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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운성 / 과일채집전

박영택

과일채집전


모든 과일은 둥근 관능을 선정적으로 안긴다. 나는 그 둥금에 사로잡힌다. 나무줄기와 과일이 맞닿은 부분, 꼭지야말로 그 핵심이다. 움푹 들어간 배꼽, 옴파로스! 꼭지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의 실존적 존재로 우리 앞에 자존하는 과일의 몸은 황홀하다. 그 개별적인 형태와 고유한 색채가 빚어내는 아름다움은 오직 자연만이 빚어낸다. 인간은 그 아름다움을 모방할 뿐이다. 전시장에서 커다란 과일 하나씩을 만났다. 오직 그 하나의 원형이 눈에 벅차다. 위에서 내려다본 부감의 시선은 과일의 핵심, 꼭지로 주목시킨다. 터질듯 부푼 과일의 몸은 긴장감을 동반한 탄력으로 충만하다. 이맇게 과일 하나를 독대하는 체험은 낯설다. 나는 보랏빛으로 탱탱한 피망 앞에 섰다. 화면 하단에는 라틴 학명이 기재되어 있다. 작가는 과일들을 채집하고 이를 기념비적으로 그린 후 학명을 적었다. 오늘날 인간의 이기와 생태계 파괴로 인해 과일을 비롯한 뭇생명체들은 변질되거나 소멸되어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작가는 이제 곧 다른 모습으로 변해갈, 사라질 과일의 몸들을 채집하고 그렸다. 생명을 보존하고 영속화시키고자 했다. 이미지란 부재의 저항이자 사라짐에 맞서는 행위이며 또한 생명과 아름다움을 끝끝내 증거 하는 일이다. 나는 피망 앞에서 과일 하나가 우리에게 주는 이 축복 같은 매혹을, 눈에 부여하는 미적인 쾌를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나와 동등한 한 생명체의 존엄을, 그리고 생명체만이 안길 수 있는 오묘하고 숭고한 섭리 같은 것 말이다. 그것을 깨닫고 표현하는 일, 그것이 또한 불변하는 미술의 역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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