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사연구회 2014년도 전국학술대회
판화는 정보 전달에 있어 이미 구시대적인 매체로 인식될 수 있으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여전히 질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이다. 인터넷을 통해 클릭 한 번으로 얻는 정보들은 책이라는 형태로 출판되는 지식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또한, 현대미술의 정수라고 일컬을 수 있는 팝아트는 대중문화로 대변되는 대량생산 매체인 판화를 표면에 내세웠을 때 그들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이처럼 판화는 언제나 혁명적인 문화발전을 일으키는 촉매제가 되어왔다. 서양에서는 필사본으로 극소수 기득권층만이 지식을 독점하다가 인쇄술의 발달로 거의 모든 지식이 대중들에게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러한 서양의 지식은 특히 그림이 곁들어진 판화로 제작되어 문자가 다른 동양 사회에 효과적으로 안착되었다. 미술사연구회에서는 지난 6월 7일(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2014년도 전국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그동안 미술사에서 소홀히 했던 판화의 중요한 면모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한호(경희사이버대 교수) 씨는 ‘혁신적 매체로서 뒤러의 판화’에서 1500년경 일개 지역 공방 출신으로서 황제의 초상까지 그렸던 화가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성공 이면에 그의 뛰어난 사업적 자질과 그러한 경영능력을 십분 발휘할 당시 목판 인쇄문화가 발달하고 있었음을 설명하였다. 뒤러가 살았던 독일 남부에는 많은 인쇄 공방이 있었고, 특히 그림을 곁들인 인쇄책자는 문맹자에게도 의미를 전달하고, 대중에게도 수준 높은 그림을 전달할 수 있는 유용한 매체였다. 뒤러는 당시 수요가 높았던 종교화를 기존의 지루한 나열 방식이 아닌 마치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진 광경으로 묘사하였다. 그는 이런 판화의 판매 루트를 전유럽으로 확산시켰고, 자신의 어머니와 아내를 판매 상인으로 활용했으며, 뒤러의 국제적 명성이 높아짐에 따라 표절과 무단복제가 만연해지자 일종의 상표등록과 같은 모노그램을 사용하여 저
작권 보호에도 힘썼다.
손수연(홍익대 초빙교수) 씨는 ‘17세기 네덜란드 판화와 물질문화’에서 시인이자 판화가였던 얀 라이켄(Jan Luyken, 1649-1712)의 판화집 『교훈적인 가정용품들』(1711)에 실린 물품들을 고찰하면서 이러한 물건들이 뜻하는 바를 해석해 보았다. 애초에 이 판화집은 명상을 돕는 종교 엠블럼의 이미지였지만, 탁자에서 보석함에 이르기까지 50가지의 물건들을 소개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상품 카탈로그나 진열된 상품을 보여주는 잡지의 역할을 하였다. 당시에는 사치품들을 고급 정물화에서나 볼 수 있었는데 소비자들은 판화를 통해 비싼 장르화를 소유하는 것과 같은 만족감을 얻었다. 이러한 상황은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렸던 네덜란드가 다른 나라와는 달리 범계층적인 소비문화를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며, 라이켄은 특히 이 엠블럼에 당대 인기품목을 넣어 구매자의 취향을 담은 판매 전략을 펼쳤다.
주심혜(周心慧, 북경 수도도서관 부관장) 씨는 ‘명말기 중국과 서양판화의 교류와 융통’에서 명말 중국에 들어온 서양의 선교사들이 그림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여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중국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 주고 복음전파를 위해 판화를 활용한 사례를 설명하였다. 당시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중국인들에게 이탈리아에서 온 오랑캐 마테오 리치(Matteo Ricci(利瑪竇), 1552-1610)의 설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때문에 마테오 리치는 천주교의 신념과 중국 고유의 문화를 결합하는 문화선교를 시행하였고 중국인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이러한 방식의 하나로 이탈리아에서 온 천주교 동판화는 중국의 관습적인 회화풍으로 바뀌었고, 이러한 판화들은 많은 백성에게 흥미를 갖게 하였을 뿐 아니라 명말 중국의 판화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고바야시 히로미쓰(小林宏光, 上智大學 교수) 씨는 ‘명대(明代) 고씨화보(顧氏畵譜)(1603)의 간행과 회화사적 의의’에서 우리가 흔히 전통시대 화가들의 훈련 교본으로 알고 있는 화보가 회화 발전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았다. 명대 화가인 고병(顧炳)은 『 고씨화보』를 통해 이제까지 유례가 없는 내용의 회화사를 집대성하였으며, 이는 화가의 창작활동에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복제화집으로 감상 되고, 컬렉터에게는 수집의 지침이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수많은 위작을 양산케 하기도 했으며 에도시대 일본에 수용되어 적극적으로 응용되었다.
진준현(서울대학교박물관 학예연구관) 씨는 ‘조선시대의 판화와 화가에 대한 소고’에서 조선시대의 중요 판화와 관련 화가들을 시대순으로 정리해 보고, 우리나라 판화사 연구의 중요 쟁점이 되어온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와 안견의 화품에 대해 비교분석해 보았다. 또한 이승희(홍익대 박사) 씨는 ‘영산회상변상도 판화를 통해 본 조선 초기 불교문화의 변화’에서 15세기 불교 판본화 도상의 변모를 통해 당시 정토 신앙의 변화를 읽어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