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택
2010년 한 해는 내내 암담한 현실이었다. 정치현실이 그렇고 경제적 사정도 그렇다. 어둡고 눅눅하고 비릿하다. 아니 답답하고 우울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듯하다. 이명박 정부가 그려나가는 이 어둡고 어두운 현실풍경을 언제까지 지켜보고만 있어야 할까? 그러나 이런 현실에 대해 미술계는 너무 적막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 한해 미술계는 화려한 전시들이 줄을 이었다.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시티와 대구사진비엔날레 등을 포함해 국제적인 규모의 대규모 전시들이 볼거리를 안겼다. 단연 광주비엔날레 전시가 돋보였다. 전적으로 마시밀리아노 지오니의 역작임에 틀림없다. 현재 진행 중인 미술계의 이슈와 논쟁을 담아내는 지점은 부재하지만 또 다른 비엔날레전시의 의미와 기능에 대해 생각하게 해준 전시로 미술사적·교육적 차원에서 훌륭한 편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기획전시들이 대체로 좋았다. ‘젊은 모색’전은 무척 아쉽게 정리되었지만 여타 전시들은 상대적으로 눈에 띄었다. 국립미술관만이 해내고 보여줄 수 있는 전시를 더욱 기대하게 된다. ‘박기원’ 개인전도 인상적이었다. 그는 한국미술계에서 보기 드문 뚝심 있고 일관성 있는 이다. 그런 작가가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때가 있다. 미술관은 그런 작가를 더욱 주의 깊게, 세심하게 살피고 찾아야 한다. 덕수궁미술관의 ‘아시아 리얼리즘’은 제목은 겉돌지만 서구미술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모색과 갈등을 한 자리에서 엿볼 수 있었다. 또한 ‘권진규’ 회고전은 내내 인상적이었다.
대전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육태진’의 유고전은 개인적으로 감회가 깊은 전시였다. 필자가 모 미술관의 큐레이터로 재직 시 그의 전시를 두 번이나 마련한 적이 있었기에 그렇다. 전시공학적 측면의 아쉬움 속에서도 육태진의 진가가 빛을 발하는 전시였다. 미디어아트를 통해서 실존적 성찰과 자신의 존재를 명상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매력이 대단하다. 코리아나미술관의 ‘예술가의 신체’를 비롯한 일련의 기획전시도 돋보인다. 탄탄한 큐레이팅과 진지한 내용들은 사립미술관의 좋은 사례를 만들어나간다는 인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고려불화’는 올해 최고의 전시 중 하나였다. 그토록 훌륭한 이 불화가 죄다 일본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언제 또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더욱 몰입해서 보게 되었던 전시다. 개인전으로는 김동유, 김명숙, 김범, 김보중, 김홍주, 박미나, 방정아, 변용국, 안창홍, 이만나, 이광호, 정주영, 정보영, 함명수, 한운성, 설원기, 윤향란, 홍수연, 배영환, 양혜규, 홍승일, 한지선 및 김현철, 박윤영, 서은애, 양대원, 김범석, 정재호의 동양화, 이일호, 조성묵, 권오상, 김나리, 최수앙, 배형경, 신미경의 조각전, 그리고 안정민, 강행복, 김준권, 김상구의 판화, 권태균, 송심이, 조병왕, 윤정미, 강홍구, 하태범, 최봉림의 사진전시가 돋보였다. 박현기와 이승조의 유작전, 박노수와 정창섭, 박서보의 회고전시 등도 눈에 띄었다. 외국작가로서는 수보드 굽타와 장환의 작품이 돋보였다. 사실 이런 목록의 나열은 한 해 동안 본 전시 중 기억에 남는다고 여겨지는 것에 한한다. 아울러 나는 그 많은 전시를 다 보지 못했고 알 수도 없었다. 아무리 부지런히 다닌다 해도 모든 전시를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트페어 참가가 인정받는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 미술계는 지나친 쏠림 현상이 있다.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아트페어 작가와 고급엘리트 작가로 확연히 구분되어 나뉘어진다는 느낌이다. 키아프와 화랑미술제를 위시해서 너무 많은 아트페어들이 열리고 있고 수많은 작가들이 그 전시·행사에 참여하고 싶어 안달이다. 그런 곳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전시를 선보일 기회가 없기도 하고 또 그런 시장에 나가야 그나마 작품을 팔기에 그럴 것이다. 여기서 미술의 주체는 결국 아트페어를 조직하는 이들이거나 화랑주인들이다. 그들의 눈에 들어야, 선택되어야 나갈 수 있기에 많은 작가들이 화랑주에게 종속적인 자세를 가질 수밖에 없다. 마냥 비굴해지거나 치사하거나 추접해진다. 시장에서 선호하는(선호된다고 여겨지는) 작품 내지는 그에 따른 화상의 요구에 순응해서 작품을 제작할 위험이 그만큼 커졌다는 얘기다. 아울러 아트페어 참가 자체가 마치 작품의 미학적 가치와 비평적 평가를 인정받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넌센스다. 그곳에서 작품이 몇 점 팔렸다는 사실 자체를 가지고 대단한 작가인냥 위세를 떠는 모습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그런가하면 몇 군데 화랑에서 독점하는 이른바 현학적인, 젊은 작가들은 다매체를 세련되게 연출하면서 동시대미술의 여러 담론을 적절히 논의하게 해주는 선에서 선호된다. 그래서 평론가·큐레이터들은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집중된다. 역시 쏠림현상이 일어난다. 이 두 세계는 한 공간에서 따로 놀면서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공존한다. 이상한 일이다. 그 사이에 배제된 좋은 작가들을 찾고 관심 있게 지켜보고 비평적 담론을 만들어내는 일이 필요하고 소중해 보인다. 더욱 황폐해질 2011년의 정치현실 속에서 우리 미술계는 과연 어떤 풍경을 만들까? 민주를 능멸하고 폭압적이며 사욕에 물든 전쟁광들이 그려나가는 현실 속에서 작가들은 무엇을 그릴까?
- 박영택(1963- ) 성균관대 석사. 마니프 미술평론상(1995) 수상. 아트포스트 기자, 금호미술관 큐레이터 역임. 현 경기대 예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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