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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이 어때서?

손수호

‘바꾸자’는 말에는 대체로 좋은 이미지가 따른다. 변화는 늘 새로움을 추구한다. 여기에 반대하면 낡은 가치를 옹호하는 셈이 된다. 거기에 ‘민족정기’가 붙으면 강력한 힘이 생긴다. 민족 앞에 가슴 뛰지 않는 자 많지 않다. 그런데 ‘민족정기를 위해 무엇을 바꾸자’고 하면? 이거 대단하다. 반대하기가 쉽지 않다.

사적 제124호 덕수궁(德壽宮)의 이름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민족정기를 위해 경운궁(慶運宮)으로 바꾸자는 것인데,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지난 주 열린 공청회에서 많은 의견이 나왔지만 역사를 보는 시선에 따라 입장 차이가 분명하다.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지엄한 통치공간이냐, 황제 자리에서 물러난 고종의 노후 거처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지는 것이다.

‘덕수(德壽)’는 한자가 말해주듯 ‘덕이 높고 오래 산다’는 뜻이다. 중국 송나라 때 덕수궁이라는 이름의 궁정이 있었고, 조선 2대 임금 정종이 태상왕으로 물러난 태조 이성계를 위해 개성에 지은 궁궐도 덕수궁이었다. 1907년 즉위한 순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자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덕수궁으로 바뀐 것은 전통에 따라 자연스레 이루어진 일이었다.

물론 이 과정에 문제가 많았다. 일제가 강제로 고종을 폐위했다거나, 순종이 경운궁을 버리고 창덕궁으로 옮기는 과정이 억지였다거나, 고종이 덕수궁에 남아 울분의 세월을 보냈다는 점 등이 그렇다. 고종이 죽고 난 뒤에는 덕수궁이라는 이름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대한제국에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걸맞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 고종이 머물면서 통치한 기간은 10년여,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재위까지 30년을 합쳐도 궁궐로 쓰인 기간은 40년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은 기간은 100년이 넘는다. 이름을 바꾸면 교과서부터 지도, 표지판까지 모조리 바꾸어야 하는데, 거기에 드는 시간과 비용이 엄청날 것이다. 여기에다 덕수궁에 서린 국민들의 추억도 바꾸어야 한다.

덕수궁 이름을 쓰면 민족의식이 약화된다고 보는 시각 역시 무리다. 경운궁에서 덕수궁으로 바뀐 과정을 배우면서 더 큰 교육효과를 얻을 수 있다. 조선-대한제국-대한민국으로 이어지는 세월을 오랫동안 지켜본 덕수궁! 그 이름을 지키는 것이 바꾸는 것보다 의미 있다고 본다.

-국민일보 2011.12.7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5625195&cp=n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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