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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효진 / 불안정한 질서

박영택

인효진의 이번 전시는 초기작에서 근작에 이르는 그간의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일종의 회고전 형식 같다. 다른 소재/대상을 찍었는가 하면 우리 삶에서 광범위하게 서식하는 이미지(오브제사진)를 채집해서 설치한 것 등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것들은 한결같은 관심 아래 길어 올려진 것들이다. 우선 그녀가 찍은 피사체는 거의 여자들이다. 어린 소녀에서 여고생 그리고 성인여성들로 확산된다. ‘인형의 소꿉놀이’와 ‘My Lovely Kitty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대상이고 오감도’와 ‘High School Lovers는 여고생(고등학생 연인들이지만 여학생이 중심이 되고 있다), ’열혈남아 프로젝트‘(Hot Punk Project)는 포르노 모델이나 성인잡지, 에로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이다. 예외적으로 ‘천국의 섬’에는 연인, 부부, 가족들이 대상이 되고 있는데 이 사진에도 여자란 존재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자로 태어나 자란다는 것은 이 남성중심적, 가부장적 남한 사회 안에서 아버지, 아저씨, 오빠들의 시선 속에 훈육되거나 길들여지거나 그 시선을 내재화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자유롭기는 참 힘들다. 어찌보면 인효진은 그 같은 우리 사회에서 남성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 틀 안에서 자신의 여성성을 연극, 연출하는 여자들의 초상을 보여준다. 물론 그 안에는 강제되는 틀 속에서 위악적인 행복과 낭만을 꿈꾸거나 희구하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길들여지거나 연극적으로 소모되는 생애에 대한 자조들이 비릿하게 뒤섞인 풍경이 동시에 겹쳐서 떠오른다.

그것은 현실 안으로 발을 들인 모습과 그 현실에서 발을 빼는 것이 동시에 조망된다는 뜻이다. 그녀들은 진정으로 자신의 여성성, 남성들이 기대하는 여성스러움으로, 여성의 성적 정체성으로 풍만해 보이는 듯 하지만 그것이 그녀들의 맨 얼굴이고 진짜 삶의 모습일까는 좀 의문스럽다. 여성은 이렇게 늘상 자신이 보여지는 대상으로 시각화된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산다. 당연히 그것은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이다. 따라서 ‘남성들의 시선’이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 아니 남성들이 설정한, 그네들이 상상하는 여성상이란 거울에 얼굴과 몸을 비춘다. 그로인해 유사한 화장, 패션, 말투나 행동이 반복되고 성적이거나 섹시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코드, 거푸집 같은 것들이 만들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인효진의 일련의 사진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자/여성이란 존재가 누구인가를 묻고 있는 다큐멘터리 성격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한국 사회를 해부하고 들여다보는 임상적인 시선이 스며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성격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한다. 그 안에서 여성들은 주어진 현실적 제도에 갇혀 지내면서 소극적으로나마 그로부터의 이탈과 탈주를 꿈꾸는 그러나 실현될 수 없는 연극적이며 자기 모순적 측면을 악몽처럼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 작가의 사진이 반짝인다.
‘인형의 소꿉놀이’와 ‘My Lovely Kitty에는 성인여성을 모방하는 나이 어린 소녀들이 등장한다. 화장을 하고 어른들의 옷차림으로 치장한 소녀는 섹시하고 고혹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다. 모종의 여자/여성스러움를 연기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들이 꿈꾸는 여성의 존재다.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열망하는 소녀들은 인형놀이와 치장, 화장을 통해 이를 실현한다. 그 연극적인 모방행위는 꽤나 진지하고 심각하거나 의미있다 해도 그것은 어른들의 눈에는 그저 소꿉장난으로만 비칠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 행위 안에는 그녀들이 상정한 여성의 모델이 잠재되어있다. 그것은 가정에서, 대중매체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로부터 연유할 것이다. 어리고 귀여우며 순진하고 장난스러운 여자아이들은 동시에 아이이기를 그치고 이내 성적인 대상으로 순간 전이되고 내부에 잠복된 여성스러움을 극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녀들은 존재의 모호성과 경계에 서있다. 그러한 불확실한 흔들림을 포착하고 있다. 어른에 의해 금기와 억압 속에서 보호되고 여자로서 훈육되는 소녀의 성적정체성, 그리고 이미 성인들의 욕망을 자기 내부에서 연기하는 이중성은 어린 소녀들에 대한 피상적이고 상투적인 통념과 막연한 정의를 균열시킨다. 누가 어린이들이 순진하다고 말했나?

동일한 맥락에서 교복 입은 소녀들을 반복해서 찍은 <오감도>는 고등학생들이 한창 자살하던 시기에 떠올린 작업이라고 한다. 동일한 유니폼/교복을 입고 똑같은(너무 길고 커서 마치 족쇄처럼 보이는 불편한 의자) 의자에 건조하고 무료하게 앉아있지만 부분적으로 다리와 손의 배치, 가발, 핸드폰, 샌들에서 차이를 보인다. 얼핏 봐서는 동일한 교복을 입고 앉아있는 여학생들이지만 그 안에서 조금씩 모종의 금기를 위반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그 정도 일탈은 소심한 편이다. 학교라는 제도 안에서 여학생들은 치마 단의 높낮이와 몸을 조이는 교복 상의, 화장, 머리염색이나 가발 등을 통해 성인여성을 모방하는 동시에 주어진 틀에 저항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정도 일탈은 좀 애교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교복에 저당 잡혀있는 자기 몸을 어떤 식으로든지 섹시한 여성의 몸으로 보여지기 위한 전략 역시 보이지 않는 남성의 시선을 의식한 결과일 것이다. 물론 자기만족적이자 본능적이라고 말해질 수 있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역시 같은 측면에서 ‘High School Lovers(로망스)는 이른바 여고생들의 사랑과 성을 보여준다. 교복 입은 남녀학생이 타인의 시선을 피해 서로 부등켜안고 애무하는 장면이다. 이들에게 성관계는 더 이상 금기가 아닐 것이다. 성인 연인들의 일상적 포즈가 교복 입은 학생들에 의해 재현/모방되는 데서 순간 파열음이 일어난다. 육체적 성장이 과잉되고 성에 대한 욕구와 환타지가 너무 강렬하고 쎄서 주체할 수 없이 막무가내로 방출되는 성적 에너지를 적절히 조율하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사랑과 섹스를 대학 이후로 보류해달라고 말하기는 가능할까? 청소년들은 한 사회가 강제하는 성적 금기를 이반하면서 자신들의 욕망을 떳떳이/조심스럽게 드러낸다. 이 사진 속 고등학생 연인들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익숙한 그네들의 성적 로망스를 연출하면서 건전하고 착한 청소년이란 통념에 엿 먹인다.
인효진의 대표작으로 기억되는 ‘천국의 섬’은 일산 호수공원에 몰려든 사람들을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 역시 현실에서 조금씩의 일탈을 꿈꾸고자 몰려든 이들의 뒷모습이다. 휴일 몇 시간의 유예된 시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꿈꾸고 연극하지만 결국 다시 일상의 틀, 현실계의 강력한 금기와 제도 속으로 다시 들어가야 하는 현대인들의 슬픈 모습들이다. 그들은 찰나적인 낭만과 이상향을 어색하고 어슬프게 모방, 연출하고 있다.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이들이다. 이런 식의 삶이 아닌 다른 식의 삶을 꿈꾸고자 한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만 하는 존재들이다.

최근작인 ’열혈남아 프로젝트‘(Hot Punk Project)는 여성의 육체를 상품화하는 선전용 카드를 수집, 배열한 작품이다. 그 작은 종이 안에는 현대 남성들의 온갖 성적 환타지와 지형도가 죄다 들어있다. 명함 크기만한 작은 카드에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한 정보가 흥미롭게 인쇄돼있다. 그것을 다시 보고 읽게 하려는 의도에 따라 전시장에 수 십개의 카드가 하나의 이미지를 만들면서 전시된다. 멀리서 보면 잘 알 수 없는 이미지, 색 면의 가로 줄무늬인 추상적 패턴에 불과한 듯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작은 카드에 담긴 정보들이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시간과 거리에 따라 전혀 다른 이미지들이 다가오고 사라지는 기이한 경험을 제공하는 셈인데 그것들이 반복해서 보여지는 순간 강력한 힘, 이미지가 된다. 시각적으로 엄청난 양이 과잉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미 우리 현실은 그 같은 이미지가 시각적 홍수를 이루고 있다. 이 작은 카드는 포스터나 상품디스플레이, 혹은 홍보 전략에 의해 반복해서 보여주는 것처럼 설치되었다. 온갖 포즈의 나체 혹은 일부만을 가린 체 유혹하는 포즈의 여성들의 몸이 수놓아져있다. 키치적인 색감과 그녀들이 취하고 있는 포즈는 일반적인 포르노의 시선을 따르고 있다. 사진 속 여성들은 익명의 존재이면서 매춘의 기호들이다. 완전한 상품들은 철저하게 자본주의 홍보방식을 따라 배치, 산포된다. 그것은 주차된 차의 창 사이에 혹은 거리의 아스팔트 위에서 뒹군다. 누군가 집어서 전화를 걸면 그 여성의 육체(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몸)를 소유한다. 마치 상점에 진열된 물건을 골라 사듯이 말이다. 어쩌면 이 카드 속 여성들의 몸과 시선 역시 주어진 현실 속에서 꿈꾸는 턱없는 환상, 소비로 인해 획득한 찰나적인 행복을 심어주는 역할을 한다. 이 한 장의 카드 안에서 비근한 일상의 탈주를 꿈꾸는 남성들의 환타지는 그러나 결코 충족되지 못하고 불안함과 소심함 탈주 속에서 매번 낙담으로 끝날 것이다. 그 사진 속 여성들은 사실 어디에도 없기에 그렇다. 그럼 카드 속 여자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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