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있는 그림(127)
최영욱 / 화가
사람은 살면서 변한다. 식성이나 외모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그릇도 변한다. 중요시 여기던 것이 덧없이 느껴질 때도 있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꼈던 것도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세월이 우릴 이해하게 해준걸 게다.
박물관에 놓여있던 달항아리가 나에게 다가온 적이 있다. 사람도 없던 박물관 안에 홀로 조명을 받으며 놓여 있었다. 소박하고 수수해 보이지만 많은 걸 품고 있고 한참을 보다 보면 지극히 세련된 달항아리. 나에게 그렇게 살라는 것 같았다.
나는 달항아리를 그린다. 하지만 똑같이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달항아리를 닮고 싶은 마음을 형태에 담고 그 안에 내가 살아온 인생길을 그린다. 그래서 제목이 ‘카르마’이다. 살면서 안타깝고 아쉬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것도 나의 인생이었다. 이 넓은 세상에서 우리가 만나고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이 운명같이 느껴진다. 그래서 매 순간이 소중하고 지난 일들이 아련하다.
우리는 살면서 변해 왔지만 변하지 않고 우리 안에 있는 그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에게 늘 있었던 측은지심. 입장을 바꿔보면 이해하지 못할 일도 많지 않다. 레미제라블을 보며 왜 가슴이 뭉클했을까? 음악이나 연기력보다도 다같이 잘 살아야겠다는 공감 때문이었으리라.
점점 소박한 게 좋다. 화려한 장식보다 여백이 좋고 기름진 음식보다 찬물에 밥말아 오이지 한 점 먹을 때 행복을 느낀다. 많은 걸 말하지 않지만 우린 거기서 한끝의 정수를 본다. 내 그림이 그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