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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윤 : 당신이 지나간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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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도스 기획 최정윤 '당신이 지나간 자리'

2021. 7. 7 () ~ 2021. 7. 13 ()






전시개요

전 시 명: 갤러리 도스 갤러리도스 기획 최정윤 당신이 지나간 자리

전시장소: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737 갤러리 도스

전시기간: 2021. 7. 7 () ~ 2021. 7. 13 ()

 

흐린 얼룩을 새기다

 

갤러리도스 큐레이터 김치현

 

헤아릴 수 없는 관계와 시간을 담고 있던 육신에서 불꽃이 사라지고 껍데기를 남긴다. 그 자취마저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면 사소한 행운이겠지만 땅에서 난 생물이 흙으로 돌아갈 시간이 가까워 질 때면 망각의 무게가 정신보다 무겁게 내려앉는다. 대부분을 가져가는 죽음이 그대로 남겨두는 유일한 몸뚱어리는 그 속을 값지게 채우던 시간의 무정한 바람 앞에서 녹아내리고 바스라진다. 최정윤은 삶과 죽음이 조용히 서로의 순서를 지키며 교차하는 치열한 모습을 차분한 분위기로 그려낸다. 쉽게 지워지고 부서지는 재료로 제작된 작품은 작가가 그린 형상이 품은 삶과 죽음의 모습을 닮아있다.

 

사람의 입장에서 깊이 있는 감정의 몰입이 가능한 죽음이란 무엇보다도 사람의 죽음이라고 무심코 생각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순히 종이 같다는 이유나 알고 지내던 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자신의 의지로 어찌 할 수 없는 생명의 잔인한 법칙을 받아들이는데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새로운 생명을 맞이하는 두려움과 달리 낯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직접 마주하기 꺼려진다. 수치화된 통계의 모습을 한 죽음은 냉철하게 읽어내기 쉽지만 자신과 닮고 애착이 담겼던 얼굴의 눈감은 상태는 감내하기 힘들다. 작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호감을 가질 수 있는 어린 사슴이나 작은 새의 모습을 그렸다. 하지만 단순히 친근한 동물의 이미지를 이유로 작품에 다가서도록 화면을 관객에게 쉽게 개방하지 않는다.

작품으로 등장하는 형상의 공통점은 무언가 결핍된 채로 탄생했거나 생존의 과정에서 소실된 상태이기도 하며 도리어 과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어떠한 힘이 개입되었기에 작품에 그려진 이미지들이 그러한 모양을 지니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작가는 작품을 관찰하는 이들에게 화면 속 세상의 사연이나 감추어진 이야기 따위를 함부로 유추할 만한 단서를 주지 않는다. 죽은 생명의 사체가 메말라 바스라지고 축적되어 생명의 양분이 되듯 순서를 헤아릴 수 없는 인간에게 무신경한 톱니바퀴의 한 부분일 따름이다. 숨을 거두고 경직되어 기괴하게 뒤틀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생물은 생명이 떠나고 남긴 깨어진 알의 껍데기에서 보이는 묵직한 가벼움처럼 덩그러니 늘어져있다. 대부분의 관객에게 화면 이상의 의미로 인식되지 않는 종이의 표면은 잘게 구겨져 있기에 재료가 지닌 연약한 물성이 강조되는 위태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나지막한 입김에도 젖고 흩날릴 것 같은 얇은 종이 위에는 미약한 바람에도 지워 질 것 같은 가는 선으로 새겨져있다.

 

유리에 묻은 지문이나 먼지는 그 투명한 벽을 세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자국이 오래도록 많이 남아있음은 그것이 보존해야 하는 가치를 지녀서가 아니라 눈길조차 가지 않는 대상을 정리하는 행위마저 필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 무신경함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필요해 의해 닦여 사라지는 그 얇고 가벼운 흔적은 잊어버리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눈곱처럼 머지않아 다시 찾아옴을 분명히 알고 있는 불청객이다. 최정윤은 자극적이지 않은 이미지와 짙은 색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예상하지 못한 어느 순간 시야에 흐린 얼룩을 드리우며 등장하는 죽음의 모습을 새긴다. 그 화면에는 덧없이 가볍고 보잘것없는 시간의 우스꽝스러움에 대한 희미한 미소가 서려있다.










해바라기, 25×16.5cm, 석고붕대에 채색, 2021












흰 연기, 21×29.7cm, 트레이싱지에 잉크, 2021












빛나는 껍질, 가변크기, 10×9×7cm, 혼합매체, 2021












자국, 42×30cm, 종이에 잉크, 2021











작가노트

 

   해질녘 땅거미가 내리면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는 형태들이 그을린 자국처럼 검게 물든다. 익숙했던 것이 섬뜩해 보이기도 하고 낯선 것이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시간이다. 숲은 수런거리는 잎으로 에워싸인 그물을 펼친다. 흔적은 시간이 흐를수록 허물어지므로 늦기 전에 찾아내지 않으면 영영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본인은 아름답고 황홀한 잔상을 쫓는 습성이 있다. 가까스로 잔상의 끄트머리를 잡아보면 무엇인가 분명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진 자국만 남아있다. 알맹이는 흩어지거나 녹아 사라지고, 단단했을 일부분만 부서진 채 남아 우수에 찬 풍경을 연출한다. 잔해들은 돌이킬 수 없이 파괴되었으나 여전히 관능적이어서 종말 이전의 영광이 떠올라 마음이 술렁거린다.

스쳐 지나가는 것, 혹은 신기루를 잡으려고 애쓰는 일은 덧없는 일이다. 온전함이란 이상에 그치거나 찰나일 뿐 훼손되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 숙명적으로 분실된다. 존재는 얇고 가냘프며 취약하다. 그런데 너무 소중해서 버릴 수가 없다. 그 목소리가 자취를 감춘 이들에 대해 말해주는 유일한 단서인 것 같아서.

난 언젠가 퍼즐을 완성하길 희망하며 빛나는 조각들을 수집하지만 숲의 어느 부분이 어떤 소멸들 덕분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는 잃어버린 나의 부분들을 애타게 찾아다니는 중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죽음은 삶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흔적은 그것이 아주 작고 찰나적이더라도 무엇인가 분명 존재했다는 것을 증언한다. 떨어진 깃털, 빛을 반사하는 곤충의 껍데기 같은 것들은 보잘것없는 파편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의 반짝임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습자지, 트레이싱지, 석고붕대 등 얇고 연약한 표면들과 부서지기 쉬운 이미지들에 관심을 갖고 생명의 덧없음과 아름다움이라는 이중적 가치를 드러내고자 하였다. 구겨진 종이, 엷게 배어나온 잉크의 흔적, 충돌사한 새, 깨진 알껍질 등을 통해 저항할 수 없는 자연의 순환과 그 속에서 부지런히 움직이는 생명에의 경탄을 표현하였다.

 

 

 

 

 

 

 

 

최정윤

2013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B.F.A)

 

 

개인전

 

2021 당신이 지나간 자리, 갤러리도스,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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