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쩡판즈 / 예술가의 사회 관조

김종근

쩡판즈, 그는 홍콩배우 주윤발이나 유덕화, 장동건을 연상 시킬 만큼 준수하고 빼어난 미남의 얼굴이다. 그의 미모만큼 쩡판즈의 작품은 전 세계적으로 가히 인기가 높다. 얼마 전 홍콩 크리스티 옥션에서는 <8명의 가면>이 105억에 낙찰되는 기염을 토한다. 생존 작가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현대 작품 중 최고가를 기록한 것이다. 이 가면 시리즈는 화면 속 8명의 인물들이 양복을 잘 차려입고 웃고 있는 모습으로 가식적인 가면 쓴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중국 현대미술 3세대 작가로 불리는 그는 자본주의 경제가 들어오는 본 중국 사회의 혼란상을 가면을 쓴 남녀의 뻔뻔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표현했다.

작가의 작품을 가격으로 계산 한다는 것이 그다지 꼭 바른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작가의 작품의 척도는 그림 값에 의해 좌우된다. 미술평론가 도널드 쿠스핏이 앞으로 미술사는 인기 작가들에 의해 쓰인다는 이야기가 거짓말은 아니다. 개혁과 개방 이후 정치·경제적으로 강대국이 된 중국은 최근 몇 년 사이에 전 세계 미술시장의 3위를 차지하면서 세계의 국제 미술시장을 뒤흔들었다.

뉴욕타임스지가 그를 중국의 떠오르는 스타 작가 중 하나로 거명했고 쩡판즈는 사실 장샤오강, 위에민쥔, 왕광이, 팡리쥔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최고의 인기 작가이며 세계 미술시장을 흔든 이른바 중국 현대미술 빅3를 ‘턱밑에서 위협하고 있는 작가’다.
쩡판즈는 1964년 후베이 성 우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인쇄공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자란 그는 20대 초반, 1985년 신사조 미술운동이 일어나던 즈음 처음으로 현대미술이라는 모더니즘 세계를 접하면서 새로운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미대에 진학하지 못한 그는 아마추어 청년화가들과 어울리며 미대입시 준비를 하였고 이듬 해 후베이 미술학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 학창시절 그는 독일의 바셀리츠나 펭크 등 신표현주의 작가들에게 심취하여 표현적인 이미지로 현대사회에 대한 불만과 감정을 표출했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그는 잠시 광고회사에서 일을 하다 만 28살이 되던 1993년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베이징에 입성했다. 베이징의 낯선 도시는 그에게 허영과 기만, 자기만족, 고독, 이질감 등을‘가면 Mask’시리즈에 담게 하였다.

수시로 그는 가면 시리즈에 대해 “베이징으로 옮겨와 생활하면서 얻은 영감에서 나온 작품'이며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내 경험을 작품에 나타냈다'고 밝힌 바 있다. 이것은 베이징이라는 거대 도시에서 살아가며 의식적으로 사귀어야 하는 상황에서 작가가 느꼈던 체험이자 심리이며 작가의 경험이다. 당시 1993년 베이징으로 오기까지 그는 마치 베이컨의 작품처럼 고깃덩어리를 연상시키는 인간 군상을 보였다. 그는 이 ‘고기 시리즈 Meat’를 제작하면서 미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는데 초기 표현주의 화풍의 병원 시리즈의 주목처럼 이슈가 되었다.

그의 작품들은 병원의 풍경을 표현주의적인 화풍으로 인물의 내면적인 세계와 심리를 표현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작품에는 거친 붓 터치와 커다란 눈동자와 변형된 손, 의도적으로 과장된 신체의 불균형적인 비례 등 그의 작품의 특징이 그대로 나타났다. 다양한 형상으로 작업을 해온 가면 Mask 시리즈는 중국의 역사와 사회적 격변을 겪으면서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자아와 욕망에 대한 반영으로 분류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쩡판즈는 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는데 가면시리즈를 통해 익숙한 표현주의 화풍을 절제하고 신체 중에 커다란 손과 다소 확대 된 얼굴에 주목하게끔 이끌어 갔다. 두 주먹을 쥔 듯한 큰 손들이 지시하는 상징적 의미, 자본주의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끊임없이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과 자본주의에 물든 피폐한 사회를 암시적으로 드러냈다. 그 후에도 쩡판즈는 자신의 세계에 변화를 보였다. ‘얼굴시리즈 Portrait’나 ‘풍경시리즈 Landscape’가 그러한 가장 대표적인 작품들이었다. 이러한 작가의 신념 속에는 “예술가라면 사회를 관조해야 한다.” 라는 나름대로의 사회를 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확인 할 수 있다. 사람들이 가면을 벗어 버린 그의 인물의 등장을 매우 의미 있게 바라다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쩡판즈는 <초상> 시리즈를 통하여 자기 자신과 정치 영웅, 대중 스타들의 초상에 아무렇게나 그어버린 선들로 스타들의 모습을 뭉개버리며 내면의 진실을 포착하려 했다. 작가 스스로 “나는 사람들이 나의 작품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는 쩡판즈의 발언은 가면을 주제로 한 인간의 내면과 외부와의 갈등과 모순을 잘 포착 한 것이다. 이러한 기법은 “오른손에 두 개의 붓을 들고 동시에 움직이며 의식과 무의식의 만남을 조율” 하는 것이라는 평론가들의 지적은 매우 설득력을 지닌다. 그러나 어쩌면 쩡판즈가 진정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사실 현실의 보여진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숨겨진 것에 대한 내면의 그림자 즉 진실인지도 모른다.

2003년 들어서 쩡판즈는 전혀 다른 화풍으로 3개의 작품으로 구성된 연작에서 눈, 코, 입 등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시켜주는 최소한의 단서들만 남겨진 얼굴 위로 연속된 동그라미의 붓 터치만으로 작품을 완결 시켰다. 쩡판즈가 실제 그리고자 하는 것은 현실세계의 구체적인 대상이라기보다 내면세계의 표출과 타인과의 소통으로 요약된다. 그는 인터뷰를 통해서 “그림속의 인물들을 통해 솔직하라”고 주장한다. 솔직하지 않는 것은 비극이라면서 말이다.

2005년을 지나면서 쩡판즈의 작품은 점차 절제 있는 중국 전통화의 선묘법 형태로 변화하였다. 중국 수묵화의 자유분방한 필획을 연상시키는 풀과 나무에 대한 묘사가 주목 할 만한 ‘무제 시리즈 Untitled’는 중국의 광활한 자연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면서 얻어내는 두려움으로 평가 된다. 그는 베이징의 허영과 고독, 반듯하게 정장을 한 남자의 얼굴에 가면을 씌워 인간의 이중성과 기만을 통하여 상처받은 존재의 진실을 낱낱이 파헤치듯 드러낸다. 그런 쩡판즈의 마스크 시리즈들은 광조우 트리엔날레를 통해 국제 미술 무대에 급격하게 알려졌고 독일, 프랑스, 미국, 런던 등 전 세계에서 마스크 돌풍‘을 일으켰고 쩡판즈 신드롬을 일으켰다. 그러나 쩡판즈는 이후 풍경 시리즈에 대하여 '새로운 작업을 시작할 때 먼저 추상화로 그려보면서 영감을 얻는다'면서 '중국 전통회화에 관심이 많은데 선으로 유화를 표현하기 위해 시작한 그림'이라고 고백했다. 또한 그는 '여행이나 음악, 일상생활의 모든 것에서 영감을 얻는다'면서 '새로운 것을 찾으면서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흥분된 상태에서 작업을 하며 유행이나 형식만 따르다 보면 예술을 놓치게 되고 의미가 없어진다.'며 '선과 색채를 통해 내 감정을 보여주는 작품을 계속하고 싶다'고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밝힌바있다.

그는 '예술가라면 사회를 관조해야 한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아무도 없는 산골에 들어가 18세기의 모습을 그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그 시대, 사회와 반드시 어떤 연관 관계가 있다. 이것은 작가가 의도해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여러 대중에 의해 판단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프랑스 생테티엔느 미술관 로랑 헤기 디렉터도 '쩡판즈의 그림은 오만하고 선동적이면서도 동시에 역사, 정치, 감성, 추억 그리고 환상을 아우른다, 그의 그림의 심리적 출발점은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이다”라며 “이 두려움이 특수한 사회의 특수한 심리에 그치지 않고 시(詩)가 됐기 때문에 세계인에게 보편적으로 감동을 준다”고 그의 작품세계를 간명하게 정의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작품세계가 쉬지 않고 주목 받는 것은 그만의 독자적인 이미지와 캐릭터를 고집하지 않고 치열하게 자신의 작품 세계를 담금질하면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는 함부로 예술가적인 자존심을 버리고 작업하지도 않는다. 당시의 일화가 그의 명쾌한 판단과 결단력을 잘 말해준다.

한 때 마스크 시리즈가 전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진 뒤, 어떤 상인이 몇억위엔을 주면서 이 시리즈 작품 20여점을 제작할 것을 특별히 부탁 했지만 그는 이러한 제안을 주저하지 않고 단호히 거절했다고 한다. 이것은 그가 돈을 우습게 본 것이 아니라, 예술을 팔아 돈을 얻지 않겠다는 그의 아주 멋진 예술가의 자존심이다. '모든 일상이 내 영감의 원천'이었던 중국 베이징의 차오창띠(草場地)에 쩡판즈(曾梵志)의 스튜디오. 그는 이러한 정신으로 중국의 데미안 허스트처럼 이미 세계의 주목 받는 스타 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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