시를 위해 노심초사 악천후와 맞서 싸운 작가들의 고충을 십분 헤아려봄직한 날씨였다.
자라섬은 인근의 남이섬의 부가적인 지형으로 유용성의 장소로부터 별리되어 온 쓸모없는 땅이었지만 바깥미술회 작가들에 의해서 새로운 예술의 생명을 수혈 받고 있었다.
‘섬, 감추기-드러내기-있게 하기’라는 다소 모더니즘적 사고관에 기대있는 전시의 주제는 상투적인 것임에도 자라섬의 장소적 특정성과 그 곳에서의 미술행위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읽힌다. 특히 육지와 근접한 상태에 위치하고 있는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은 수몰에 의해 섬이 되기도 하고 물이 빠지면서 육지가 되기도 하는 매우 매혹적인 공간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여전히 섬으로 존재하지만 말이다.
경우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감추어진 자연을 미술가들이 참여해서 그 자연 존재를 원래의 드러냄의 위치가 아닌 은폐의 위치로부터 탈은폐의 위치로 드러내는 방식을 상정하고 있는 이번 주제는 다분히 인간 실존의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는 주제로 읽히기도 한다.
“자연 그대로의 본성을 드러내는 일에 과연 미술이 필요할까?” 하는 의아함이나 질문은 그들 스스로 수없이 되풀이되는 자문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들에게 잠자는 상태로 드러나고 있는 자연의 본성을 자신들의 참여 행위로 적극적으로 일깨워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곳곳에 산재한 작업들에 흠뻑 묻어나 있다.
지면 위에 쉬고 있던 돌들의 위치를 강화시키려는 듯 그 아래 파헤쳐진 구덩이에 나무로 다리를 세워 원래의 돌들의 위치를 고정해주기도 하고(문병탁, 겨울잠), 무수한 바람개비를 지면에 설치해서 자라섬 위를 스치고 지나는 보이지 않는 바람들의 자연성을 시각화하기도 한다.(구영경, 바람꽃) 또한 나무의 상단을 절단하여 그 곳에 스테인리스 스틸 판을 부착해서 그 위에 투영되는 하늘의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나무가 바라보며 자라는 생장점의 근원을 뿌리와 대비시키기도 한다.(왕광현, 공존의 숲) 그것은 자연이라는 거대한 무대 속에서 그와 상응하며 자라는 나무라는 소자연의 생태적 관습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자라섬의 무대를 상징적으로 다시 하나의 공간 안에 재현해내는 작업을 통해서 섬의 의미를 묻기도 한다.(김광우, 자라섬). 어떤 이는 얼음판을 깨어내서 그것이 서정적인 내러티브로 변모하는 하나의 네거티브 형상의 배로 만들어내기도 하고(박봉기, 움직이는 거울), 또 어떤 이는 얼음판을 깨어내서 거대한 드로잉을 그려내 보기도 한다.
자연미술은 예측할 수 없는 자연의 기후, 변성 앞에 발가벗고 인간의 무모한 노동력을 투여해서 찾아내는 도전의 미학이지만 그것이 서구에서 근원하는 대지미술 유형의 폭압적인 도전을 지양한다. 얼음판에 그려낸 드로잉이 다시 추워진 기후에 얼어붙거나 더욱 더 풀려진 기온 속에서 소멸해 버리듯이 순응적이고도 친환경적인 도전의 미학을 드러낸다.
물론 참여작품 모두가 이러한 자연의 순응적인 도전의 미학에 충실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이들 그룹이 여태껏 그토록 토론하는 자연미술의 가능성에 대한 끊임없는 자문이자 스스로의 비판들이다. 그럼에도 이들 자연미술, 생태미술의 유형은 자연, 환경 속에서 벌이는 인간의 원초적 예술유희의 욕구가 맞닿는 지점이다.
구영경, 2005
이호상_흔적, 2005
최운영_새롭, 2005
에필로그 -대중은 어디에 있는가?
작가들은 전시 이전, 답사와 더불어 창작시간이 할당된 준비기간 동안 섬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창작을 위한 자신의 개념을 실현할 장소와 그 방법을 모색한다. 문제는 그 감추기와 드러내기 사이에 치열하게 개입하는 작가의 창작의 결실을 그들 스스로 칭찬하고 격려하거나 감상하는 차원 너머로 행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1986년 당시 바깥의 의미처럼 주류에 대항하거나 그들과 차별화하는 아방가르드적 소산에 자족하기에 오늘날 시대의 흐름은 너무 빠르다. 이제 바깥의 의미는 새로운 대안의 의미로 정초되기 보다는 안에서 향유하던 미술의 유형을 바깥으로 가져온 지점에서 새로이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외떨어진 곳, 그것도 추운 겨울에 행해지는 이들의 미술행사가 지역민은 물론이고 이들의 전시를 일부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열성적 관객에게만 환호하고 대다수 관객을 관여시킬 수 없는 불특정 다수로 방치한다면 그들의 오늘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 관객 참여의 위상이 실제적으로 중요한 이들의 전시에 관객참여 활성화에 대한 당면한 의무를 방기한다면 그들의 작업에 공감해야할 다수를 매회 전시마다 부지불식간에 내쫒는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른다. 열려진 섬이 아닌 대중과 유리된 닫힌 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염원하는 소통과 열림의 세계가 관객의 참여 없이는 무모한 자신들만의 잔치로 전락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 같다. ●
정하응_어떤풍경, 2005
출전 /
김성호, '친환경적 생태미술의 거주지-대중과 유리된 바깥 혹은 섬', 『경기문화재단 심층모니터링』, 2006, 12. (2006 바깥미술-자라섬, 25년 그 이후전, 2006. 2. 11-26, 가평군 자라섬 )
이미지 출전 / 네오룩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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