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
같은 미술대학에서 만난 A와 D가 캠퍼스에서 항상 붙어 다닐 때, 주위에서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잘 어울린다’였다. A와 D는 서로 첫눈에 반했다기 보다, 같은 동아리에서 공통점을 오랫동안 공유하면서 자연스레 커플이 되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으로 각자 작품을 만들어보고 밤새 이야기할 만큼 서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림, 조각, 디자인, 건축, 사진, 미디어 아트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좋은 전시를 매주 같이 보러 다니는 것이 일이자 사랑이었다. 그런데 영원할 것 같던 그들에게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무게 중심’에 대한 근본적 시각 차이였다.
A는 D가 헤프다고, D는 A가 혼자 잘난척한다고 생각한다
A는 D의 친절한 모습을 보며 사랑이 싹트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친절함 때문에 이제 헤어질까 한다. 작품을 만들 때도 입버릇처럼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를 반복했고, 예술, 사랑, 우정 모두 중요하다고 했다. 작품 제작 예산에 관해서는 언제나 재빠른 계산으로 손해 보지 않는 민첩함이 기특하기도 했지만, A에게는 여전히 어색했다. 창작에 있어서 좀처럼 모험할 생각을 않고 예측 가능한 것에만 가치를 두는 D의 모습이 점점 매력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반면 D는 A의 거침없는 자유로움에 너무 좋았다. 남자인 자신보다 뛰어난 표현력과 세련된 솔직함이 늘 부러웠다. 언제나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감에 부풀어 있는 모습에 매번 감탄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이고 무모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A는 기분이 저조하면 정서가 일관되지 않았고, 혼자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갑자기 연락을 두절 할 때면 섭섭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D에게 그 불안함을 계속 끌어안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한때 선남선녀 커플이었지만, 이제는 서로 너무 이타적이라, 너무 이기적이라 한다.
과거 사진의 양자택일, 아트 사진 또는 디자인 사진
클라이언트가 사업상 필요로 하는 사진을 정확히 찍어주고 돈을 받는 소위 ‘디자인 사진’에도 크리에이티브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미 견적서와 계약서가 오가고, 클라이언트의 입맛과 매체와 대중이라는 다수의 시장 논리가 지배하는 상황에서 ‘디자인 사진’에 사진 창작자의 목소리를 크게 전달하기란 다소 쉽지 않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를 잘 설득하고 결국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진 창작자들은 결국 업계에서 인정받고 제법 안정된 삶을 살아간다. 한편 소수 콜렉터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아트 사진’은 소수의 전문가 논리를 따라간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기 전에는 매번 돈과 시간을 스스로 준비해 작품과 전시를 준비해야 한다. 예측 불가능한 도박에 가까운 ‘아트 사진’의 행보는 위험하기 그지없지만, 살아남은 소수는 ‘예술가’ 자격을 만끽하며 자신만의 신제품 출시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렇게 창작의 중심을 ‘나에게 두느냐’ 아니면 ‘남에게 두느냐’에 따라 똑같은 카메라에서 태어나도 이란성 쌍둥이로 살아왔다. 그렇다면 그것은 주어진 운명일까? 그것은 A와 D처럼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일까?
미래 사진의 양자택일, 명품 사진 또는 보통 사진
사진으로 제법 성공한 창작자들을 가만히 보면 돈과 명예 모두 스스로 만족할 만큼 쟁취한 이들이 흔하지 않은 것 같다. 남부럽지 않게 돈을 번 ‘디자인 사진가’도 여전히 미술관에서 초청 개인전을 하고 싶어 한다. 반면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인정받은 ‘아트 사진가’들도 거액의 광고 사진을 은근히 해보길 바란다.
오늘날 사진 시장은 전통 매체와의 혼합, 디지털 신기술의 접목 등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컴퓨터가 지나치게 똑똑해지고 소비자들의 눈높이도 높아지는 마당에 ‘사진 창작자’는 재능 이상의 재능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다양한 기회가 필요하다. 더 이상 순수와 상업을 구분 짓는 영원한 오해에서 벗어나야하지 않을까? ‘아트 사진’이건 ‘디자인 사진’이건 ‘기막힌 사진’들은 모두 예술이다. ‘순수와 상업’이 아니라 ‘명품과 보통’을 구분 짓는 이분법 문화가 정착해야할 것이다. 나를 위한 창작이건 남을 위한 창작이건 위대한 창작자는 결국 ‘멋진 예술품’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영화감독 데이비드 린치, 화가 줄리앙 슈나벨, 디자이너 톰 포드 등 명품 예술가들은 다른 장르에서도 명품을 만들고 있다. 하물며 한국 사진이라는 이 조그만 장르에서 서로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인식’이야 말로 영원한 오해이며, ‘창조’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가 아닐까. 장담컨대 새로운 기회는 기대 이상의 새로운 창작을 양산할 것이다.
- 강철(1972- ) 홍익대 예술학과 석사. 김달진미술연구소 편집연구원, 월간디자인 수석기자 역임. 현 서울포토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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