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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아름다운 거칠고 몽환적인 풍경- 최혜심의 근작들

김종근


눈부시게 아름다운 거칠고 몽환적인 풍경- 최혜심의 근작들 


예술가에게는 많은 스승이 있다. 야수파 화가 마티스에게는 상상력을 주장했던 구스타프 모로가, 사물이나 자연을 상상력의 눈으로 보라는 조언으로 그는 색채의 마술사가 될 수 있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주장했던 사상가 쟝 쟈크 루소처럼, 자연밖에 다른 스승이 없던 앙리 루소. 그는 아름다운 자연을 상상으로 찾아 열대 밀림의 풍경을 독창적으로 창조할 수 있었다. 
자연만이 진실하다며 풍경 그대로를 찾아 나선 밀레에게 자연이란 곧 최고의 스승이었다.
그렇다면 최혜심 작가의 선생님은 누구일까? 그녀에게 미술을 지도했던 교수들, 독일 유학에서 얻은 기술도 있었겠지만, 그녀에게도 최고의 스승은 역시 자연이었다. 
초기 작업에서 부터 그녀는 숲이나 자연의 매혹적인 풍경을 때로는 환상적으로 더러는 몽환적으로 그려냈다.

 
물론 초기의 작품에서 독일 유학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주제는 약간 변화가 있었지만, 한결같이 자연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아왔다.
그것은 봄날의 풍경이었고, 때로는 여름처럼 시원하고, 어떤 그림은 바닷속 정경처럼 투명하거나 꿈속 같았다. 그러나 그 풍경은 실제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 마음속의 풍경, 동양화처럼 사의(寫意) 그 자체였다. 
계절도 사계절을 찾아보기보다는 마치 꿈속의 오로라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환상적인 핑크빛 색채와 작은 꽃잎의 형태들이 거대한 화폭에 아지랑이처럼 아롱거리거나 춤을 추듯 어른거렸다.
근래 5-6년 전의 작업 풍경은 더욱 그랬다. 맑은 날 찬란하게 빛나는 숲의 모습인가 하면, 무지개가 얼룩지는 햇빛에 들켜 유리구슬처럼 빛나는 신비한 축포처럼 격하게 닮아있었다.
그의 작품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마치 하늘에 물감을 뿌려놓은 것처럼 아련하거나 호수에 물감을 풀어놓은 듯 싱그러운 풍경이 충만했다.
색채도 푸른색, 보라색, 붉은 색등 다채로웠다. 창문을 열면 봄날에 꽃들이 폭죽처럼 휘날리는가 하면, 혹은 은하수인가 온통 꽃잎들이 넘실거렸다.
그러나 맑은 밤하늘에서 만난 별들처럼 그림들은 저마다 신비한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화폭에 뿌려놓은 꽃들은 무지개구름처럼 두둥실 떠다니거나 솜이불처럼 푹신 거리기도 했다.
또 다른 꽃을 수놓은 작품은 많은 수국의 꽃묶음이 되어 엄마 품의 꿈속처럼 포근하다.


2017년 전후한 작품에서 작가는 메시지 전달을 위해 화면 속에 한글로 “사랑”이라는 직접적인 단어를 써넣어 화폭에 메시지와 조형적인 시도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만큼 작가는 색채와 메시지를 통하여 회화의 하모니를 전달하는 쪽에 무게를 두었었다.
이것으로 화면에 적극적이며 긍정적인 감정과 생명력의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하였다.
어쩌면 작가는 꽃 이미지와 무드를 통해 정서적 평안을 얻고 생명의 희열을 추구하는 사랑과 행복의 에너지를 그림에서 직접 말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의 풍경은 실제 존재하는 풍경보다는 언제나 상상하는 즉 눈에 보이지 않는 빛의 색으로 화면을 채운다. 
그녀의 고백은 이러한 작가의 심경을 아주 잘 반영하고 있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자신과의 외롭고 긴 싸움이다”. 나는 내 그림에서 캔디 같은 새콤달콤한 맛을 느끼고 꽃향기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그녀의 화폭에는 그런 새콤달콤한 향기로 가득 차 있다.
화폭 속에 작가가 일상적인 삶에서 갖는 감동과 기쁨, 슬픔, 행복을 담고 싶은 열정이 얼마나 강한가를 이것으로 충분히 확인된다. 
창작을 할 때의 즐거움과 기쁨이 화폭에 채곡 채곡 이미지들이 쌓여 하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그의 예술 행위의 열매인 것이다.
최 혜심 작가의 욕망은 그의 그림이 시대의 일시적인 유행이나 흐름과 주류에 흔들리기보다는 순수한 감정 표현에 도달함으로써 자신의 화풍이 구축되길 강렬하게 소망했다.
작가는 특히 독일 유학 이후 몇 번의 작품세계의 변화를 추구했다. 
2010년경에는 아련한 형상으로 화면을 장식하던 시기에서 텍스트를 끌어 들이기도 하고 
2013-4년에는 화면에 꽃 묶음을 채우듯 환상적인 색채로 화폭을 완성하면서 구체적인 형상의 꽃과 나무 풍경을 담아냈다.
이렇게 2010-17년을  전후한 작품에서 보이는 사랑이라는 텍스트의 화폭에의 인용이 그러한 형식이다.
이미지와 텍스트의 결합을 통하여 그가 말하고 싶어 했던 사랑 즉 메시지 전달을 위한 하나의 전달 형식이었다. 
나는 최근 최혜심 작가의< 일상의 기억 속에서> 작품 시리즈야말로 보는 이로 하여금 강력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음을 고백한다.
100호 정도의 대작인 <일상 기억속에서>는 기본적으로 원근감이 있는 풍경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모티브 상으로나 형식상으로는 봐도 이 작품은 하나의 풍경화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아련한 풍경이 펼쳐진다. 
구체적 묘사를 목적으로 하고 있지 않은 거칠게 생략된 풀잎들, 공간과 여백을 압도하는 긴장감 있는 화면구성이 단연 눈길을 끈다. 추사의 세한도를 본 느낌이 이러했을 것이다.


적어도 풍경화에서 이런 감정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회화의 승리이자 표현의 탁월함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사실적인 들판이나 숲의 모양도 묘사도 없이, 그러한 멋진 풍경을 보는 듯했다면, 향유 할 수 있다는 것은 최혜심 작가의 최고의 예술가적 덕목임 분명하다.
명료한 감정으로 풍경의 다양한 표정을 다루는 이 시리즈가 최혜심 작가에 또 다른 전환의 세계가 될 것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밀레의 자연을 넘어선 새로운 자연주의의 풍경화를 이룩하는 최혜심 스타일의 작품이 창조되어 우리를 오랫동안 즐겁게 감동의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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