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동학-조선 블루스
전통이란 '어떤 집단이나 공동체에서, 지난날로부터 이어 내려오는 사상이나 관습, 행동 따위의 양식, 또는 그것의 핵심을 이루는 정신'이라고 정의된다. 전통은 한 세대를 뛰어넘는 영향력의 지속성을 가진다는 점에서 유행과 다르고, 완전히 소화되어 주체적 인식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유산과 구분되며, 비주류내지 제야까지 망라하는 범위의 포괄성에서 고전과 구분된다. 역사적으로 전통은 시공간을 이동하면서 재해석되고 변형되며, 때로 새롭게 창출되기도 하는데, 이는 기존의 가치체계로 현실을 해석할 수 없는 인식론적 위기에 대한 능동적 대응의 성격으로 파악된다. 주체를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매개되고 구축된 것으로써 파악하면서 근대적인 주체 개념의 해체를 주장하는 푸코의 논의와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근본적으로 권력적인 것이며, 타자를 소외시킴으로써 스스로의 힘과 정체성을 획득하는 방법론이라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지적은 최근 정체성과 전통에 대한 논의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주었다. 그에 따라 근대화의 역사적 필연성에 내재한 여러 문제점과 모순을 인식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한국적 정체성 논의의 출발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전통, 정체성, 한국적인 것이냐를 가지고 풀리지 않는 고민을 하거나 상투적 도상에 기대기보다는 구체적으로 우리의 문화적 현실을 읽어가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배동학은 자신의 문화적 뿌리가 무엇이며 우리의 역사적 전통성은 무엇인가를 사진작업으로 질문한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주체성에 대한 의문으로 인한 것이리라. 사진작업을 자신을 해명하거나 자신의 의식을 하나의 결정적 이미지로 답하는 행위로 여기고 있음을 본다. 대부분 자신이 직접 연기를 해서 찍은 이 셀프포트레이트 형식의 작업은 갓과 상투에 한복을 입은 남자, 그리고 전자기타 등이 소품으로 반복 등장한다. 초상사진, 박제된 꿩, 버드와이저 맥주병, 스타벅스커피 컵, 록음악 씨디케이스, 놋 밥그릇과 수저, 젓가락, 타오르는 불 꽃 등이 또한 함께 개입한다. 광고사진이나 일러스트레이션의 형식과 유사성을 지닌 사진이다. 한국의 전통적 기물과 이미지 그리고 서구문화의 여러 오브제들이 혼거하고 중첩되는 장면연출이다. 아마도 그 오브제들은 작가의 현재 삶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자 자신의 혼재된 의식의 초상을 보여주는 상징들일 것이다. 그는 그 사물들과 함께 한 사람의 모습을 통해 전통과 서구문화 사이에서 혼돈스러운 동시대 한국인, 자신의 삶을 연기해보이거나 제시한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의 제목은 <조선 블루스>다. 조선과 블루스의 혼거는 분열적이면서도 중첩되고 착종된 현재 우리 문화와 의식, 삶의 모습을 지시한다. 이 언어적 지시를 그는 사진으로 뒤따른다. 그것은 자신의 뿌리, 의식의 저간으로 심층적 탐사를 시도하는 일이면서 결국 현재의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타자들을 소환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는 부정할 수없는 한국인이지만 어린 시절부터 서구문화의 세례를 깊이 받은 이이고 블루스와 록음악에 깊이 매료된, 서구문화의 취향을 내재화한 이다. 그러나 그의 취향은 동시에 우리 전통과 분리되지도 않고 무의식적으로, 심상적 기억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그 이질적이고 상충된 취향은 분리되기 보다는 얽혀있거나 무의식의 배후에 기이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의 불우한 근대화의 역사와 블루스, 록음악의 저항 정신을 겹쳐놓았다. 급속히 서구화되면서 단절된 전통과 그로인해 착종된 한국의 모더니즘, 박제된 전통과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던 혁명적이고 반항적인 힘에의 주목 등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에게 서구 블루스와 록음악은 저항과 반항의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흑인 노예들의 음악인 블루스는 우울과 저항의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한편 블루스가 흑인의 고통을 표현한다면 록은 젊은이의 고통을 대변해왔다. 세상이 절망과 어두움, 억압으로 가득할 때 그리고 우리의 세상이 온전치 않은 것이라는 인식은 록과 블루스를 통해 표현되었는데 사실 젊음의 음악은 늘상 고통으로부터 출발한다. 문학도 미술도 마찬가지다. 특히 젊은 이의 사회의식이 깃들어있고 시대를 직시하는 눈이 자리한 록큰롤은 흔히 ‘젊음의 영혼’으로 불린다. 배동학은 그 블루스와 록에 깃든 저항정신, 혁명성과 함께 우리의 동학 정신을 떠올린다. (그의 이름도 동학東學이다) 동학은 1860년 최제우에 의해 창시되었는데 당시 지속되는 정치의 부패, 조세 수탈의 가중, 계급적 모순의 심화, 흉년과 질병으로 인한 불안과 고통 속에서 삶을 지탱해가던 조선 사회의 기층민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녔다. 기존의 부패한 현실을 부정하고 이상적인 미래를 제시한 동학은 반봉건, 반침략투쟁의 기치 아래 이루어졌다. 작가는 그 지점에서 우리 근대의 중요한 의미, 정체성 모색의 정신을 찾는다. 혁명과 반항의 정신을 찾는다. 그렇게 그는 블루스와 록, 그리고 동학을 동일선상에서 파악한다. 역사의 진보를 이끌었던 그 정신, 혁명성을 되살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의 근대성, 정체성에 대한 반성과 회복의 단서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현재의 사진은 그 시도의 일단을 펼쳐 보이는 작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