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20)건축구조 속에 다시 피어난 ‘생성 공간’

이열

글이 있는 그림(120)

이열 / 홍익대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



현재의 작업실을 포천의 광릉으로 자리 잡은 지 올해로 어언 20년이다. 전국 어디를 다녀 봐도 이만한 곳은 보기 드물다. 이곳 국립수목원 숲에는 족히 수백 년 이상의 나무들이 하늘을 가릴 정도여서 아프리카의 밀림을 연상케 한다. 유네스코 생물권 보존 지역인 만큼 수종이 다양하며 풍광이 아름다워 청정 지역으로도 유명한 자원의 보고이다.


나는 서울의 작업실을 이곳으로 옮긴 지 3년 이 되었다. 거리상 1시간 남짓 되는 학교로 출퇴근해야 하는 약간의 수고스러움은 있지만 그래도 작업에만 몰입할 수 있어 너무나 다행스럽다. 보금자리를 이곳에 풀어놓은 이후에는 조그마한 통나무집의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없이 밖을 향해 내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럴 즈음 사각문틀 구조를 통해 바라본 앞산에 봄이 찾아오면 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새순이 새록새록 돋아나는데, 마치 어린아이의 볼 살에 피어난 솜털처럼 뽀얗기만 하다. 필시 감정 때문일까? 앞산을 바라보고 있는 동안엔 한 폭의 산수화처럼 느껴질 때가 종종 있다. 이러한 경험과 더불어 사각문틀의 ‘출입문’을 통해 본 바깥세상은 나의 작품과 자연스럽게 만나 새로운 소통의 형식을 연출하기에 이른다. 즉, 캔버스 ‘외각 프레임 형태’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한편, 나는 90년대부터 <생성 공간> 시리즈를 작업의 주요한 테마로 삼고 있다. 작품을 형성하고 있는 기본 형식은 한국 전통 ‘서체 방법’에 추상표현주의 형식을 빌어서 현대화로 진행하는 일이다. 이러한 점은 “자연의 순환과정, 존재와 비존재 됨의 형이상학, 충만함과 텅 빔의 파라독스”라고 언급한『미국 예술(Art in America)』편집장인 리처드 베인의 말을 되새기게 한다. 이른바 나의 작업에서 화면의 주조를 이루고 있는 블랙과 미색, 크림색, 그리고 암바 등은 탄생과 소멸, 희극과 비극, 밝음과 어둠, 두꺼움과 얇음, 수직과 수평 등 두 개의 극이 대립된 성격을 지닌다. 


이처럼 일련의 작업은 자연 현상에 따른 섭리를 드러내는데, 이는 작업실의 주변 환경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이를테면 사각문틀 구조로서의 캔버스 외각 프레임에는 있음과 없음, 나의 얘기와 우리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 말하자면 트임과 막힘으로써 확산과 한계를 의미 짓는다. 그런 즉슨, 확장된 생성 공간으로서 일체의 행위는 캔버스 위에 드립(drip)을 통해 나타난다. 이로써 얼룩과 번짐, 넓게 칠해진 붓 자국들로 수직과 수평 등 자유 분망한 행위의 흔적들이 나 자신의 자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껏 작업 과정은 나에게 있어서 ‘수도승’이나 ‘성직자’가 깨달음을 추구하는 바와 크게 다름없다. 한층 더 나아가면 좀 더 자유로움으로 접근하려는 무한의 시도이기도 하다.



- 이열(1955- ) 충남 생. 홍익대 서양화과, 동대학원 졸업. 개인전 30회와 다수의 단체전, 아트페어 등에 참여. 국립현대미술관, 문화예술진흥원, 정부종합3청사 등 다수의 공공미술관 및 국내외 국가기관에 작품 소장.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