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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2016년 새해, 군자정에서 군자의 부활을 꿈꾸다

최열

이름난 벼슬을 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名宦以爲榮
배부른 관리가 되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하면            腴官以爲樂
세도가 추잡해진다                         則世道汚
이름난 벼슬을 하는 것을 근심으로 삼고               名宦以爲憂
배부른 관리가 되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면            腴官以爲恥
세도가 융성해진다                         則世道隆

- 성대중, <세도의 척도(世道尺度)>,『청성잡기(靑城雜記)』

권신응, <북악십경 북영(北營) 군자정(君子亭)>, 1753, 종이, 41.7 × 25.7 cm, 개인소장.

군자정(君子亭)은 지금 사라졌다. 군자가 사라지고 더불어 군자정신마저 사라진 시대이니 정자 하나쯤 사라진들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마는 세상이 아파하고 있는 지금, 어디 몸 하나 피할 데 없음에랴, 군자정이 있던 옛이 한없이 그립기만 하다. 군자정은 지금 창덕궁 안 신선원전(新璿源殿) 서쪽 담장 넘어 중앙고등학교 사이를 흐르는 북영천(北營川) 위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보면 북영은 창덕궁 서쪽 공북문(拱北門) 밖에 있고 북영 건물 남쪽으로 군자정과 몽답정(夢
踏亭)이 있다고 하였는데 <동궐도(東闕圖)>에 보면 대보단 서쪽 담장 곁을 흐르는 북영천 물줄기의 어느 곳엔가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권신응(權信應, 1728-86)이 그린 <북영 군자정>을 보면 북영천 냇물 위에다 정자를 지었다. 냇물 위 정자는 매우 드문데 서울에는 남산 필동천(筆洞川)의 천우각(泉雨閣)이 그렇다. 그림에는 군자정을 중심으로 왼쪽 위에 ‘백악(白岳)’, 중단의 절벽에는 ‘괘궁암(掛弓岩)’, 오른쪽 위 숲 속에는 ‘대보단(大報壇)’, 중단에 ‘영각(營閣)’을 배치했다. 이 그림에 나타나는 군자정은 냇가와 연못 위에 떠 있는 모습이며 또 냇가와 연못 사이에 일직선의 둑을 세우고 둑 위로 아주 가늘고 긴 길을 내서 군자정으로 향하게 해 두었다. 실제로 그림에는 군자정에 세 사람이 앉아있고 둑길 위에는 두 사람이 군자정을 향해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두었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만으로는 정자가 주변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한 곳으로 보이는데 유본예(柳本藝, 1778-1842)가 지은 『한경지략』에는 군자정을 ‘활 쏘는 사정(射亭)’이라고 했다. 물론 『동국여지비고』에 ‘연꽃 구경하는 정자’라는 말이 있음을 생각하면 군자정은 활쏘는 터에 있으면서 연꽃 피는 계절이면 연꽃 구경에 제격인 정자였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북영일대에 이런 정자는 몽답정, 군자정 말고도 괘궁정(掛弓亭)까지 모두 세 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들 세 정자는 모두 활쏘는 터에 있는 ‘사정’이다. 몽답정은 영조(英祖, 1694-1776)가 꿈 이야기를 하면서 지은 이름이고, 괘궁정은 활을 걸어둔 바위같은 괘궁암을 따라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군자정은 왜 군자란 이름을 가진 것일까. 어떤 기록도 없어 알 수 없지만, 활쏘기라는 게 장수 같은 무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학문하는 문인들 또한 갖춰야 할 육예(六藝)의 하나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그 뜻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정조실록』 1781년 6월 23일 자에 따르면 군자
정은 영조 때 붕당을 반대하는 탕평론자였던 소론당의 좌의정 학암 조문명(鶴巖 趙文命, 1680-1732)이 세운 것이다.

조문명은 공평무사한 탕평의 실천 방안으로 억강부약(抑强扶弱), 시비절충(是非折衷), 쌍거호대(雙擧互對)를 제시했다. 하지
만 노론당과 소론당 양당의 강경론자로부터‘ 세상을 속이고 우롱한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고서 노비종부법( 奴婢從父法)과 같은 악법 폐지라든지, 조운수로(漕運水路)를 위한 안흥목(安興項) 개척, 상업진흥을 위한 주전(鑄錢) 정책을 역설한 인물로서 탁월한 경세가였다. 그런 인물이었기에 활 쏘는 터에 군자라는 이름을 붙인 정자를 세워야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근래 정치 세계는 야합결탁과 골육상쟁의 추악함으로 짙게 물들어가고 있다. 더구나 약한 자를 억누르고 강한 자를 북돋우고 있으니 저 조문명이 세운 군자정이 사라졌기 때문 아닌가. 그렇다. 늦었지만 2016년 새해를 맞이하여 군자정을 복원해야 한다. 그리고 저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세도의 척도(世道尺度)>라는 글에서 말한 군자의 부활을 간절히 기원하고 또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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