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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영숙 : 망각에의 강박

  • 전시분류

    개인

  • 전시기간

    2023-10-18 ~ 2023-10-29

  • 참여작가

    노영숙

  • 전시 장소

    공간아래

  • 유/무료

    무료

  • 문의처

    01043109186

  • 홈페이지

    http://www.instagram.com/gonggan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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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감정이 발생하는 것만 기억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기억중에서-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렇게 사진의 본질이 무엇인지 파고 내려가보면 기억기록이 남는다. 낯선 여행지에서 쉴 새 없이 스마트폰을 꺼내는 이유도, 맛있는 것을 앞에 두면 일단 사진을 찍는 것도. 특히 지나칠 수 없는 것은 사랑하는 이의 모습이다. 스마트폰의 사진 폴더에는 얼마나 많은 사진이 쌓이고, 또 그 중에 사랑하는 이의 사진을 얼마나 많은가. 감정이 발생하는 그 순간을 기록하여 기억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사진을 찍는다.

 

일상의 기억 강박 같은 행위도 무의미해질 때가 있다. 바로 그 관계가 끝났을 때다.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 부지런히 찍었던 사진은 끝난 관계 앞에서 의미를 잃는다. 그저 관계가 있었음을 증명할 뿐이다. 사진-기억-관계는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이어져 있다.

 

밀란 쿤데라의 웃음과 망각의 책의 시작은 소련의 독재자 요제프 스탈린이 함께 촬영된 소련 정치위원의 모습을 지운 사진을 설명하며 시작한다. 끝나버린 관계들은 사진 속에 지워지며 기억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지워버리고 싶은 한 사람에서 시작한다. 모든 것이 디지털인 세상에 자신의 사진을 준 사람. 막연하게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에 지우개를 들었다. 많은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사진 속 모든 것을 천천히 지워갔다.

 

작업 망각에의 강박은 지난 2015년에 시작해 여전히 진행 중인 작업이다. 첫 번째 시리즈는 <Erase-Delete>. 지난 연인 9명의 사진을 프린트해 아주 작은 단서만 남기고 지웠다. 각 사진과 지우개 가루는 하나의 틀 속에 보관했다. 망각을 위한 적극적인 행위를 했지만, 어떤 형태로든 존재하는 이미지는 관계와 망각 사이에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두 번째 시리즈 <Ghost>는 정 반대되는 양상을 보인다. 망각의 과정 중 ‘어떤 것을 남길 것인가’에서 ‘어떤 것을 지울 것인가’의 문제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여기서 인물은 일반적인 풍경 속에 지워져 형태만 남았다. 때문에 풍경은 여전히 구체적이지만, 지워진 공간으로 인해 의미를 읽을 수 없다. 풍경과 인물 사이의 불균등한 정보는 서로를 더욱 이질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가 된다.

세 번째 시리즈 <BRYWB>를 통해 한 개인의 경험에서 보편적 경험의 형태로 확장됐다. 사진이 지워질 때 순서대로 ‘파란색(Blue)’와 ‘빨간색(Red), ‘노란색(Yellow)’을 각각 모아서 재구성했다. 이 과정은 이별의 진행 단계를 의미한다. ‘흰색(White)’은 이미지를 잃고, 관계들이 백지로 돌아간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검은색(Black)’은 이별한 누군가들의 독백을 옮겨 적은 것이다. 유튜브의 이별 노래에는 다양한 이별과 미련이 댓글로 달려있다. 이를 종이에 옮긴 것이다. 감정과 사연이 뒤섞이고, 겹쳐지는 지점에서 검은색을 발견했다. 때문에 ‘검은색’은 다른 색들과 결이 다르다. 모든 이별이 그렇듯, 쿨하지만 쿨해질 수 없는 것처럼. 흰색과 검은색은 서로 상충하지만 이별의 감정으로 함께 존재한다.

네 번째 시리즈 <Defragment> <BRYWB> 작업 중 발생한 주변 이미지를 스캔한 것이다. 우연히 함께 기록되어버린 주변의 형태는 촬영자의 의지와 관계 없이 존재한다. 그래서 완전히 지워지기 전, 이를 주인공으로 한 사진을 남겼다. 원래 사진은 모두 지워졌지만, 새로운 맥락에서 중심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했다.

다섯 번째 시리즈 <The reason for our break up was the gravity>는 이별의 순간을 재현한 영상 작업이다. 지우개 가루로 만든 조각이 불완전한 기반 위에서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을 촬영했다. 울퉁불퉁한 플라스틱 뚜껑 위에서, 기울어진 바닥 위에서 서로를 기대며 쓰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계속해서 실패한다. 지친 사람들이 ‘우리는 애초에 어떨 수 없이 헤어져야 했어’라고 말하는 것을 당연한 힘인 중력에 빗대었다.

 

감정이 일어나 사랑하는 사람을 찍었던 순간, 그 시간에 나는 기억 강박증을 앓고 있었다. 그리고 관계가 모두 끝나 그 기억들이 의미를 잃은 순간부터 나는 망각에의 강박을 시작한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평생을 기억과 망각 그 사이에서 떠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이 작업은 누군가 혹은 어떤 순간을 부단히도 망각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초대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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