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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호 / 텅 비어 있는 조각

박영택

정광호개인전-일우스페이스(7.22-9.8), <항아리>, 구리선 용


회화가 표면에서 존재한다면 조각은 공간에 서식한다. 조각은 물질로 공간을 채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항아리>는 피부로 존재하며 또한 내부는 텅 비어 있다. 그래서 너무 가벼운 조각이자 심지어 접히기까지 한다. 희한한 조각이다. 선으로만 이루어진 있어 보는 이의 시선을 마냥 관통시킨다. 조각의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다. 다만 용접에 의한 구리선이 공간 속에서 자연스럽게 증식하며 항아리의 표면에 기생하고 있다. 사실 조각은 외부세계를 물질로 재현한 것이다. 그러나 그려진 대상이 실재하는 대상 자체는 아니듯 만들어진 대상이 실재를 연상시킨다 해도 결코 그것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눈으로 볼 수 있는 실재와 재현된 이미지 사이의 유사성을 동일시함으로써 보는 이들은 스스로 ‘마술’에 걸려들고 만다. 작가는 눈속임으로서의 이미지란 실재를 드러내는 데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또한 우리가 이미지를 실재라고 믿는 순간 실재는 개념 저편으로 사라져버린다는 사실을 새삼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조각, 이미지는 무엇일까? 표면에서 선으로 존재하기에 회화적이지만 공간에 부정할 수 없는 물질로 자리하고 있기에 분명 조각이다. 이처럼 그의 조각은 회화적, 시각적인 대상인 동시에 사물성을 보유하고 있다. 기존의 장르개념을 불식시킨다. 3차원의 사물로 인지하던 관람자의 시선은 작품에 다가서는 순간 표피와 내피가 하나가 되어 겹쳐진 2차원의 가느다란 금속선만을 인식하게 된다. 또한 이 항아리를 이루는 가는 구리선이 조명에 의해 벽에 비추면서 실재와 그림자가 정확히 일치하는 기묘한 체험 또한 선사한다. 볼수록 재미있는 작품이다. 좋은 작품은 이렇게 기존에 강제되고 있는 상투적 사고를 교란하고 유유히 빠져나가는 것이다. 무서운 깨달음을 무심하게 던져주는 것이다. 이런 이가 진정 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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